달과 6펜스

이런저런 책에 관한 잡담에 가까운 독백

by a universal seoulite

2023년 올해 첫 번째 책으로 'I May Be Wrong'을 읽기 시작했다.


늘 그러하듯 계획한 것은 아니다. 주말에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가 마땅히 눈에 띄는 책이 없어서 돌아 나오려고 할 참이었다. 그때 같이 갔던 아빠가 사고 싶은 책이 있다고 했다. 아빠가 사고 싶어 한 김형석 교수님의 '백 년을 살아보니' 책을 찾으러 갔을 때 비로소 나란히 놓인 비욘 나티코 린제블라드라는 스웨덴 작가의 'I May Be Wrong(한글 제목,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가 내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외국의 유명인 누군가가 추천한 것을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망설임 없이 집어 들고 와서 오늘부터 읽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몇 장 읽었지만 벌써부터 '이 작가는 내 마음속에 들어갔다 온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거짓말처럼 신기하게도 작가는 최근 몇 달 동안 내가 고민하던 것들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티코는 요즘 내가 회사에서 엄청난 의지와 자제력으로 숨기고 있는 감정들과 결핍에 대해서 마치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듯 책의 도입부에서 이미 모두 말해버렸다.


이 비슷한 느낌을 '책들의 부엌'이라는 책을 읽으며 느낀 적이 있었다.


책 속에 나오는 수혁이라는 인물이 '멍청하게 속지 않기를 겨루는 경기장 같은 최근 5년간은 무채색으로 습관적으로 타인을 경계하는 삶을 살았다. 친절하게 미소를 짓는 눈동자 뒤로 정확하게 숫자로 계산된 의도가 자리 잡고 있었다.'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너무나도 깊게 공감했었고, 그를 보는 책방 주인 유진이 '수혁은 인생의 위태로운 시간을 지나는 중 밤새 날아다녔는데도 쉴 곳을 찾지 못한 새처럼 지쳐 보였다'라고 할 때 마치 내게 하는 말 같았다. 수혁에게 책들의 부엌이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설명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깔깔대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곳이었다면 내게도 비슷한 곳이 서너 곳 있는 것 같았다.


책들의 부엌을 읽을 때는 그냥 어렴풋이 공감하고 동질감을 느꼈었다면, 이 책의 저자 나티코는 대놓고 내게 문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답을 알 것만 같은데 콕 집어 정답을 얘기하지 못하고 머릿속에서 빙빙 맴돌고만 있다가 누군가 정답지를 건네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럼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설명을 해줄까? 정답지에는 정답과 해설이 늘 함께 있듯이.


요즘 들어 부쩍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책이 생각나곤 한다. 어렸을 때 이 책을 단숨에 읽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그 어린 나이에 뭘 안다고 그렇게 재미있게 읽었나 싶긴 한데 하기 싫은 공부를 하다가 타히티로 도피해버린 고갱의 일생이 꽤나 멋있게 보였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아마도 지금 다시 읽는다면 고갱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그려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달과 6펜스를 읽기 전에 나티코의 얘기부터 먼저 들어봐야겠다. 단박에 나도 짐 싸들고 타이티로 야반도주를 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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