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처음 읽기 시작한 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고등학교 2학년 가을. 평소 책이라고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친구가 웬일로 책을 펼쳐두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슬쩍 봤더니 야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나 다를까. "이 새끼, 뭐 이런 걸 읽고 있냐?" 내가 물었다. 친구는 음흉한 미소를 띠며 "뭐 병신아. 재밌다. 너도 읽어봐"라고 했다. 표지에는 하얗게 비어 있는 사람 형상에 빨간 점이 찍힌 그림과 보라색 바탕체로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이 인쇄되어 있었다. 외설적인 문장과 유행에서 벗어난 듯한 표지의 조합이 어쩐지 멋있어 보였다. 그날 집에 돌아가 바로 책을 주문했다. 그것이 내가 태어나서 처음 산 책이었다.
그때까지 책은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물건이었다. 읽기 싫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만큼. 나의 삶에는 만화책과 게임만 있었다. 학교를 마치면 오락실이나 피씨방을 갔고 집에서는 만화책을 읽거나 읽을 만화책이 없으면 게임을 했다. 가까운 친구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지내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부럽지는 않았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어차피 나중에는 잘 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만화책을 많이 읽어서 주인공 신드롬이 생긴 걸 지도 모르겠다. 나의 학창 시절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실연의 아픔. 존재의 의미 따위를 고민할 틈은 없었다.
책이 도착했다. 활자를 읽는 데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 몇 장을 읽어 나가는데 꽤나 애를 먹었다.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아 몇 번이나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었다. 그러는 사이 차츰 책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나를 낯선 세계로 끌어들였다. 지금까지 봐왔던 소년 만화와 달랐다. 소년 만화에서는 밝고 명랑한 주인공이 시련을 딛고 원하는 것을 이룬다. 꿈과 낭만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인물들은 어딘지 모르게 뒤틀려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떠올랐다가 스러졌다. 주인공은 흔들리고 무너졌다가 겨우 일어났지만 그마저도 불안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난 후 혼란스러웠다.
이쯤에서 정정해야겠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렇게 게임 속에서 헤맸던 것은 밝은 미래에 대한 확신이 아니었다. 그저 투명하고 확실한 세계에서 머물고 싶었을 뿐이다. 게임을 하는 동안만큼은 내가 더 나은 나로 있을 수 있었으니까. 많은 것들을 외면했다. 겪어야 할 일들을 겪지 않고 흘려보냈다. 상처 받을 일들은 "제대로 상처받았어야(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했다. 그 책은 내가 그렇게 보류해 두었던 어둠들을 끄집어 내어 눈앞에 펼쳐 놓았던 것이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지만 줄곧 내 안 깊숙한 곳 어디에 숨어서 꿈틀대던 어둠을 말이다. 책은 내게 '이제는 마주할 때'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 책이 내 삶을 얼마큼 바꾸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때 나는 갈림길에 서 있었고 하나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제 나는 언제나 가방 속에 책 한 권을 넣어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