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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Iverse Aug 26. 2018

내 삶을 바꾼 세 가지 물건. (3)

자동차, 에어팟, 크롬 캐스트

3. 크롬 캐스트


    내 삶을 바꾼 세 가지 물건 중 세 번째, 크롬 캐스트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은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지만 불과 3시간 전만 해도 크롬 캐스트를 통해서 넷플릭스를 세 시간 가량 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젯밤에도 잠에 들기 전에 크롬 캐스트로 영화 한 편을 보았더랬다. 아무튼 크롬 캐스트라는 것은 구글에서 만든 미디어 재생을 위한 TV용 동글이다. 미국 기준으로 1세대가 2013년에 발매되었으므로 벌써 출시된 지 5년이 지난 제품이다. 그런데 나는 이 제품을 올해 사들였으니, 꽤 오랜 시간 동안 몰랐던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서 TV 점유권을 가지고 있지 못했고, 집에 들어와서 TV를 보는 일은 좀체 없었다. 한마디로 TV를 바보상자로 생각하는 부류였다고나할까.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우리 집은 주로 9시 뉴스를 디폴트로 틀어놓았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 아빠가 즐겨보는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 '미운 우리 새끼'같은 것들이 틀어져 있었다. 그리고 난 이 프로그램들을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 아빠와 나의 영화 및 TV 프로그램 취향은 정말 하나도 닮은 구석이라고는 없다. 더군다나 아빠와 싸워가면서까지 보고 싶은 TV 프로그램도 없었다. 가끔가다 보는 영화는 주로 노트북으로 방에서 감상했고, 거실의 TV는 나에게 그저 새까만 오브제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크롬 캐스트의 존재를 알아버린 것이다. 이 조그마한 동글을 통해 거대하고 바보같이 느껴지던 TV는 스마트폰에서 감상하는 콘텐츠를 바로바로 보여줄 수 있는 '스마트폰 경험의 확장판'이 되었다. 사실 내가 왜 TV를 안 보았을까를 생각해보면, 내가 왜 크롬 캐스트에게 즉각 매력을 느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TV를 안 좋아했던 이유

 정해진 시간에 TV 앞에 있을 확률이 낮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TV 앞에 앉아 있을 경우 그나마 보는 TV 프로그램들은 IPTV에 등록되어 있어 이를 통해 보는데, 최신 회차들은 대부분 유료로 제공된다.

 IPTV의 검색 UI는 쾌적하지 않다. 정확히는 IPTV가 쾌적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TV 리모컨으로 영화나 프로 그램을 검색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다. (리모컨으로 타자를 친다니.. 피쳐폰 쓰던 시절보다도 훨씬 어렵다. 그리고 피쳐폰을 안 쓴 지 너무 오래됐다.)

TV는 너무 오픈된 공간에 있다. 엄마, 아빠와 같이 사는데 조금 선정적인 콘텐츠를 감상하고 있다면 후방 주의가 필요하다.

IPTV는 한국의 TV 프로그램 위주다 보니 보던 것만 보게 됐다. (무한도전, 수요미식회,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정도? 그나마도 무한도전은 종방 했다. 드라마는 거의 보지 않았다.)

TV를 틀어놔도, 잘 집중할 수 없다. 최근의 나는 TV 앞에 있다가도 금세 스마트폰을 하느라 집중력을 빼앗기고는 한다. 그러고 나면 내용은 벌써 10분 정도 지나가 있고, 나는 이야기를 따라잡지 못한 상태로 빠르게 흥미를 잃어버린다.

그 밖에도 뭔가 TV 보기를 즐기지 않는 나 자신의 모습을 내심 흡족해했다.



이 이유들을 크롬 캐스트를 즉시 사들인 이유로 치환하면 다음과 같다.



크롬 캐스트를 즉시 사들인 이유

정해진 시간 같은 것은 없다. 그냥 내가 TV 앞에 앉는 그 순간이 콘텐츠 시작 시점이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TV 앞에 앉아 있기만 하면 월 1만 원-2만 원 정도 되는 투자로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스트 리밍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다.

IPTV의 검색 UI든 혹은 TV 제조사의 검색 UI든 아무튼 리모컨을 통해 검색하는 모든 행위가 필요 없다. 그냥 당신의 손안에 든 스마트폰을 통해 모든 콘텐츠를 TV로 보내버릴 수 있고, 스마트폰 미러링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스마트폰으로 다른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 한 콘텐츠를 진득이 보기보다 짤막한 콘텐츠를 다양하게 소비하는 최근의 콘텐츠 소비 특성상, 스마트폰을 통한 콘텐츠 선택은 크롬 캐스트의 UX를 아주 아주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다.

크롬 캐스트를 이용하더라도 역시 엄마, 아빠와 같이 산다면 콘텐츠 선택에 신중을 기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리모컨으로 즉시 다른 채널로 돌리는 것보다는 계속 내 손안에 있는 모바일로 아예 다른 부분으로 넘겨버리는 게 나에게는 좀 더 쉽다.

