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2021년 겨울에 작성한 글입니다
박병호가 히어로즈를 떠났다.
누군가의 "팬"이라고 말할 때는 뒤이은 질문들에 답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왜 히어로즈의 팬이 되셨어요?" 연고지가 뚜렷한 지방 구단의 팬과는 달리, 서울 연고의 구단 팬으로서 감상에 젖은 대답을 늘 준비해둔다. "심수창이라는 투수가 18연패를 했을 때요..." 나는 넥센에서 18연패를 끊은 심수창의 눈물의 인터뷰와 꼭 1승을 안겨주겠다는 동료들의 인터뷰를 보고 그 해 성적이 바닥을 헤매던 넥센 히어로즈를 작게 응원하게 되었다.
내가 히어로즈의 팬임을 자청하기 시작했을 때는 2013년부터로, 그 전까지는 그냥 친구가 응원하는 구단을 같이 응원한다고 했었다. 2013년 준플레이오프 5차전 당시에는 회식 중이었고, 마침 그 음식점에서 준플레이오프 5차전을 틀어뒀었고, 언더독인 히어로즈의 승리를 내심 바랐지만 스코어가 많이 기울어진 상황에서 애써 외면한 채로 술을 따르고 회사 뒷담화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티비는 내 뒷편에 있었고, 굳이 몸을 돌리지만 않는다면 히어로즈의 2013 시즌이 끝나는 것을 보지 않고 모르는 척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큰 소리가 났다. 회식 자리에 있던 과장님과 대리님들이 전부 내 뒤의 화면을 보면서 손가락질을 하면서 오~ 하는 소리를 냈고, 몸을 돌려 화면을 보던 그 순간이 슬로우 모션처럼 기억 난다. 내 앞에 놓인 주종이 소맥이었던 것도. 9회말 투아웃이라는 드라마 제목 같은 상황에서 동점 쓰리런을 날린 박병호가 그라운드를 도는 화면.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다, 시간 제한이 없는 스포츠의 매력을 보여드리죠, 같은 야구 명언들이 주르륵 지나가는 장면. 나는 회식자리에서 눈물을 보인 직원이 되었고, 그 후의 연장전 내용을 기억하는 히어로즈 팬은 아마 없을 것이다. 다들 알겠지만 졌다. 그 후로 나는 부인할 수 없는 히어로즈 팬이었다.
히어로즈의 팬으로서 맞은 2014년은 최고의 한 해였다. 50홈런을 넘은 박병호와 201안타를 친 서건창과 40홈런-100타점을 거둔 유격수 사이에서 MVP 집안싸움이 벌어졌고, 2위에 올라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그 화려했던 시즌의 마지막 경기가 된 한국 시리즈 6차전이 끝나고 선수들이 나오는 출구에서 기다리면서 무반주로 영웅 출정가를 불렀을 때, 죄송하다고 허리를 숙이는 손승락에게 괜찮다고 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던 히어로즈 팬들은 2015년에는 우승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나도.
나는 아직도 그 때 추억이 있어선지 영웅 출정가를 부를 때마다 울컥하는 기분이 든다. 특히 벗이여, 친구여, 나의 자랑이여, 할 때. 야구에 제대로 과몰입한 나는 KBO에도 지원했었다. 면접을 보러갔을 때, 영어 실력을 확인한다며 가장 좋아하는 선수에 대해 영어로 브리핑해보라는 질문이 있었다. 병호 팍 이즈 마이 히어로.. 인 투 따우전드 떨틴.. 세마이 플레이오프.. 말을 띄엄띄엄 이어가며 내가 박병호를 사랑하는 이유를 늘어놓다가 또 2013년 준플레이오프 얘기를 하다가 울컥했는데, 안 그래도 영어도 못하는데, 눈물은 그렁그렁해서 발음도 꼬이고 엉망이 되었었다. 압박면접 때문에 운게 아니고 그냥 난 박병호 얘기만 하면 눈물이 나는 사람인데. 망했다고 생각했던 면접은 알 수 없게도 합격해서 최종 면접까지 가긴 했었다. 최종면접에서 만난 양해영 씨는 나에게 도통 관심이 없어보여서 결국은 탈락했지만.
