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수(硏修): 학문 따위를 연구하고 닦음
나이가 들면서 아쉬움을 느끼는 순간 중 하나는 행복한 기억의 휘발성을 실감할 때이다. 지나고 보면 인생이 마냥 비극적이지만은 않다. 오랫동안 추억할 수 있는 예쁜 순간은 누구에게나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바쁜 일상을 살아내다 보면 그 기억은 다듬어지고 일부는 소멸된 채로 깊은 서랍 속에 놓인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의 술자리 대화 주제로 기억의 한 조각이 언급되면, 그제야 마음속에서 툭 튀어나오는 것이다. 오랜만에 방을 청소하다가 발견한 먼지가 수북이 쌓인 사진처럼 잠시 만지작거리고 이내 내려놓게 되는 추억이다. 나에게는 신입사원 연수가 그렇다.
시작은 널따랗게 펼쳐진 주차장이었다. 수백 명의 신입사원을 서울 외곽에 있는 연수원으로 실어 나르기 위한 버스들이 주차장에 늘어선 모습은 경외감마저 느끼게 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놀라운 장면은 모나미 볼펜을 연상시키는 차림으로 버스 앞을 어색하게 서성이고 있는 수백 명의 내 분신들이었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정보는 신입사원 최종 합격자 발표 날에 홈페이지에서 확인했던 합격통지서 내용이 유일했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좀처럼 감을 잡기 어려운 막연한 불안감과 새로운 시작이라는 설렘을 안고 버스에 올랐다.
연수원 강당에 처음 도착했을 때 담당자는 흡사 훈련소에 입소했을 때 만났던 조교를 떠올리게 했다. “여러분은 더 이상 대학생이 아닙니다” 라며 엄격한 톤으로 대사를 읊는 그의 모습은 조금 작위적이기도 했다. 아마도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새내기들에게 조금은 긴장하고 갖춰진 형태의 모습을 기대했으리라. 그때 나는 잠시나마 미래의 나를 상상했던 것 같다. 언젠가 내가 신입사원을 인솔할 기회가 있다면 이 보다는 훨씬 다정한 쌤이 되어 있겠다고 말이다.
호랑이 조교의 관문은 잠시였을 뿐 곧 따사로운 나날들이 펼쳐졌다. 전체적인 연수원 생활은 대학교 신입생 시절을 연상시켰다. 각기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이제는 같은 조직에 소속감을 갖게 되는 과정이었다. 새롭게 배우는 지식들은 어찌나 많은지 매일 시간표는 빼곡했지만 부담을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을 잠시 접어두어도 된다는 안정감은 곧 무한한 자유로움을 선사했고 우리들은 빠른 속도로 친해졌다. 학창 시절과는 또 다른 형태의 낭만이 가득했다.
행복하다고 실감할 수 있었던 건 늘 곁에 있었던 좋은 사람들 덕분이다. 날씨가 좋은 어느 날 견학을 간다거나, 떠들썩한 레크리에이션과 체육대회를 즐긴 것도 좋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우리는 하루 일과가 종료되고 나면 빈 강의실에 둘러앉아 그렇게도 많은 대화를 나눴다. 각자가 살아온 이야기가 뒤섞여 끊임없이 재생산되었고, 쉽게 마침표를 찍기 어려운 글의 문단처럼 남아있었다. 여러 명이 각자의 삶을 단편으로 엮는다면 꽤나 흥미로운 옴니버스 소설이 만들어질 것 같았다. 연수가 끝날 무렵에는 훈련소 동기들이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언젠가 꼭 다시 만나자며 부질없는 다짐을 하는 것처럼 미래에 대한 많은 약속들이 부유하고 있었다.
연수원 바깥은 온통 여름이었다. 하루는 신입사원 자체 조정경기를 하기 위해 미사리로 향했다. 어찌나 날씨가 맑은지 그늘 하나 없이 온천지가 평지인 곳에서 가끔 구름이라도 지나갈 때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와중에 구역마다 배정된 제기차기나 보물 찾기와 같은 조별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노라면 헛웃음이 나왔다.
그 여름의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지리산 등반이었다. 어떻게 섭외를 했는지도 모르는 엄홍길 대장을 필두로 수백 명의 인원들은 새벽 4시에 기상해서 지리산 천왕봉을 향해 2열 종대로 올라갔다. 만약 제3자가 하늘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면 뉴스의 자료화면으로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등산이라고는 동네 뒷산 정도를 올라본 경험이 전부였던 나에게 정상에 오르는 건 정말 한사코 거부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꽤나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고개만 돌려도 옆에 동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쉬어가는 시간에는 오이를 까먹으며 지친 와중에도 끊임없이 서로 장난을 쳤고, 한 친구는 언제 준비했는지도 모르는 스피커를 가방에 부착한 채 작게 노래를 틀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무사히 산을 내려온 우리는 이미 닳아버린 무릎을 거의 손으로 들고 다니면서 간신히 씻고 뒤풀이까지 참여했다. 야밤에 숙소를 어기적어기적 배회하면서 밤새 떠들었던 걸 생각하면 참 체력도 좋았다.
연수는 잠시나마 멈출 수 있는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회사의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 인생의 최종 목표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껏 달려온 중간 목적지에 가만히 서서 주변의 이야기에 온전히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이 시간이 금방 끝나버릴 것임을 알고 있었고, 부서 배치 이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다. 청춘과 어른 사이 어딘가에서, 인생의 그 어느 때보다 눈앞에 놓인 순간 자체를 꽉 잡고 싶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가끔 만나는 동기들과 그때를 회상하면 당시 진행했던 수많은 교육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는 못한다. 실제 시간표는 끊임없는 강의와 팀 프로젝트, 영상 제작, 장기자랑, 야외활동들로 다채롭게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선명한 기억은 체육대회를 종료하고 연수원으로 복귀하는 버스 옆자리에서 창문에 기대던 친구, 강의실에서 정신없이 웃고 떠드는 모습들이다.
여름의 끝자락에선, 아직 가을이 아니니 방심하지 말라며 하늘이 시위하듯 비를 뿌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가끔 연수원 창문 밖으로 내리던 비가, 그때의 미묘한 감정의 일렁임이 떠오른다. 앞날에 대한 걱정이기도, 작은 기다림이기도 했다. 연수가 여름의 기억이라서 좋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기억은 점점 날아가기만 하는데, 잠시 비가 오면 공중으로 흩어지고 말 것 같은 기억을 비가 꾹꾹 눌러주는 듯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