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재가치의 환상, 그리고 비트코인 가격

by 쩨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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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재가치의 환상, 그리고 비트코인 가격이라는 ‘집단 신호’

Editor’s Note
본 글은 유튜브 채널 BTC-moa의 영상 「비트코인 가격은 누가 결정할까? (Who will decide the price of bitcoin?)」 내용을 바탕으로, ‘가치’와 ‘가격’의 관계를 투자자의 시선에서 확장 해석한 칼럼입니다. (YouTube)

우리는 ‘내재가치’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그 말에는 위로가 있으니까요. 숫자가 흔들려도, 어딘가에 흔들리지 않는 기준점이 있을 것 같은 느낌. 하지만 영상의 문제 제기는 정면으로 들어옵니다. “내재가치라는 개념 자체가 환상일 수 있다.”

이 도발은 비트코인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비트코인은, 우리가 오랫동안 믿어온 ‘가치’의 언어를 가장 투명하게 비추는 거울에 가깝습니다.

1) “가치는 물건 안에 있지 않다” — 그런데 왜 우리는 자꾸 찾을까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이렇게 적습니다.
“가치는 내재적(intrinsic)이지 않다. 사물 안에 있지 않다. 우리 안에 있다.”

칼 멩거도 비슷한 결론을 더 날카롭게 말합니다. 재화의 가치는 ‘물건의 성질’이 아니라 그 물건이 삶에 기여한다고 판단하는 마음의 판단에 가깝다고요.

그런데도 우리는 내재가치를 찾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투자란 결국 불확실성을 견디는 기술이고, 내재가치란 불확실성 위에 세우는 ‘손잡이’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손잡이는 종종 착각을 낳습니다.

주식의 가치가 “회사 실체+매출”에서 자동으로 나오지 않는 이유는, 매출이 곧바로 가격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성장률, 금리, 리스크 프리미엄—모두 ‘사람의 판단’이 들어갑니다.

부동산도 “거주 가능”이 가격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같은 집이라도 대출 여건·학군 기대·도시의 서사에 따라 가격이 달라집니다.

금은 “산업에 쓰이니까”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지만, 실제 금 수요를 들여다보면 기술(Technology) 수요는 일부이고, 큰 축은 투자·중앙은행·주얼리 같은 ‘화폐적 프리미엄’에 가깝게 움직입니다.


즉, 우리가 ‘내재가치’라고 부르는 것의 상당 부분은 사실 “많은 사람이 앞으로도 그렇게 믿을 것”이라는 사회적 합의에 기대어 서 있습니다.


2) 그럼 비트코인 가격은 누가 정하나: “마지막으로 악수한 두 사람”

비트코인 가격을 “누가” 결정하는지 묻는 질문은, 사실 “시장은 어떻게 가격을 ‘찍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시장에서 가격은 평균의 결과가 아니라, 마지막으로 체결된 거래(마지막 악수)에서 만들어집니다. 누군가가 지금 그 가격에 사겠다고 하고, 누군가가 그 가격에 팔겠다고 동의할 때—그 순간 숫자가 찍힙니다. 이것이 시장 미시구조(market microstructure)가 말하는 가격 형성의 기본입니다.

그래서 “비트코인 가격은 믿음의 집합”이라는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더 정확히는 이렇습니다.

믿음은 주문(order)의 형태로 시장에 들어오고

주문은 유동성과 부딪히며

그중 가장 공격적인 한 번의 체결이 ‘가격’이 됩니다.

즉 가격은 집단적 판단의 평균이라기보다, 집단적 판단이 충돌한 결과로 남는 ‘경계선’입니다.

이 관점이 중요해지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가격이 단지 철학이 아니라,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현물 거래소의 주문장

선물·옵션의 레버리지

ETF 같은 제도권 수요의 유입/유출이 모든 것이 “누가 정하나?”라는 질문의 실제 답으로 이어집니다. (요즘 시장이 예전보다 훨씬 ‘금융화’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3) “채굴비용이 가격을 만든다”는 이야기의 함정

영상은 채굴비용 결정론을 뒤집습니다. 그리고 이 지점이 투자자에게 특히 중요합니다.

학술적으로도 ‘생산비용(cost of production)’ 접근은 비트코인을 이해하는 한 프레임이지만, 그 자체가 가격을 자동으로 고정시키는 마법은 아닙니다. 생산비용은 오히려 주어진 가격 아래에서 공급(해시레이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설명하는 데 더 자연스럽습니다.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전기를 써서 가치가 생긴다”가 아니라

“가치(수요)가 있으니 전기를 써서라도 생산한다.”

이 방향성 하나만 바로잡아도, 비트코인을 둘러싼 많은 논쟁이 조용해집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부터 질문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비트코인은 얼마나 비싸야 하는가?
비트코인은 어떤 효용을 제공하고, 그 효용을 누가 얼마나 간절하게 필요로 하는가?

4) “가격은 정보다” — 그리고 그 정보는 때로 잔인할 만큼 솔직하다

하이에크는 가격 체계를 ‘정보를 전달하는 메커니즘’으로 봤습니다. 가격은 단지 숫자가 아니라, 흩어진 지식이 압축된 신호라는 뜻입니다.

비트코인은 이 하이에크적 세계관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실험장입니다.

정부 보조금이 가격을 떠받치지 않고

중앙은행이 목표 가격을 제시하지 않으며

담보가치(부동산)나 현금흐름(주식)처럼 익숙한 언어로 ‘설명’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가격은 더 노골적으로 말합니다.
“지금 이 순간, 시장은 이 효용을 이 정도로 평가한다.”

그리고 그 평가가 얼마나 ‘심리적’인지 보여준 사건도 있었습니다. 2024년 1월 9일, SEC의 X(트위터) 계정 해킹으로 인한 허위 ETF 승인 소식이 잠깐 가격을 흔든 일이 있었죠. 신호가 흔들리면, 가격은 즉시 반응합니다.


5) 투자자에게 남는 질문: “내재가치가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붙잡아야 하나”

여기서부터가 진짜 투자자의 영역입니다.
내재가치가 ‘사물 안의 고정값’이 아니라면, 우리는 다른 방식의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제가 권하고 싶은 질문은 세 가지입니다.


비트코인이 제공하는 효용은 무엇인가(가치 저장, 검열 저항적 이동, 글로벌 정산, 담보로서의 쓰임 등)


그 효용의 수요자는 누구이며, 수요의 질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개인→기관, 현물→ETF, 현금매수→파생 헤지로 이동하는 순간 가격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이 시장의 가격은 ‘어떤 구조’에서 형성되는가

(유동성, 레버리지, 거래소 간 차익거래, 파생의 비중—이것이 변동성의 진짜 뿌리입니다.)


비트코인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사실 이 질문들에 어떤 답을 갖고 있느냐의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비트코인 가격을 결정하는 “누군가”는 없습니다.
다만 매 순간, 수많은 사람이 각자의 이유로 시장에 들어와 서로 다른 미래를 사고팔며 숫자 하나를 남깁니다. 그 숫자는 신념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신념을 바꾸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비트코인은 자산이라기보다, 어쩌면 한 사회가 “무엇을 돈으로 인정할 것인가”를 두고 벌이는 가장 공개적인 토론장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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