콘텐츠 선택에 있어 아주 넓은 폭이 제공된다. 해외 드라마는 넷플릭스, 국내/해외 영화는 왓챠 플레이, 국내 예능 및 드라마는 티빙, 뮤직비디오나 각종 짤막한 비디오 콘텐츠 감상은 유튜브를 통해서. 더군다나 스포티파이나 유튜브 뮤직도 지원이 되니 TV를 그냥 스피커로 쓸 수도 있는 셈이다.

크롬 캐스트는 기본적으로 스마트폰으로 콘텐츠를 선택하고 TV로 보낸 뒤, 멀티 태스킹을 할 수 있는 사용성을 갖추고 있다. 내가 스마트폰으로 카카오톡을 하느라 중요한 장면을 놓친다면, 그냥 바로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앱으로 다시 돌아가서 재생 시점을 조금 조정하기만 하면 된다.

이제 나는 친구들에게 집에서 TV 보고 있다고 말하지 않고 집에서 크캐 보고 있다고 말한다. 둘 사이의 차이점이 뭘까? 아무래도 크롬 캐스트를 보고 있다고 하면 나는 무조건적인, 또 무한대적인 TV 시청이 아닌 나의 취향과 가치 판단에 따라 선택적 콘텐츠 감상을 하고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크롬 캐스트의 시청 행태는 확실히 과거의 TV 시청 행태와는 다른 양상을 띤다.

    여러분들 중 대다수가 TV를 안 본다고 해서, 혹은 TV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해서 스마트폰에서 어떤 영상 콘텐츠도 즐기지 않는 사람일 가능성은 낮다. 크롬 캐스트를 구매한 이유는, 스마트폰에서 작게만 감상하던 유튜브의 코난 쇼 클립들, 언제나 노트북으로 다운로드하여 봐야 했던 영화들을 보다 큰 스크린에서 다이내믹하게 즐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필자도 사실 스마트폰 사용 비중을 따지자면, 영상 콘텐츠 감상보다는 메시징을 포함한 SNS, 웹서핑, 웹툰, 카메라 기능, 음악 감상 비중이 현저히 높았는데, 작은 스마트폰 스크린으로 영상을 즐기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제약이 따랐기 때문이다 : 영상 감상 도중에는 메시지를 보낼 수 없으며 데이터도 많이 이 소비된다. 그리고 잠깐 영상 좀 보겠다고 가로 모드로 바꾸고 이런 일련의 과정이 너무 귀찮았다.(유튜브는 이 부분에 있어서는 가로/세로 모드에 상관 없이 전체 화면 숏컷 키를 제공해주는 고마운 앱들 중 하나다.) 그런데 크롬 캐스트를 이용하면 이 모든 단점이 말끔히 해소된다. 영상은 커다란 스크린으로 즐기고, 나머지 기능은 스마트폰에서 그대로 병행할 수 있다. 와이파이 환경에서만 쓸 수 있으니 데이터 걱정은 없다. 또, 굳이 콘텐츠를 계속해서 '주시'해야 할 필요는 없다. 유튜브에서 좋아하는 가수의 뮤직 비디오를 틀어 놓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인테리어 요소, 눈요기 요소가 된다. 크롬 캐스트를 구매한 이후의 나의 삶은 이렇게 달라졌다.



크롬 캐스트를 제대로 즐기려고 급기야 새 TV까지 샀다.

    처음에는 TV를 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배보다 배꼽이 큰 이 소비를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크롬 캐스트가 생기고 호기심 반, 욕심 반으로 응모했던 사내 TV 추첨에 덜컥 선발되어서 작년 초에 출시되었던 65 인치 UHD TV를 매우 매우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결과는 당연히 구매로 이어졌다. 이 아름다운 TV를 배송받는 날이 마침 석가탄신일이었던 것을 잊을 수 없다. 평일 속 찾아온 꿀 같은 휴일 날 오전, 이 거대한 TV를 선물 받고 나는 마침 넷플릭스로 한창 푹 빠져 있던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를 연달아 세 편은 보았다. 원래 우리 집은 30 인치 정도 되는 TV를 썼던 것 같은데, 30인치와 65인치는 정말 억 배의 차이가 난다. 나는 65 인치 TV를 장만하고서야 비로소 아름답게 디자인된 삼성의 세리프 TV가 왜 대중적으로 많이 팔리지 않았는가를 실감했다. 그렇다... TV는 거거익선이다. 세리프 TV는 정말 정말 아름다운 외관을 자랑하지만, 같은 가격대의 다른 TV들에 비해서 화질도, 화면 크기도 현저히 떨어졌다. 같은 가격대에 더 큰 TV를 마련할 수 있다면 그 편이 좋은 선택이다. 처음에는 좁다란 거실에 그 거구의 TV가 들어섰을 때 집이 더 좁아 보이지는 않을까, 눈알이 빠지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웬 걸, 75 인치를 샀어도 좋았을 뻔했다. 아무튼 픽셀 하나도 보이지 않는 이 TV를 통해서 우리 집은 쾌적한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문제의 65 인치 TV



    홈 시어터가 있으니 주말의 외출 빈도가 낮아졌다.


