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 짓의 중요성

새로운 시도를 망설이지 말 것

by 별하

주말에 제주도로 무작정 떠난 적이 있다. 몇 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방향을 잃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무기력하게 처지는 내 자신을 간신히 일으켜 상황을 차분히 들여다보고 인생 계획을 다시 세워볼 심산이었다. 하지만 김포공항 파리빵집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여유롭게 즐기며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제주도에 도착해서 문어라면을 먹고 싶다' 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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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먹은 문어라면 (feat.애월)


함덕 해수욕장을 걷거나 카페에서 다리를 꼰 채 풍경을 바라보면 마음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를 돌아보기는커녕 회사에 복귀해서 처리해야할 업무 계획만 잔뜩 세우고 말았다. 쓸모없는 잡념들과 과거에 놓쳐버린 아쉬움들은 덤으로 밀려왔다. 그 때 깨달았다. 실행 없는 생각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일단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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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가 정말 좋았던 함덕해수욕장. 또 가고 싶다




기록하기를 좋아했던 학생


학창시절에는 무언가를 읽고 쓰고 표현하는 것이 나에게는 제법 큰 비중을 차지하는 딴 짓이었다. 그것은 단지 책을 읽고 토론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직접 대학생 기자단으로 글을 쓰거나 중고등학생 멘토링 프로그램의 봉사자로 활동하는 것으로 발현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런 딴 짓들을 참 성실히도 해냈다.

머리 속을 부유하는 사소한 잡념조차 글로 옮겨놓으면 언젠가 가치있을 거라 믿었다. 그 때 비로소 '딴 생각'이 아니라 '딴 짓'으로 진화한다. 그 기록은 거듭되는 수정을 통해 점차 퀄리티가 높아진다. 보다 가치있는 곳에 활용될 수 있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만의 생각으로 자신있게 표현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학생활에서 여유롭게 딴 짓을 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전공 공부 외에 다른 활동에 집중할 시간은 부족했다. 눈 앞에 놓인 과제를 성실히 수행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그 외의 것들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직장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유튜브를 하겠다는 말이 직장인 3대 허언 중 하나일까.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하면서 새로운 분야에 발을 담가보는 것은 엄청난 의지가 필요하다.




딴 짓이 어려운 시대


대학생들의 현실은 안타깝게도 다양한 경험에 발을 담그기 위해 고개를 살짝 돌리는 것조차 어렵다. 학점부터 각종 스펙 쌓기에 이르는 경쟁은 해가 거듭될수록 치열해진다. 주어진 상황을 최선을 다해 그저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힌다. 이렇게 팍팍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어른이라면 청년들에게 무조건 다양한 경험을 해보거나 실패를 많이 해보라는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작금의 상황을 철저히 무시한 발언이다.


요즘 학생들은 뚜렷한 목표나 꿈이 없다는 말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세계 최고의 과학자가 되겠다'는 것처럼 거창한 지향점이 없거나 뚜렷하게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이것이 문제 제기를 할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한 방송에서 이경규님은 어린 학생들을 인터뷰 한 후 그들에게 꿈이 뭐냐고 질문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나중에 뭐가 될거냐 '라고 질문하는 건 기성세대들의 강요라며 스스로 경각심을 갖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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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관한 질문을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규 옹 (출처: 한끼줍쇼)


누군가에게는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 없이 오늘 하루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일 수 있다. 방송에 나오는 장면처럼 고양이를 키우며 사는 것이 꿈일 수도 있다. 명확하게 '되고 싶은 것' 이 있어야만 옳은 인생이 아니다. 애초에 인생에 정답은 없는 법이니까. 오히려 무엇 하나 보장되지 않는 세상에서 멋지고 원대한 입신양명의 꿈을 꾸는 것은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 꿈은 확률적으로 우울감이나 절망만 안겨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실행'하는 사람들


하지만 다른 기질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내가 열정을 갖고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이루고 싶은 사람들에겐 이런 이야기가 적용되지 않는다. 원하는 직업을 쟁취하고 그 수단을 통해 명확한 비전을 실현하고 싶거나, 사회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 이들은 자신이 진정 바라는 일을 찾고 목표를 구체적으로 그려내야 한다. 나는 그런 꿈이 있었다.


언젠가 모교에서 졸업연설을 꼭 해보고 싶다는 상상을 많이 했다. 나의 분야에서 이뤄낸 성취를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았다.

"저는 어른이 되서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어릴 적 장래희망처럼 단순히 직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상상만 해도 짜릿하고 희열이 느껴지는 매우 구체적인 미래의 순간이다. 그 곳에 도달하려면 지난한 여정을 거쳐야만 한다. 구체적인 방법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가 수십 년간 사랑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은 필수적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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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건 사소한 딴 짓을 실행하면서 조금씩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회사를 다니던 어느 날 나도 유튜브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주제나 방법 모두 막연했지만 이래저래 고민할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주제로 무작정 만들어 올렸다. 결과는 처참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편집 기술을 익혔고 조금 더 센스있게 내용을 구성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많은 시간이 흘러 그 때 비웠던 편집 스킬을 회사 업무에 적용해서 큰 성과를 거두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글을 쓰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먼 산을 바라보며 인생에 대해 고민할 시간에 생각들을 글로 적었다. 구체화하고 때로는 삭제도 했다. 생각은 문단이 되고 한 토막의 글이 되어 여러가지 플랫폼에 올랐다. 블로그를 통해 많은 관심을 받기도 하고 결국은 브런치에 도달하게 되었다.


과거의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어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하지 말아야 할 핑계를 만든다.


내가 이 영상을 유튜브로 올리면 사람들이 좋아할까?
높은 조회수가 나오지 않으면 어쩌지?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 사람들이 읽어줄까?
재미없다고 비판을 받으면 어떡하지?


이내 결과를 예단하고 포기한다. 사실 그것을 직접 실행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인데 말이다. 일단 실천한 다음에 결과를 걱정해도 늦지 않다. 그리고 처음부터 빛나는 존재는 없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아가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다.


성인이 된 후 깊게 깨달은 진실은, 세상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혼자 작은 실패를 반복해도 나에게 좋은 자양분이 될 뿐 누구도 그것을 비난하거나 조롱하지 않는다. 작은 시도와 실패는 결국 나침반이 된다. 내가 무엇에 재미를 느끼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지속할 수 있는지 시험대에 올려볼 수도 있다.


생각이 복잡하고 혼란스럽다면 늘어지지 않고 무엇이라도 해보는 것이 분명 큰 도움이 된다.

마치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예쁘게 정리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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