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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하 Nov 06. 2022

수렴

수렴하다: 의견이나 사상 등 여럿으로 나뉜 것을 하나로 모아 정리하다

이야기를 듣는 건 HR 업무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나 자기검열이 심한 탓에 입을 여는게 쉽지 않은 나로서는 필연적으로 이야기를 많이 수집할 수밖에 없다.


식사를 하며 편하게 듣는 경우도 있고 누군가 작정하고 자리에 찾아와 어렵운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건네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인사팀은 사내 고충 상담소가 아니다. 인사 업무에는 채용, 보상, 평가 등 고유의 영역이 있지만 인력운영이라는 업무를 하다 보면 직원들의 의견을 듣고 반영할 필요가 있을 뿐이다. 오히려 임직원들의 각종 고충을 듣고 심리상담을 해주는 부서는 따로 존재한다. 고충을 이야기하는 빈도가 너무 잦으면 고통스럽지만 어쩌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오죽 어려운 상황에 처했고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이해해보려 한다. 기본적으로 인사는 사람에 관한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때로는 사람들의 고충은 곧 나의 업무가 되어 책상 위에 놓인다. 본인이 수행하고 있는 직무가 적성에 맞지 않는 사람들의 커리어는 함께 고민해야 하고, 개인 가정사로 인해 근무지를 옮기고 싶어 하거나 직장 상사와 갈등을 겪어 부서를 옮기고 싶은 사람들은 즉시가 아니더라도 향후에 반영하려 노력해야 한다. 매번 적시에 조치를 해주면 좋겠지만 커리어나 근무지를 변경하거나 직장 상사를 바꾸는 일은 결코 하루 만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여러 상황과 사람들의 의견을 조율해야 하고, 사실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이뤄지기 어려운 경우가 더 많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감정이입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에 스트레스가 누적되기도 한다. 정신적인 부담으로 다가올 때도 있고 신체적인 피로감으로 표출될 때도 있다. 그 피로감이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공감을 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내 곁을 지키고 있던 사람 덕분이었다. 나는 분명 일을 끝내고 귀가했지만, 그 잔상이 내 낯과 몸에 그대로 묻어 아끼는 사람에게도 나쁜 영향을 주곤 했다. 경청하고 공감을 한다는 건 끊임없이 에너지를 소진하는 일이다.



직장은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공동의 목표를 추구한다는 유기적인 조직이다. 따라서 직원들이 회사에서 겪는 각종 어려움들은 일상 속의 민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일'이 얽혀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누군가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개인의 업무나 일상에 좋든 나쁘든 영향을 주고 이것은 조직의 성과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래서 인력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최대한 사명감을 갖고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믿는다.


인력을 운영한다는 것은 단편적으로 직원을 채용, 배치 평가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는 목표 안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대하는 태도나 정서, 성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최적의 포지션에 인재를 배치하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들어주어야 한다. 바로 이런 순간에 직원들의 소소한 이야기들의 합집합이 제법 유용하게 사용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모여진 이야기는 꽉 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000명의 직원이 존재한다면, 1000가지의 고민이 있을 것인데 그것은 인사팀으로 수렴할 뿐 결코 발산해서는 안 된다. 특히나 사람에 관한 이야기는 x(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의 수)가 한없이 증가할 때 f(x)가 음의 방향으로 무한히 발산하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받은 이야기는 내 손안에 꼭 쥐고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힘이 되기도 하다.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잘만 활용한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 


요즘 많은 기업들이 관심을 갖는 조직문화 개선이나 변화, 혁신은 거창하게 시작되지 않는다. 조직의 변화나 일렁임은 때론 매우 사소한 곳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지점은 직원들의 사소한 어려움, 불편함, 때론 너무 무료함을 느끼고 있는 것과 같은 이슈들이다. 적절한 니즈에 따라서 이야기들을 업무에 반영은 하되, 그것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목적으로 사용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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