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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광석 Oct 16. 2024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등불이 될 수 있다

이렇게 환한 등불 본 적 있나요

개미 두어 마리가 죽은 나방을 움켜쥐고

영차 영차 손잔등만 한 언덕을 기어오를 때

공놀이하던 한 아이가 잠시 길을 비켜줍니다

순간 개미의 앞길이 환해집니다

이렇게 빛나는 등불 본 적 있나요

일곱 살짜리 계집아이가 허리 꺾인 꽃을 보고는

냉큼 돌아서 집으로 달려가더니

밴드 하나를 치켜들고 와 허리를 감습니다

순간 눈부신 꽃밭이 펼쳐집니다

오늘 난 두 아이에게서 배웁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등불이 될 수 있다는 걸

- 오봉옥, <등불>


우리는 다른 사람한테 크든 작든 어떤 도움을 주었을 때 흐뭇한 감정을 느낀다. 죽은 나방을 움켜쥐고 언덕을 기어오르는 개미한테 길을 비켜주는 아이의 마음처럼. 허리 꺾인 꽃을 보고는 밴드를 들고 와 허리를 감는 아이의 마음처럼. 이렇게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등불이 될 수 있다.



2014년 12월 1일, 김승환 전 전라북도 교육감이 글쓴이의 동의를 얻어 <며느리와 시어머니>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려놓았다. 그 글을 새롭게 각색했다.



그녀가 열한 살일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래로 여동생이 하나 있었다. 전업 주부였던 엄마는 혼자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못 먹고 못 입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여유롭지는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뒤 2년 만에 결혼했다. 처음부터 시어머니가 좋았고, 시어머니도 그녀를 아주 마음에 들어했다. 결혼한 지 만 11년째가 되던 해에 친정 엄마가 암 선고를 받았다. 엄마 건강도 염려되었지만, 수술비와 입원비 걱정부터 해야 했다. 그녀는 남편에게 얘기했다. 남편은 걱정하지 말라며 내일 돈을 융통해 볼 터이니 오늘은 푹 자라고 얘기해 주었다.



다음날 엄마를 입원시키려 친정에 갔지만, 엄마는 선뜻 나서질 못하였다. 마무리해야 할 일이 몇 개 있으니 4일 뒤에 입원하자고 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그때 시어머니가 전화를 했다.


“지은아, 너 울어? 울지 말고 내일 세 시간만 내줘.”



이튿날 시어머니와 약속한 장소에 나갔다. 시어머니가 무작정 한의원으로 그녀를 데려갔다. 전화로 예약했는지 원장이 말했다.


“간병하셔야 한다고요.”



원장이 맥을 짚어보고 몸에 좋은 약을 한 재 지어주었다. 한의원에서 나온 뒤 시어머니는 그녀를 백화점으로 데려갔다. 솔직히 속으로는 조금 답답했다. 죄송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시어머니는 간편복을 사주고 선식도 사주었다.



함께 집으로 왔다. 시어머니가 그제야 말하기 시작했다.


“환자보다 간병하는 사람이 더 힘들어. 병원에만 있다고 아무렇게나 먹지 말고, 아무렇게나 입지 말고.”



이렇게 말하며 봉투를 내밀었다.


“엄마 병원비 보태 써라. 네가 시집온 지 얼마나 됐다고 돈이 있겠어? 그리고 이건 죽을 때까지 너랑 나랑 비밀로 하자. 네 남편이 병원비 구해 오면 그것도 보태 써. 내 아들이지만, 남자들은 유치하고 애 같은 구석이 있어. 부부싸움을 할 때 꼭 친정으로 돈 들어간 거 한 번씩은 얘기하게 되어 있어. 그러니까 우리 둘만 알자.”



마다했지만 끝끝내 그녀 손에 돈을 꼭 쥐어주었다. 2,000만 원이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시어머니한테 기대어 엉엉 울고 있었다.



친정 엄마는 시어머니 도움으로 수술하고 치료 받았지만 이듬해 봄에 돌아가셨다.



병원에서 오늘이 고비라고 하였다. 눈물이 났다. 남편에게 전화했고, 갑자기 시어머니 생각이 났다. 그녀는 울면서 시어머니에게 전화했다.



시어머니는 늦은 시간인데도 남편보다 더 빨리 병원에 도착하였다. 엄마는 의식이 없었다. 그녀는 엄마 귀에 대고 말씀드렸다.


“엄마, 우리 어머니 오셨어요. 작년에 엄마 수술비를 어머님이 해주셨어. 엄마 얼굴을 하루라도 더 볼 수 있으라고……”



엄마는 미동도 없었다. 시어머니가 지갑에서 주섬주섬 무얼 꺼내어 엄마 손에 쥐어주었다. 그녀가 남편과 결혼할 때 찍은 사진이었다.


