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해 보이지만 중요한
회사의 리더들은 현황이 궁금하다.
기업의 매출목표부터 진척도, 달성률에 이르기까지 일/월/연단위로 집계되는 현황을 늘 알고 싶어 한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회사의 경영진으로서 현재 상황을 정량적으로 명확히 파악해야만 그에 맞는 방향성을 수립하고 부족한 점에 대해서는 대책을 세워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HR부서에는 인사현황을 관리한다. 각 조직별 임직원 수부터 직원들의 인사정보, 때로는 각 현장과 거점별 인원 현황을 집계한 자료들이다. 때로는 각 인원들의 실적과 평가, 개인정보가 포함되어 있는 인사현황은 경영층이 가장 궁금해 마지않는 자료 중 하나이다. 그래서인지 매월 첫 주가 되면 늘 인사정보를 업데이트해서 보내달라는 요청을 여러 부서를 통해 받는다.
내가 팀의 막내이던 시절에는 바로 이 현황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었다. 먼저 매일 아침 우리 조직의 인원현황을 업데이트해서 엑셀로 예쁘게 정리를 해놓는다. 그러면 각 현업부서에서 요구하는 데이터와 양식 기반으로 로데이터(Raw data)를 가공해서 제공하는 그런 업무였다. 거의 매일같이 자주 최신화를 해야 할 이유가 있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회사가 성장하고 조직이 커지면 일단위로 입사 혹은 퇴사하는 인원이 발생한다. 휴직과 퇴직은 물론 포상과 징계의 내역들도 실시간으로 누적되기에 최신 자료를 상시로 요청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필요성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장 힘든 점이 있다면 아침마다 현황을 깔끔하게 정돈하는 작업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투입된다는 점이었다.
매일 아침 일찍 작업을 하다 보면 군복무를 하던 시절 부대에 장성급이 방문하던 날이 생각났다.
어쩌다 우리 부대에 소위 '스타'라 불리는 고위직이 방문을 하면 직급을 막론하고 부대 청소와 미화를 위해 인원들이 전날부터 총동원되곤 했다. 어찌나 그 정도가 심했으면 제초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잔디의 모양을 다듬고 사무실 창틀 밑에 끼어있는 찌든 때와 먼지까지 제거해야 했다. 그럴 때면 혼자서 이런 상상을 했다.
"과연 모자에 별이 2개나 새겨진 장군이 부대에 방문한 다음 조용히 창틀로 이동해서 손가락으로 먼지가 잘 닦였는지 검사를 할까?"
정답은 당연히 아니다. 투스타가 부대에 방문하면 중대장 선에서 맞이하고 적당히 순시한 후에 일정은 종료된다. 추가적인 행사가 있어봐야 병사들과의 간담회 수준일 것이다. 화단에 쪼그리고 앉아 나무가 정갈하게 단장되어 있는 모습을 감상하고 제초나 화장실 청소 상태를 평가할리가 만무하다.
그래서 가끔 현황을 만들고 있을 때면 그때가 생각이 났다. 내가 인사현황을 정확하고 정돈된 방식으로 만들어서 보고하면 리더들은 만 명에 이르는 인원들을 모두 검사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단순 작업 수준의 현황 관리가 어쩌면 업무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건 느끼고 있었다. 비단 윗분들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황은 모든 인사업무의 기초가 된다. 조직의 정원을 관리하거나 채용 계획을 세울 때, 정년퇴직 예정자들을 기반으로 각 조직의 인원소요를 파악할 때 핵심이 된다.
각 인원 하나하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각 조직의 업무 특성에 적합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투입하기 위함도 있다. 그래서 인사정보는 정확해야 하고 인원별로 필요한 정보가 잘 붙어있어야 한다.
실제로 본사의 각 부서별 사진 현황이라는 것을 임원분께 제출했을 때 아주 미세한 오류를 찾아 수정해 주신 사례도 있다. 수천 명 규모의 조직을 관리하는 리더는 각 직원들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시간이 흘러 회사에서 '업무자동화' 프로젝트가 대폭적으로 추진되면서 인사현황 작업은 부담을 크게 덜 수 있게 되었다. RPA(Robotic Process Automation)이라는 기술에 힘입어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로봇이 완성된 형태로 작업을 완료해 놓으면 담당자들은 필요에 의해 가공하거나 점검만 하면 되는 것이다. 로봇이 오류 없이 잘 만들 수 있게 설계하는 작업도 사실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단 한 번 완성을 해놓으니 매일 아침 투입되던 업무 시간을 다른 가치 있는 분야에 쓸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담당이 바뀌었지만 가끔 나에게 현황 요청이 오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필요한 정보를 주려 노력한다. 그들 또한 또 다른 현황을 임원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 제출하기 위한 목적일 테니 말이다.
다른 부서나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과 교류를 할 때 유사한 고충을 들었던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이 작업을 하기 위해 입사했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했다. 그때 내가 속으로 생각한 건 '그러려고 입사한 게 맞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인사현황이었지만 다른 기업의 누군가에게는 매출, 고객, 서비스만족도의 현황일 것이다. 결국은 현황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회사에서 데이터는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현황 업무를 거쳐가는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그 중요성을 인지하고 때론 사명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한 편으로는 그 자료를 받아서 보는 사람들이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세하게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HR에서 보상은 '금전적 보상'과 '경험적 보상'으로 나뉜다. 때로는 담당자의 작은 수고를 알아주고 칭찬해 주는 것만으로도 큰 경험적 보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때 비로소 담당자의 자긍심이 업무와 긍정적인 시너지를 발생시켜 자료의 수준도 자연스레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세상 누구든 자신이 직접 수행한 작은 일에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갖고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