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익명의 견주 Nov 08. 2022

가성비 좋은 히어로즈

키움 히어로즈의 세 번째 준우승 소감


잘 싸웠지만 졌다. 히어로즈의 세 번째 한국시리즈는 또 패배로 막을 내렸다. 2021 시즌 스토브리그에서 개똥 같은 행보를 보이던 키움 히어로즈에게 실망해 야구를 안 본다고 선언했지만, 곁눈질로 보던 포스트시즌에서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으니 별도리가 없었다. 우승할지도 모르는데 봐야지.


어렵게 끌고 가던 1차전을 결국 이겨냈을 때, 우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알던 히어로즈는 그런.. 긴박한 승부를 자연스럽게 놓치곤 했다. 설레발에 괜히 아는 키움 팬이란 키움 팬한테는 다 연락을 했었다.(그래 봤자 두 명)


우승 못하겠다, 싶었을 때는 승패패승을 해서 시리즈 스코어 2:2가 되었던 4차전이었다. 이승호의 깜짝 호투로 이긴 건 좋은데 알 수 없는 기시감에 2014년 한국시리즈 스코어를 확인해보니 승패패승패패였다. 찾아본 뒤에 재수 없는 소리를 한다고 나무를 세 번 쳤다. 이제 보니, 이게 바로 데이터 마이닝.



그리고 이제는 정말 받아들일 때가 온 것 같다. 히어로즈의 유격수 자리에 흐르는 수맥을... 항상 코시까지 팀의 멱살 잡고 끌고 올라온 유격수들이 코시에서 클러치 실책을 하는 것을 표현하는 독일어 단어가 있을 것 같다. 그들은 모두 메이저리그에 갔기에, 어쩌면 신준우와 김휘집도 대성하여 메이저에 간다는 예언일 수도. 그전에 실책을 좀 안 하면 안 되나...


언제나처럼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상대팀의 색깔로 도배된 스포츠 코너에서 “졌지만..” 어쩌고로 시작되는 기사들을 찾아서 봤다. ‘예상을 빗나간...’, ‘언더독의 반란...‘ 어쩌고로 시작하는 지겹도록 많이 본 기사들과, 외울 정도로 많이 나오는 총연봉이 얼마나 적은가에 대한 리포트들. 아, 이번엔 마지막에 이벤트성으로 등판한 김광현의 연봉 81억 보다 히어로즈 팀의 총 연봉 56억이 적어 드라마틱하긴 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이 적은 돈으로 준우승까지 하다니!

가성비 좋다고 자랑하고 싶은 키움 히어로즈 팬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낭만 야구 따위도, 명품 조연 (그럼 상대팀은 보세 주연 인가요) 따위도 그만하고 싶고 그저 우승하는 걸 보고 싶을 뿐이다. 왜냐하면, 프로 세계에서 2등은 꼴찌와 다를 바가 없으므로.

선동열이 히어로즈의 감독으로 온다면 어떨까?


스몰 마켓 팀의 한계일까. 어쩐지 열받아서 찾아보니 머니볼의 오클랜드도 빌리 빈이 단장이 된 이후 야구를 너무~ (가성비 있게) 잘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승을 한 적이 없단다. 우승도 못해놓고 괜히 유명해져 가지고 이장석 같은 사람이 낭만을 가지잖아... ...


도대체 언제 우승할 수 있는 걸까? 그냥.. 이대로 계속 가성비 좋은 팀으로 남게 되는 걸까. 2050년쯤에는 9개 구단 모두에게 코시에서 패배하는 기록을 세울 수 있을 것만 같다. 앞으로 여섯 팀. 응원팀을 옮기려고 부단히 노력해봤지만 (사실 생각만 하고 실천은 안 했다) 잘 안되더라. 역시.. 남은 건.. 종목을 배구로 바꾸는 게 답일까.


'언더독의 반란'은 대체로 우승팀을 크게 위협하는데서 끝난다. 드래곤볼의 빌런 프리저처럼 승리자의 역경이자 성장의 발판으로 대미를 장식하며, 반란으로서 진압되고야 만다. 어차피 이 팀이 빅마켓이 될 기회는 정용진의 인수 제안을 깽판 놓으면서 날아갔다. (그때 팔았어야..) 그렇지만 '언더독 어쩌고 연합'의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우승을 희망 삼아, 해체 혹은 인수 전까지 힘내보자 히어로즈!

작가의 이전글 홍대병과 스드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