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01학번, 여 암환자의 은중과 상연 관람기

스포주의

by 구름

혈액암 진단 3개월 차.

외부활동을 거의 못하니, 시간을 때우는 건 역시 넷플릭스만 한 게 없지.

업로드되자마자 재생한 "은중과 상연"

상연이 조력 사망을 위해 은중을 만난다는 설정까지는 알고 본거였는데,

맙소사.

82년생, 01학번, 그리고 40대의 나이에 선고받은 암.

(물론 나는 초기이지만)

이건 내 얘기인가.


백혈병이 의심되니 종합병원 응급실로 바로 가서 검사받으라고 건강검진센터의 전화를 받았을 때,

그때부터 나는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람은 태어났으니 언젠가는 죽기야 하겠지만,

형체도 기약도 없던 죽음이 바로 내 눈앞에 검은 옷을 입고 나타난 느낌.

아직 자기 것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는 내 눈에는 아직 어린 두 아이와 나 없이는 애들이며 집안일이며 제대로 건사 못하는 남편은 나 없는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그들이 나 없는 삶을 잘 살게 해 주려면 나는 무얼 해야 할까.

딸을 먼저 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떠할까.

이런 복잡한 마음은 만성골수성백혈병임을 진단받고 항암제를 잘 먹으면 8~90%는 생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겨우 가라앉았다.


상연은 남아있는 부모도, 남편도, 아이도 없는 상태로 암을, 아니 죽음을 선고받았다.

내가 건강검진센터로부터 전화를 받고 울먹이며 바로 전화를 건 사람은 남펀, 두 번째는 최근 암 수술을 한 친구였다.

바로 직후 내가 필요했던 건 공감과 내 정신을 붙잡고 대책을 마련해 줄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두 번째 연락은 제일 친하다기보다는 같은 길을 먼저 걷고 있는 친구에게 한 게 아닐까.

상연도 그 순간, 현재 가장 가깝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너무 미워했지만, 나의 아픔을 모두 알고 있는, 그리고 나를 잡아줄 수 있는 은중을 떠올렸던 것 같다.

나의 마지막을 같이 정리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으므로.


은중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상연은 덤덤했다.

이미 좌절과 절규하는 단계는 지나고 받아들이는 단계에 접어들었으므로.

내가 바로 직후 울며 친구와 통화했던 것과는 달리, 한 달 뒤쯤 소식을 전한 친구들에게는 덤덤히 말했던 것처럼,


상연의 조력 사망을 말리던 은중은 상연의 고통을 목도하며 그의 결정을 끝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 고통을 견디라 말하는 것은 너무 잔인하고, 남겨질 사람들의 이기적인 마음일 수 있기에.


누구나 죽고, 누군가는 예상치 못하게 아무 준비 없이 갑자기 죽기도 한다. 어쩌면 죽음의 기한을 알려주는 암이 더 나을 수도.

상연은 재산의 상속을 미리 결정할 수 있었고(은중이 받진 않았지만), 미안했던 사람에게 사과할 수 있었고, 고마운 마음을 전할 수 있었고, 죽음의 형태를 결정할 수 있었다.

나의 사춘기 아들은 내가 암진단을 받고 몇 달간(최근에는 안 하는 걸로 보아 세 달 정도) 자기 전 "엄마 사랑해"라는 말을 하고 안아주었다.

마치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는 듯이.

남아있게 되는 사람들도 고맙다, 사랑한다, 미안하단 말을 후회 없이 전하고 잊지 못할 마지막 추억을 쌓는 시간이 되겠지.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랑하고,
그러나 내일을 살아갈 것처럼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절실하지만 덤덤해야 하는.
모순적이며 어려운.

나에게 한번 더 죽음을 생각하게 해 준 작품,

은중과 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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