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크 증상과 관리
블랙이는 12살 닥스훈트이고, 노견이기도 하지만 품종견의 특성상 널리 알려진 유전병이 있다. 바로 디스크. 짧은 다리와 긴 허리를 가진 품종적 특성 탓에 디스크 발병은 시기의 문제일 뿐 없을 순 없다고 한다. 이렇게 유전병이 생길 수 밖에 없는 품종을 만들어내기 위해 교배를 반복하는 인간이 밉다. 심지어 같은 닥스훈트인 둘째 브라우니는 강아지 공장에서 유기된 것으로 추측되어서, 나의 강아지 사진을 올리는 것이 품종견을 자랑하고 품종견 구매 풍토를 조장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걱정하는 부채감도 있다. 변명으로 첫 단락을 마무리해보자면, 우리 강아지들은 둘 다 유기견이었고 나는 앞으로 품종견을 입양할 생각이 없다.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가면, 블랙이가 처음 디스크 증상을 보인 것은 7살인가 6살 즈음이었다. 사실 꽤 지난 일인데다 기록을 별도로 해두지 않아서 나이나 시기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고, 한 장면만 기억이 나는데, 그 때 어디에 살았었는지를 가지고 시기를 짐작하는게 고작이다. 나와 블랙이는 당시 살던 집 근처를 산책하고 있었는데, 육교를 건너서 공원에 가는 것이 산책 루틴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블랙이와 육교를 건너려고 하는데 갑자기 블랙이가 계단을 올라가기를 거부했다. 쾌활하게 계단을 오르내렸던 강아지인지라 왜 갑자기 떼를 쓰냐며 줄을 당기는데, 블랙이가 앞발만 올려놓고 어쩔줄을 몰라했다. 갑자기 위기감에 눈물이 났다. 계단 잘 올라가면서 왜 그러냐며 안은 채로 육교를 올라가서 반대편으로 건너가 내려오는 계단에 내려놓았는데, 블랙이는 내려오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대로 울면서 동물병원에 갔고, 디스크 진단을 받았다.
그때의 나는 디스크가 뭔지도 잘 몰랐을 때여서, 그럼 수술을 받아야하냐고 물었는데, 그런 건 아니고 주사 맞고 약 먹으면서 관리하면 된다고 해서 안고 돌아왔던 것 같다. 당시의 블랙이는 6키로로 꽤 무거웠기 때문에 안고 팔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 앞으로 못걸으면 어떡하나, 했는데 약을 먹고 한 3일인가 만에 제대로 걸어서 걱정이 쏙 들어갔다. 이후 블랙이의 디스크 증상이 간헐적으로 반복되었고, 한 번 정도는 더 울었던 것 같다. 1년 뒤 인가에 한 번은 24시 동물병원에 데려갔었는데, 거기선 6만원짜리 걸음보조기구 같은 것을 추천했었다. 약간 고민하다가, 수의사쌤이 국산이랬는데 그 제품에 메이드인 차이나라고 써있어서 안 샀었다. 당연하게도 디스크는 그런걸 지속적으로 착용해야 되는 병은 아니다. 어쨌든 몇 번의 반복 이후로는 적응해서 꽤 태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블랙이와 브라우니 한정일 수도 있겠지만 우선 눈에 띄는 디스크 증상으로는 위의 사건처럼 1) 계단을 못 오르내리고, 2) 몸을 제대로 못 털고, 3) 두 발로 뛰는 행동을 하지 않고(평소엔 맨날 함), 4) 척추를 따라 쓰다듬으면 눈에띄게 긴장하는 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욕이 좋고 다른 부분에 문제가 없으며, 개 바이 개로 산책에도 거부반응이 없다. 특히 블랙이는 디스크고 뭐고 맨날 산책가자고 하기 때문에 다른 증상을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 브라우니는 디스크 통증 여부와 무관하게 산책가는 걸 탐탁치 않아 하기 때문에, 이 강아지 또한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
치료는 간단하다. 뛰거나 크게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일주일 정도 있으면 통증이 사라지는 듯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는데, 이 과정에서 고통을 줄여주고 싶거나, 너무 심하게 못걷거나 하면 주사나 약물을 동원하는 것 같다. 나는 사람 자체가 기침 한 번 하면 무조건 병원가는, 안아키와 정반대에 있는 엄살 인간인지라, 우리 강아지들도 조금 힘든 것 같으면 무조건 병원에 데려간다. 그러나 어지간하면 주사는 맞히지 않고 진통제로 관리하는 편이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산책을 좋아하는 블랙이가 산책을 못가게 되는 것이 슬퍼서, 개모차를 샀다. 사실 '유모차'라는 말보다 '유아차'를 쓰고 싶고, 그래서 '개모차'보다 더 나은 단어를 찾고 싶은데, '개아차'는 특정 브랜드를 비난하는 단어 같아서 쉽지 않다. 좋은 표현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쨌든 개모차는 당근에 검색하면 5회 이하로 사용했는데 강아지의 심한 거부로 인해 내놓는 상태 좋고 저렴한 매물이 많기 때문에, 당근에서 사서 한 5년 째 잘 쓰고 있다. 딴 길로 샌 김에 덧붙이자면, 우리집 강아지들도 처음에 개모차 타기만 하면 뛰어내렸는데 탈 때마다 간식을 미친듯이 뿌렸더니 이제는 잘 타고 다닌다. 브라우니는 안 걷고 개모차만 타고 싶어하고, 블랙이는 그래도 걷고 싶다고 내려달라고 하는 편이긴 한데, 허리 아파서 타는 날에는 저도 아는지 얌전히 바람을 쐰다.
