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검은 정장이 필요해
# 4인 단톡방
카톡 알림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원래 단톡은 5인이었는데 4인이다.
누가 나간 걸까? 또 우리 4명이 누군가에게 왕따가 된 걸까?
접혀있는 휴대폰을 엄지 손가락으로 힘겹게 들어 올려 옆모서리에 엄지 지문을 갖다 댔다.
카톡창을 열어보니 '현주, 지민, 숙희, 은희 4' 단톡방에 희진이가 없다.
읽지 않은 톡이 24개...
단톡에 들어가기 전에 이 생각 저 생각을 떠올려본다.
'전번 모임에 희진이가 안 온다고 하다가 2차에 늦게 왔었지?'
'그전 모임은 빠졌고...'
'저번 모임에서 희진이 기분이 어땠지?'
'지민이가 희진이 소개팅하라고 부추겼는데 희진이가 그것 때문에 마음이 상했나?'
결혼하고 성인이 된 아이를 둔 친구들과 아직 중학생을 키우며 정신없어하는 나를 포함해 전부 결혼한 아줌마들 사이에 우리 희진이는 멋진 쏠로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친구들은 희진이에게 우리 대신 훨훨 날아달라고, 자유를 실컷 누리라고, 대리만족으로 '여기도 가봐라 저것도 해봐라' 요구사항이 많았다.
그때마다 항상 '난 나야!' '난 혼자 너무 행복해. 너네도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잖아. 하고 살아!'
그랬었는데 저번 모임에 소개팅하라고 지민이가 부추겨서 마음 상해서 나간 것 같다.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카톡창을 열었다.
맨 아래 글을 보니
"희진이 어떡하냐..."
"왜 그렇게 힘든 일만 생기냐"
걱정 가득한 이야기가 가득이었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 대화창을 위로 쭉 올려본다.
"얘들아! 좋은 하루 보내고 있지? 희진이 한테 안 좋은 소식이 있어서 희진이 빼고 단톡방 만들었어"
현주가 방을 만들고 말을 걸어왔다.
"희진이 남동생 있잖아 결혼 안 한 남동생. 어젯밤에 하늘나라 갔대..."
"뭐? 왜 갑자기? 엄마랑 같이 가게 운영하며 지낸다 하지 않았나? 그런데 젊은애가 왜 갑자기? 사고 났어?"
성격 급한 지민이가 연달아 질문을 쏟아냈다.
"그게 갑자기 몸이 안 좋아서 병원 갔는데 간암 말기였대. 근데 병원에 며칠 있지도 않고 그냥 갔대."
현주의 언니와 희진이 언니가 서로 동창이라 전해 듣게 되었다고 했다.
희진이가 직접 연락은 못하는 거 보니 힘든 것 같아서 대신 전달해야 할거 같아서 얘기를 한다고 했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 이후 단톡방은 희진이 걱정과 꽃다운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희진이 동생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
아빠 보내드린지 채 1년도 되지 않았는데 또 동생을 떠나보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희진이와 동생의 관계며 희진이가 가끔 모임 때 얘기하던 엄마와 둘이 지내는 동생 성격까지 말들을 주고받았다.
쭉 글을 읽고 내려와 내가 던진 첫마디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예전에는 조의 연락을 받으면 의례적으로 썼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내 친구에게 이런 일이 생기면 다른 멋진 위로나 마음을 전달하는 말이 아주 많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할 수 있는 말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럼에도 정말 마음속 깊이 드는 생각마저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현주에게 대표를 일임해 희진이에게 조의금 전달과 정신없을 시간이 지나면 얼굴 보자는 말을 전달했다.
우리 모두 고향이 제주라 지금 바로 가 볼 수 없는 상황이다.
현주도 언니를 통해 잘 전달하고 언니가 장례식장 분위기보고 연락을 주면 그때 희진이랑 통화를 해본다고 했다. 그 후에 희진이 게 개인톡을 하던가 각자 통화를 하는 것으로 단톡을 마무리가 되었다.
휴대폰을 접으며 대장부 같은 희진이 얼굴이 떠올랐다.
우리가 별명으로 붙여준 '태능인 희진이'
수영, 배드민턴, 스킨스쿠버, 등산, 마라톤, 골프...
못하는 운동이 없어서 붙여준 별명이다.
대충 하는 취미를 넘어서서 전문적으로 모든 운동을 섭렵했다.
대회도 나가고 해외로 나가 산소통을 메고 바다에 들어가는 친구다.
그런데 마음은 가느다란 실오라기 같이 너무 여리다. 그래서 가끔 큰 소리로 말할 때마다 목소리마저 떨린다.
지금쯤 실오라기가 나풀거리는 것처럼 마음이 나풀거리고 있겠구나.
튀어나온 큰 눈이 부어서 더 튀어나왔겠구나.
다이어트해도 안 빠진다고 속상해할 때마다 우리가 다 근육이라 그렇다며 웃으며 얘기했는데 왠지 그런 근육도 빠져있을 만큼 힘들겠다.
# 내 어깨를 내어줄게
누군가의 죽음 앞에 어떤 말이 가장 위로가 될까?
'편안한 곳으로 갔을 테니 너무 속상해 말고 힘내'
'몸 잘 챙겨야지. 이럴 때일수록 더 잘 챙기고 정신 차려야 해'
'너무 힘들지. 힘들면 그냥 실컷 울고 털어버려'
나는 희진이에게 전할 말들을 마음속으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다가
"에휴~ 이런 말들이 뭔 소용이야. 귀에도 안 들어올 텐데... 나도 아빠 돌아가셨을 때 친구들이 해주던 말들 하나도 기억에 안 남아"
날 보며 같이 울어주며 꼬옥 안아주던 그 따뜻한 품만 기억에 있다.
몇 날 며칠을 울며 힘이 쪽 빠진 내 무거운 머리를 잠깐 기댈 수 있었던 친구들의 어깨.
나도 조용히 어깨를 내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