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다 한 번씩 무너진다.
인생 맘대로 안 되는 것도 알고 기왕 사는 거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사소한 위기를 만날 때마다 잘 견뎠는데 한 번씩 와르르 무너질 때가 있다.
거기까지면 딱 좋은데.
거기서 한숨고르고 훌훌 털고 일어나면 좋은데...
무너질 때는 그동안 참고 견딘 걸 다 끄집어내어 철저하게 바닥까지 무너지게 만든다.
마치 힘드니까 다시 올라가지 말라고 일부러 스스로를 더 아래로 잡아끈다.
예전엔 완전히 무너졌다가 올라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과거와는 달리 나이 들며 쌓인 경험치와 수많은 책에서의 일깨움으로 일상으로의 복귀가 의도치 않아도 금방 이루어질 거라는 걸 알게 된 사실이 더 힘들다.
원 없이 무너지기도 힘들다. 지금은
이 또한 지나갈 거라는 걸 무너지는 순간에 알아차리고 있으니 붙잡고 있는 가느다란 실을 확 놓아버릴 수가 없다.
돌덩이가 가슴에 얹힌 채로 얼른 소화되어 내려가기를 그냥 기다린다.
있는 대로 소리치고 화내고 자책하고 "네가 참 나쁘다. 내가 참 나쁘다." 하고 싶지만 이성의 끈이 나를 붙잡고 놓지를 않는다.
말을 뱉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된다는 걸 아니까...
그런데 말만 상처가 되는 걸까?
참고 있는 내 표정이,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하고 있는 행동이 더 크게 상처가 되진 않을까?
어쩌면
'좀 알아차리라고'
'그만하고 정신 좀 차리라고'
눈으로 행동으로 말하고 있진 않을까?
인생 왜 그리 힘드냐?
아니 애하나 키우는 게 왜 그리 힘드냐?
애하나 키우는데 왜 그리 유세냐?
돌아서면 나에게 스스로 던지는 말들이다.
가치 있는 일일수록 오랜 기간이 걸리고 더 힘들다는 말
행복한 아이로 제대로 된 독립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라는 게 나에겐 참 가치 있는 일인데...
오래 걸리고 힘들다는 말을 들으니 또 속상한 마음을 종이 접듯 접는다.
그리고 가슴에 돌덩이가 내려 길 기다리며 따뜻한 레몬물 한잔 홀짝이며 애써 아이를 외면해 본다.
지나고 나면 분명 그러겠지.
"에잇! 뭐 이런 걸 가지고 옥신각신 할 필요가 있겠어. 긴 인생 오늘 이 사소한 일이 뭐 얼마나 대단한 구멍이 되어 무너지겠어."
오늘도 나 혼자 부르르 화가 났다가 아무도 모르는 사이 연기처럼 사그라들어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