    크롬 캐스트와 더불어 65 인치 TV까지 사들이고 나니, 주말마다 집 밖으로 나돌아 다녔던 나의 생활 패턴마저 변해버렸다. 최근의 나는 놀라우리만치 일찍 퇴근하고, 앞서 언급했던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는 벌써 시즌 4까지 단숨에 해치워 버렸다. 토요일에 극장에서 '맘마미아 2'를 보고 와서는 그다음 날인 일요일에 크롬 캐스트로 '맘마미아 1'을 보고, 마찬가지로 토요일에 극장에서 '인크레더블 2'를 보고 와서는 그다음 날인 일요일에 크롬 캐스트로 '인크레더블 1'을 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극장만큼이나 쾌적하다! 주말에 꼭 친구를 만나거나 나가지 않아도, 집에서 나에게 꼭 맞는 콘텐츠 감상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넷플릭스도, 왓챠 플레이도 정 볼 게 없다 싶으면 유튜브가 있다. 예전에는 친구에게 영화나 드라마, 예능을 추천받아도 다운로드하는 것이 귀찮아서 묵혀두었다면 만일 친구의 추천 콘텐츠가 넷플릭스, 왓챠 플레이 등에 있을 경우 훨씬 더 쉽게 볼 수 있어서 대화할 때 공감대 형성에도 적합하다.



크롬 캐스트를 통해 모바일에서 TV로 콘텐츠를 보낼 때 당신이 보게 될 UI. 아주 간편하고 깔끔하다. 볼륨, 재생 시점, 자막 등 조절은 모두 모바일에서 가능하다.



여럿일 때 더 즐거운 콘텐츠 감상


    내가 처음 크롬 캐스트를 알게 되었던 친구의 집들이에서처럼, 크롬 캐스트의 진가는 여러 명이 있을 때 발휘된다. 기존 TV 시청의 단점은, 어떤 한 사람이 먼저 채널을 점거하고 있으면 좀처럼 그 주도권을 가져오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특히 선점거자가 아빠일 경우에 어렵더라.) 그런데 크롬 캐스트는 홈 와이파이를 공유하고 있는 그 누구든 원하는 콘텐츠를 즉시 틀거나, 유튜브의 경우 다음 대기열에 자신의 콘텐츠를 올려놓을 수 있다. 즉 공유 플레이리스트 생성이 가능하다. 몇 주 전에 4명의 친구들과 집들이를 했을 때 2-3시간 동안 영원히 유튜브로 뮤직 비디오와 컨셉추얼 한 영상들을 번갈아 틀었는데, 현재 A라는 친구가 틀어놓은 콘텐츠에 흥미가 영 생기지 않을 경우 바로 내가 틀고 싶은 콘텐츠를 틀어 버릴 수 있어서 이런 일이 빈번히 일어났고, 꽤나 민주적인 콘텐츠 감상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롬 캐스트가 없었다면 아무래도 노트북 앞으로 가서 자신이 보고 싶은 영상을 검색하고 클릭까지 해야 하므로 이 과정이 보다 번거로웠을 것이다. 실제로 이 2-3시간 남짓 되는 콘텐츠 감상회가 끝나고 나니, 나는 몰랐던 꽤나 팬시한 영상들도 많이 보게 되었고, 어떤 스타일의 음악을 좋아하는지 등 각자의 취향도 조금씩 알 수 있었다. 보아의 아틀란티스 소녀나 이효리&에릭의 애니모션 광고를 다시 돌려보는 뮤비 추억 여행도 쏠쏠한 재미다. 만약에 그냥 스마트폰으로 보는 거였다면 굳이 보지 않았을 것 같다.


    주변 친구들에게 크롬 캐스트를 추천할 때면, 긍정적인 피드백도 많지만 또 심심치 않게 나오는 반응이 '우리 집은 TV가 없어서'라거나, '나는 TV 보는 걸 안 좋아해서'인 경우도 많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덕분에 집집마다 꼭 TV가 한 대 씩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넷플릭스의 가입자는 얼마 전에 1억 2천500만여 명이 돌파했다고 한다. 즉 TV의 시대가 가고, 디지털 스트리밍의 시대가 온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TV 시청을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이 디지털 스트리밍 경험을 아주 매끄럽게 확장시켜주는 크롬 캐스트를 추천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TV는 오히려 이 쾌적한 경험을 위한 준비물에 불과한 느낌이다. TV든 크롬 캐스트든 없으면 없는 대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고, 나도 분명 그랬다. 하지만 크롬 캐스트가 없는 이전으로 돌아가려니 그것은 너무 심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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