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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견주 Nov 23. 2023

개조심 이름은 블랙이 - 2

악성 유선종양 진단받은 날


불행이 한 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된다는 건 너무 뻔한 클리셰다. 그러나 비극적 소식을 접한 주인공들처럼 소리치거나 오열하거나 하는 일 없이, 12살 늙은 개의 슬픈 소식은 조금씩 누적되어 간다. 오늘은 2주 전에 떼어낸 블랙이의 유선 종양 검사 결과를 받아 들었다. 악성이었다.



블랙이는 유기견이었고, 2013년도 12월 두 살 추정인 나이에 우리 집에 왔다. 그때 이미 중성화가 되어있었는데, 유기견 센터에서 중성화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자강아지의 경우 중성화는 보통 1살이 되기 전에 해주어야 유선, 자궁 관련 질병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하는데, 블랙이는 2살 무렵에 한 탓인지 이미 2018년도에도 한 번 유선 종양을 뗀 적이 있었다. 그때 양성이었어서 사실 이번에 조직검사 맡긴 것을 조금 후회했는데, 이번에 뗀 종양은 악성 판정을 받았다.



2주 전에 남편이 블랙이를 데리고 쿠싱 증후군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갔고, 나는 워크숍 때문에 회사에 출근해 있었는데, 갑자기 블랙이가 수술에 들어갔다고 해서 깜짝 놀랐었다. 1년 전인가부터 눈에 띄게 돌출되어 있던 까만색의 젖꼭지가 있었는데, 이전에 다니던 병원에서도, 옮긴 병원에서도 블랙이가 불편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내버려두는 게 좋겠다고 했었다. 그래서 해당 부위를 수술할 거라곤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 검진에서 원장님이 돌출부위에서 피가 묻어 나오는 것을 발견해 수술을 권한 것이었다.



수술 얘기를 듣자마자 먼저 생각나는 건, 마취였다. 블랙이는 올해 두 시간 정도 전신마취 스케일링을 하고 그 후유증으로 디스크가 와서 걷지 못한 적이 있었다. 이번 수술은 다행히 국소마취의 작은 수술이었다. 안도하자, 곧바로 비용이 떠올랐다. 조직검사까지 맡기기로 해서 이번에도 꽤나 비용이 나올 것 같다는 얘기였다. 매 검진 때마다 갑자기 뭐가 추가되면서 백만 원 정도 나오는 것 같은데, 너무 과잉진료 아닌가,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다. 하지만 남편이 이미 결정한 사항을 지적하고 싶진 않아서 이전에도 유선 종양 수술을 받은 적이 있고, 그땐 양성이었다, 이번에도 양성일 것이라고 에둘러 전했다. 블랙이와 함께해 온, 남편이 모르는 역사를 으스대는 마음도 조금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검사해서 결과를 보면 마음은 편할 것이다'라는, 돌이켜보면 끔찍한 자만을 내세우면서.



병원에는 블랙이와 브라우니의 주 보호자가 나로 저장되어 있긴 하지만, 남편이 방문하는 날이 잦아지면서 원장님과 테크니션 쌤은 종종 남편에게 전화를 먼저 하곤 했는데, 이번에도 그런 경우였다. 늦게 들어온다던 남편에게 갑자기 전화가 와서 받았고, 여느 때와 같이 전화하는 소리를 듣고 블랙이가 짖었는데, 남편은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블랙이를 꾸중하지 말라고 했다. 유선 종양 검사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유선 종양 수술한 자리의 실밥을 떼러 이번 주말에 방문하기로 했었는데, 그때 폐전이를 확인하기 위해 엑스레이를 찍어야 하고, 이후 CT를 찍는 등의 절차에 대해 남편은 디테일하게 전달해 주었다. 나는 전화를 받으면서 "악성 유선 종양"을 네이버에 검색하고, 항암 치료, 호스피스... 절망적인 단어들 사이에서 호전 소식만 찾아서 눌렀다. 고양이보다 강아지가 유선종양 악성일 확률이 낮단다. 좋아해야 되나요?


전달받은 조직검사 결과지에서 grade 1이라는 글자를 보고 확인해 보니, 그 정도면 낮은 수치인 것 같았다. grade 3까지 있단다. 전이율이 낮다는데? 종양 전부 뗐으니까 된 거 같은데? 애써 희망적인 부분을 찾아도 남편은 도관에서 유래된 거라 전이를 확인해봐야 한다는 어렵기만 한 원장님의 의견을 반복해서 전달했다. 도관이 뭔데. 나는 생물학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 강아지가 늙어갈수록 자꾸만 알아야 하는 용어가 늘어났다.