디스크 통증은 관리하기에 따라 빈도가 조절되는 것 같은데, 평소에 산책을 잘 해주고 체중 관리를 잘 하면 잊을랑 말랑 할 때 1년에 한 번 정도만 발생한다. 그러면 오, 디스크, 하면서 병원에 가거나 산책을 중단하거나 하면 된다. 블랙이의 경우 자주 발생했을 땐 4개월 정도에 한 번 씩 증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근래에는 1년 정도 주기로 오는 것 같다. 사실 잘 기억이 안날 정도가 되었는데, 익숙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눈물을 쏙 빼놓는 두 가지 사건들이 있었다.
하나는 브라우니에게 첫 디스크 증상이 발생했을 때다. 2~3년 전 쯤이었나, 브라우니가 10키로가 넘었을 때였다. 덧붙이자면 브라우니는 2살 때 우리집에 왔고 당시에 6키로였는데, 갈비뼈가 다 드러나있었다. 안쓰러움에 먹을 거 실컷주고 거기에 브라우니 본인의 식탐이 더해져 11키로까지 쪘었는데, 닥스훈트치고 고도비만이었고 그 때 지나가는 사람마다 뚱뚱하다고 살빼라고 해서 싸울 뻔한 적도 있으니 말 다했다. 지금은 맹렬 다이어트를 통해 7키로 후반까지 뺐다. 아무튼 당시의 나와 동생의 나태함으로 인해 살찐 채로 굴러다니던 브라우니는 살찐 닥스훈트에게 백 프로 찾아오는 디스크 통증을 겪게 되었고, 처음 보는 아픈 모습과(사실 브라우니는 강아지 공장에서 가져온 여러 가지 질병이 있었지만 아픈게 티나는 건 처음이었다) 주인으로서의 미안함으로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브라우니의 디스크 증상은 금방 사라졌고, 살을 많이 빼서 그런지 그 후론 한 번도 디스크로 아팠던 적이 없다.
두 번째 사건은 꽤 최근인데, 2023년 7월 31일에 블랙이와 브라우니가 스케일링을 받고 나서였다. 양치를 자주 해주지 않는 주인의 게으름으로 인해 블랙이와 브라우니는 1년에 한 번씩 스케일링을 받고 있었는데, 이번엔 새로 옮긴 최첨단 동물병원에서 처음으로 받는 스케일링이었다. 블랙이는 12살의 나이와 주인의 게으름 탓에 대부분의 이빨이 좋지 않았고, 스케일링을 하면서 한 열 개 정도의 이빨을 뽑았다. 전신 마취 시간이 길어지지 않도록 2시간 내에 스케일링+발치+종괴 제거를 끝내느라 미처 못 뽑은 이빨이 있었다는 설명을 들었을 정도로 꽤 긴 시간이었다. 강아지는 사라진 신체 부위에 대한 상실감을 느끼지 않는 다더니, 블랙이는 앞니가 하나도 없는 개치곤 여전히 괄괄했다.
그리고 8월 1일 밤, j와 나는 초전도체 때문에 다퉜고, 나중에 얘기하자는 말을 끝으로 8월 2일 오전에 나는 출근했다. 여전히 j가 왜 화가 났는지 이해가 안되어 연락을 하지 않고 오전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10시경 j로부터 블랙이가 일어나지 못해서 연차를 냈다는 연락을 받았다. 몇 걸음 가다못해 자꾸만 옆으로 눕는다는 것이었다. 누워있는 와중에서도 밥은 먹지만 일어나서 먹지는 못한다고, 다니던 병원에 이미 동영상을 보내고 증상을 설명했으나 상태를 지켜보자고 답이 왔다고 했다. 이미 3월 췌장염 때 한 번 크게 놀랐던 적이 있는지라 체온을 재봐달라고 하고 나는 바로 반차를 내고 집으로 갔다. 팀 동료에게는 부부싸움을 했는데 강아지가 아파서 화해고 뭐고 일단 집에 가봐야겠다는 물색없는 얘기를 주절주절 하면서.
