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곳을 들어갈 때는 눈을 뜨고도 감은 듯 무심하시기 바랍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백화점에 들어서는 내게 저 정도 경고 문자는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다. 그때만 해도 화장품과 온갖 작고 예쁜 것들이 꽉 차게 자리하고 있는 백화점 1층에 무방비로 들어간다는 것은 지갑을 활짝 열고 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쇼퍼홀릭이었기 때문에... 그 어느 하나 눈길 한 번 안 주기 어려울 정도로 탐스럽게 반짝이고 있었기에 가다가도 수도 없이 멈춰 서서 정성스럽게 하나씩 봐줘야 했고 그러다 보면 자연히 예정에도 없던 것들을 안고 나오는 게 나였다.
백화점은 유독 마케팅의 마력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는 곳이었다. 홈쇼핑 광고나 인터넷 광고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내가 백화점 마케팅 앞에서는 무기력하게 무너지곤 했다. 광고 문구가 뇌리에 박혀서 잊히지 않는 게 화장품 코너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화장품 광고는 정말 치명적이었다. '전 세계에서 1초에 oo만병 팔린다'는 둥, '세포가 즉각 깨어난다'는 둥 번뜩이는 광고카피는 노벨상을 줘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언제나 손쉽게 내 눈길을 낚아채는데 성공적이었다.
또한 백화점 로비 수많은 문자 중에 으뜸은 'SALE'이라는 네 글자였다. SALE만 보이면 눈이 번쩍해서 매장을 샅샅이 살펴보니 파블로의 개가 따로 없었다. 마치 무엇이든 사지 않으면 손해 보는 기분이 들어서 무엇을 살 것인지 고심에 고심을 하게 만드는 네 글자였다. 그리고 SALE 상품을 계산하고 나올려는 순간이면 또 한 번의 고비가 어김없이 왔다.
"고객님, 오늘 상품권 행사하는데. 만원이 모자라시네요? 더 필요한 게 없으실까아요오?"
환하게 인자한 미소를 띤 채로 말씀하시면 어김없이 가려던 걸음을 멈추고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줄 몰라? 쇼핑 처음해 보는 것도 아니고.'라는 듯 물건들은 또다시 내게 아우성을 치며 유혹의 손길을 마구마구 날린다. 정말 외면하기 힘들 정도로 강력했다. '만원만 더 채우면 상품권이 몇 장이 나오는데 이건 반드시 해내야 할 쇼핑이다.'라는 생각으로 내 눈이 번뜩이곤 했다.
상품권 지급 기준 금액에 모자라는 만원, 2만 원을 채우기 위해서 살만한 물건을 찾아 백화점을 샅샅이 뒤지기도 일쑤였다. 나는 상품권 지급 금액을 맞추는 알뜰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자긍심을 느끼며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운 생각은 잊은 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꼭 필요한 물건을 찾아 백화점 전층을 살피곤 했었다.
하지만 오늘 나는 그 어려운 유혹의 구간에서 흔들리지 않고 걸어 나왔다. 수많은 진열품이 경쟁적으로 매력을 뿜어내는 그 거부하기 힘든 열기와 열렬한 구애의 손짓에도 굴하지 않고 100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유혹의 구간을 걸어 조금도 흔들림 없이 곧장 걸어 나왔다. 내가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 끊임없이 나를 유혹하던 손길들이 체념한 듯 뻗었던 손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마지막 100미터 구간에서는 절제하는 삶을 향한 나의 열정에 열렬한 환호와 격려의 박수가 터져 나오는 상상을 하며 레이스 마지막 구간을 지나 결승선에 골인하는 쾌감을 느꼈다.
경제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쓸모없는 소비에는 관심을 두지 않게 된 이후 신기하게도 내게 백화점은 멈춰 선 추억의 놀이동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