그래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강아지가 아프다는 소식에 눈물을 흘리기 전에 현실을 따져보는 시간이 꽤 길어졌다. 정말로. 우선 비용적인 측면에서 따져봐야 한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갈지. 원장님은 폐 전이 확인과 함께 유선을 전부 절제하자는 의견을 주었다고 한다. 이참에. 개의 젖꼭지를 다 떼내는 결심을 하면서 '이참에' 같은 활기찬 단어를 써도 되나 싶지만. 수술을 그렇게 다 하게 되면, 비용을 최대한 과장해서 잡으면, 아마 우리 비상금으로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강아지의 병원 비용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기 때문에, 비상금이 모자라면 주식을 전부 팔아서 어떻게 해야 되긴 할 것이다. 비극적인 것은 우리 부부가 전세대출을 조금 갚는 바람에 비상금이 반토막 난 상황이라는 것이지만, 긍정적인 것은, 연말에 복지비용과 연초에 설 보너스가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 정도의 계산을 돌리고 나서 블랙이를 무릎에 올려주었다. 내가 의자에 앉아있을 때면 블랙이가 안아 올려달라고 펄쩍 뛰곤 했다. 두 발로 서는 자세는 닥스훈트의 허리에 매우 안 좋기 때문에 절대로 안아주지 않았는데, 오늘은 특별히 안아 올려서 등을 쓰다듬어 주면서 거실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서 무릎에 앉혀놓고 후리스를 덮어주었다. 블랙이는 정말 목소리 큰 징징이이기 때문에 한 번 떼를 받아주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블랙이가 중성화한 시기가 또 유선 종양과 관련이 깊은데, 언제 수술했는지를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서 내가 블랙이를 데려왔던 유기견 카페에 오랜만에 들어갔다. 블랙이가 센터에서 쓰던 이름인 "도도"를 검색해서, 도도한 ㅇㅇ이 ~ 들 사이에서 2013년에 작성된 글들을 확인했다. "도도"는 2013년 7월쯤에 센터에 입소해서 12월 말에 우리 집에 왔고, 우리 집에 올 때 이미 수술이 되어 있었다. 입소할 때도 중성화가 되어있었는지 여부는 확인하기가 어려웠지만, 나의 강력한 편견으로 품종견을 사서 길에 버리는 사람이 중성화를 시켜주었을 리 없다는 결정을 내리고, 2013년, 두 살에 중성화를 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너무 늦게 중성화를 한 탓에 블랙이가 유선 종양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블랙이를 버린 사람도 똑같이 암으로 고생하기를, 이왕이면 사망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그전엔 보지 못했던 "도도" 시절의 사진을 많이 발견했다. 데려올 때는 입양 공고에 올라온 것만 봤었는데, 그것도 새삼 충동적이고 이상하군. 블랙이는 "도도" 시절에 입소 후 적응도 잘하고 친구들과도 잘 놀고 사람도 좋아했다고 한다. 지금의 친구들도 싫어하고 사람도 싫어하는 모습과는 정반대인 것이다. 


아무튼 종양 제거 수술 자체는 잘 된 것이, 이전의 툭 튀어나온 젖꼭지가 알게 모르게 불편해 보였는데 지금은 걸을 때나 누울 때나 괜히 편해 보인다. 남편이 이불에 묻어있던 핏방울이 거기서 나온 것 같다고 해서, 오늘은 이불 빨래를 하고 정말 그게 원인이었는지, 이제는 정말 핏방울이 안 묻는지 확인해 보려던 참이었는데, 이젠 확인한다고 해서 마냥 홀가분해할 것도 아니게 되었다. 



노화라는 건 갑자기 지진처럼 찾아와서 하루 이틀 만에 결판이 나고 눈물로 보내주는 걸로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있는지도 몰랐던 신체 부위가 천천히 하나씩 사라지는 건 줄은 몰랐다. 사람도 비슷하려나. 사실 나는 블랙이가 10살이 될 때쯤 근처의 반려견 장례식장을 찾아놨었는데, 그냥 가성비 좋은 동물병원을 찾아서 적당한 비용적 타협점을 찾아 오래오래 관리하는 쪽으로 갈 걸 그랬다. 이미 최첨단 고비용 동물병원의 과잉 진료의 혜택을 봐버린 이상 나는 늦은 것 같다.


블랙이는 우리 부부의 마음과 통장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잘 먹고 잘 싸고 잘 짖는다. 황당해. 아무튼 이번 주말에 폐 전이 여부를 확인해야 눈물을 또르륵 흘릴지 펑펑 흘릴지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블랙이는 골골 80이다, 골골 소리가 너무 크긴 한데, 그렇다고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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