“사부인, 저예요. 지은이 걱정하지 말고, 사돈처녀 정은이도 걱정하지 말아요. 지은이는 이미 제 딸이고요. 사돈처녀도 제가 혼수 잘해서 시집 보내줄게요. 걱정하지 마시고 편히 가세요.”



그때 거짓말처럼 친정 엄마가 의식이 없는 채로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엄마는 듣고 있었던 거였다. 가족들이 다 왔고 엄마는 두 시간을 넘기지 못한 채 그대로 눈을 감았다.



망연자실 눈물만 흘리고 있는 그녀를 붙잡고 시어머니가 함께 울어주었다. 시어머니는 가시라고 하는데도 3일 내내 빈소를 지켜주었다.



그녀와 여동생에겐 친척도 없었다. 사는 게 벅차서 엄마도 따로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가 없었다. 하지만 엄마의 빈소는 시어머니 덕분에 3일 내내 시끄러웠다.


“빈소가 썰렁하면 가시는 길이 외로워.”



친정 엄마가 돌아가신 뒤에 시어머니는 그녀의 동생까지 잘 보살펴주었다. 가족끼리 외식하거나 여행을 갈 땐 잊지 않고 동생을 챙겨주었다.



동생이 결혼한다고 했다. 시어머니가 또다시 그녀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어머님, 남편이랑 따로 정은이 결혼 자금을 마련해 놨어요. 마음만 감사히 받을게요.”



도망치듯 돈을 받지 않고 나왔다. 버스 정류장에 다다랐을 때 문자가 왔다. 그녀 통장으로 3,000만 원이 입금되었다. 그 길로 다시 시어머니한테 달려갔다.



어머니께 너무 죄송해서 울면서 짜증도 부렸다. 안 받겠다고. 시어머니가 함께 울면서 말했다.


“지은아, 너 기억나지 않아? 친정 엄마 돌아가실 때 내가 약속 드렸잖아. 혼수해서 시집 잘 보내주겠다고. 나 이거 안 하면 나중에 네 엄마를 무슨 낯으로 뵙겠어?”



시어머니는 친정 엄마에게 혼자 한 약속을 지켜주었다. 그녀는 그날도 또 엉엉 울었다. 시어머니가 말했다.


“착해 빠져가지고 어디에 쓸꼬. 제일 불쌍한 사람이 도움을 주지도, 받을 줄도 모르는 사람이야. 그리고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하고 울고 싶을 땐 목놓아 울어버려.”



제부가 될 사람이 그녀의 시어머니께 인사드리고 싶다 해서 자리를 마련했다. 그때 시어머니가 사인을 보내자 시아버지가 말했다.


“초면에 이런 얘기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사돈처녀의 혼주 자리에 우리가 앉았으면 좋겠는데.”


혼주 자리에는 사실 그녀 부부가 앉으려 했었다.


“다 알고 결혼하는 것이지만, 그쪽도 모든 사람들에게 다 친정 부모님 안 계시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을 텐데. 다른 사람들 보는 눈도 있고.”



그랬다. 그녀는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던 부분이었다. 그녀 동생네 부부는 너무도 감사하다며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내 동생은 우리 시아버지의 손을 잡고 신부 입장을 하였다. 동생 부부는 그녀의 부부 이상으로 그녀 시댁에 잘 해주었다.



시어머니 49재 때 그녀의 가족들뿐만 아니라 동생네 부부도 함께 다녀왔다. 오는 길에 동생도 그녀도 많이 울었다. 그날 그녀는 10년 전에 시어머니와 했던 비밀 약속을 남편에게 털어 놓았다. 그때 병원비를 어머니께서 해주셨다고. 남편과 그녀는 부둥켜안고 어머님이 그리워 엉엉 울어버렸다.



그녀는 아들이 둘이다. 그녀는 생활비를 쪼개서 따로 적금을 들고 있다. 그녀의 시어머니가 그녀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그녀도 나중에 며느리들에게 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녀의 휴대폰 단축번호 1번은 아직도 시어머니이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글을 끝맺었다.


“항상 나에게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신 우리 어머님이다. 어머님. 우리 어머님. 너무 감사합니다. 어머니 가르침 덕분에 제가 바로 설 수 있었어요.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낼 수 있었고요. 어머님, 사랑합니다. 그립습니다. 제가 어머니께 받은 은혜, 많은 사람들에게 꼭 베풀고 사랑하고 나누며 살겠습니다.”



‘이렇게 환한 등불 본 적이 있나요? 이렇게 빛나는 등불 본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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