체온은 정상 범위 내였는데, 집에 가서 본 블랙이는 정말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계속 허리가 굽어있었고, 반가워서 몇 걸음 오다 못해 자꾸 옆으로 누웠다. 넘어진 건 아니었고 정말 자연스럽게 누웠는데 그 상태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부부싸움의 앙금이 남아있어서 j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지도 걱정의 말을 하지도 못하고, 블랙이를 쓰다듬으면서 안 들키려고 필사적으로 고개를 숙인채 눈물을 흘렸다. 병원에서 상태를 지켜보자고 한 것처럼 디스크가 맞는 것 같긴했는데, 처음 보는 심각한 증세에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누워만 있는게 마음이 아파서 푹신한 곳으로 옮겨주면 자꾸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블랙이가 누워있는 와중에도 아침 저녁 쿠싱약을 먹여야 했는데, 누워서 뭔갈 먹는게 좋을리가 없으니 많이 주기는 어려웠다. 급하게 고구마를 사와서 쪄서 약과 비벼서 먹였다. 식욕은 있었는지 잘 먹었다. 그 바로 다음날이 병원 예약일이어서 그 전까지 심각해지지 않기만을 바랐는데, 다행히 나의 지극정성 덕분인지 저녁 쯤이 되자 블랙이는 꽤 호전되었다. 꽤 오래 걸어다니기도 하고 용변도 보고, 눕는 시간이 줄어들고 푹신한 곳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원래 몸을 말고 암모나이트처럼 자곤 했는데, 영 이상하고 불편해보이는 모습으로 자긴 했지만 어쨌든 시간이 지날 수록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았다.
8월 3일 아침에 자고 일어난 후로 다시 상태가 악화되었다. 밥도 안먹으려고 하고 누워있는 시간이 늘었다. 전날 저녁에는 밥+약을 먹었는데, 약에 포함된 진통제(스케일링 관리로 처방받음)가 유효했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아침에는 밥을 안먹으려 해서 약도 못먹였고, 그래서 상태가 안좋아진 것 같았다. 오후에 병원을 갔는데 역시 디스크 같다는 얘기를 듣고, 진통제를 더 처방받아서 돌아왔다.
블랙이는 천둥번개가 칠 때와 아플 때 유독 더 징징대면서 보호자를 쫓아다니는데, 이 때도 몇 걸음 못가는 와중에도 계속 나와 j를 쫓아다녔다. 저녁이 되면 호전되고 아침이 되면 다시 상태가 나빠지는게 반복되어서, 8월 4일 아침에는 출근하는 j를 쫓아 현관까지 갔다가 내가 있는 안방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거실에 누워서 울고 있었다. 누워서도 하고 싶은게 있는지 씩씩거려서, 이럴 때 사람 말을 할 줄 알면 얼마나 좋겠나 싶어 속상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그러나 속상한 와중에도 오래 전에 잡았던 약속이 있어 나는 j에게 블랙이를 맡기고 2박 3일짜리 여행을 갔다. 이렇게 말하니까 정말 철없는 보호자 같지만....... 블랙이는 점점 누워있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아침에도 꽤 괜찮은 모습을 보여서, 8월 7일에 내가 귀가했을 때는 거의 다 나아있었다. 처음에는 다시는 못 걷는 줄 알고 심장이 철렁했는데, 어느새 다 나아서 지금은 잘 걷고 뛰고 있다. 차도가 있고 나서도 2주 정도는 개모차로만 산책을 했는데, 블랙이가 1분에 한 번 씩 내려달라고 뛰어오르는 통에 완쾌했음을 알 수 밖에 없었다.
j도 디스크 때문에 누워만 있던 적이 있어서, 생각지도 못하게 디스크 관리에 관해 많이 배우게 되었다. 개나 사람이나 디스크 증상 발현 및 치료, 관리는 비슷했다. 수술은 최후의 방법이고 평소에 체중관리 잘하고 열심히 걸어야 된다는 것도. 나만 빼고 가족 구성원이 전부 디스크 통증 경험을 갖고 있는 이런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친구는 디스크가 가족력이네~라고 했었다. 이 이야기가 너무 좋아서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