그 후에 내가 최종합격해서 다녔던 회사에는 이력서를 총 세 번 냈었는데, 1차는 존경하는 사람 부모님, 불합격, 2차 존경하는 사람 세종대왕, 불합격, 3차에 에라 모르겠다하고 적은 찐으로 존경하는 사람, 박병호. 면접관이 박병호가 누구냐고 물어봤었는데, 좋아하는 야구선수라고, 끝날 때 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어서 그렇게 살고 싶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3차에 합격해서 잘 다녔다. 박병호의 가호가 있었던 모양이라고 아직도 생각한다.
나는 히어로즈의 우승을 간절히 바랐다. 취준생일 때도 취업과 히어로즈의 우승 중에 선택하라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히어로즈의 우승을 골랐다. 내가 기여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기도 밖에 남지 않아서 더 간절했던 것도 있다. 그래서, 히어로즈의 우승에 관여할 수 있는 사람이, 히어로즈의 우승을 방해하는 건 정말 참을 수 없는 배신감으로 다가왔다. 박동원과 조상우의 성범죄 논란, 한현희와 안우진의 술자리 논란이 그랬다. 히어로즈에게 돈 한 푼 안 받는 일개 팬이 그렇게 염원하는 우승을, 높은 성적을, 그라운드 안에 있는 사람이 의욕 없이 망쳐버린다는게 너무 모욕적이었다. 그렇게 해도 성적이 나오고 잘 하니까, 새벽에 술 먹어도 잘 던지니까, 선발 로테이션 지났으니까, 라는 핑계를 대기엔 그들은 박경완도 류현진도 아니었고 발끝에도 못미치는 선수들이었다. 시즌 중에 불명예스럽게 이탈한 그들로 인해 히어로즈는 해당 시즌을 모두 성과 없이 마쳐야했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이 의욕도 없고 책임감도 없는데, 우승해라, 이겨라, 하는게 우습게 느껴져 나도 그 즈음 야구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개인의 일탈, 글쎄, 일탈할 개인을 거금을 주고 영입하는 구단이 댈 핑계는 아닌 것 같다. 푸이그는 이미 사회란에서 더 자주 보인다. 2021년 초 괴이한 LED를 포함한 키움히어로즈 멤버십을 가입하고 모 은행에서 운영하는 야구 구단별 적금을 가입했을 때만해도 이런 스토브리그를 맞이할 줄은 몰랐다.
시즌 중에 한현희, 안우진이 아웃되고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유명한 부분처럼 내 마음속에서 영영 죽여버렸다) 서건창이 떠나고 오늘은 박병호가 떠났다. 단 한 번도 이 구단이 내부 FA를 잡을거라고 기대한 적이 없었고 유한준이나 투수 김상수가 이적할 때도 계획대로, 였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함께 박병호가 이적한다는 소문이 들릴 때는, 이 거지 같은 (사전적 의미) 구단을 벗어나서 어디에서든 우승 반지를 끼고 은퇴하길 바랄 뿐이었다. 진짜로 박병호가 히어로즈를 떠났다. 내가 차기 총장감이라고 밀고있는 이정후와 근성있는 선수들이 여전히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히어로즈이지만, 30억도 없고 모럴 리스크 관리도 못하고 운영 전략도 어처구니가 없는 이 구단을 응원해야하는 나의 마지막 의무감이 사라졌다.
어떻게 히어로즈의 팬이 되었느냐 하면, 언더독을 응원하고야 마는 운명들이 늘 그렇듯, 열악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노력과 그라운드에 떨어지는 땀과 눈물에 감동 받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형으로, "왜 팬이냐"고 한다면, 히어로즈의 우승과 선전을 같이 응원하고 열망하기 때문이겠다.
나는 이제 히어로즈의 우승을 바라지 않는다. 기대수명 130년인 이 시대에 100년 안에는 우승하겠지, 라며 자조하지도 않을 것이다. 죄를 짓고 야구로 갚는 선수가 던지고, 물의를 일으키고 야구로 갚고있는 선수가 받고, 이닝이 바뀌면, 야구로 다 갚지도 못할 만큼의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선수가 배터박스에 들어서는, 이 팀이 우승하는 것은 너무 어린이들에게 해롭지 않은가?
ps. 1년 정도가 지나 2022년 한국 시리즈가 끝난 시점에서 이 글을 다시 보니, 열받아서 지키지도 못할 말을 했구나 싶다. 히어로즈 망해라, 아니 망하지마. 우승 하지마, 아니 제발 우승해. 내 마음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