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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르는 마음 Oct 16. 2023

좋아한다고

어느 여름밤, 그녀의 자취방 옥상. 여름의 끝을 알리는 듯한 선선한 바람이 분다.


만두, 나, 너 좋아하는 거 같아.

응? 어째서?

아 떨린다. 태어나서 이런 말 누구한테 해본 적 없어. 그냥, 궁금했어. 너라는 애가. 너랑 산책하고 이야기하는 게 재밌었어. 영화 좋아하는 것도 좋고.

그렇게 말해주니까 기분은 좋은데…… 근데 나도 이런 말 처음 들어봐서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모르겠네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마. 사귄다고 해도 그냥 지금처럼 지내면 되지. 밤에 산책도 하고 영화도 보고

응, 좋은 것 같아

근데 나 손에 땀 많은데 어떡하지

그럼 이러면 되지

나 여자 손 처음 잡아봐

좋아?

좋네

손 되게 작고 말랑말랑하네. 근데 되게 통통하다

뭐야?


우리는 제법 가깝게 지냈다. 그녀는 하얗고 말랑말랑해서 만두라고 불렀다. 서로 장난도 잘 쳤고 취향도 비슷해서 이야기도 제법 잘 통했다. 집도 가까워서 밤에 산책도 자주 나갔다. 그 모습이 몇 번 주변 사람들 눈에 띄어 둘이 뭐 있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그런 것도 같았다. 그래서 좋아한다고 말했다. 첫 고백이었다. 입 밖으로 꺼내고 보니 정말 좋아하게 된 것 같았다. 물론 정말로 좋아했다. 그리고 그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는 시험대에 올랐던 것이다. 내가 좋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그날 밤 나는 잠을 잘 수 없었다.


사흘 뒤, 밤, 학교 운동장 스탠드.


생각해 봤는데 오빠가 남자로 느껴지지 않아

그게 무슨 말이야? 남자로 안 느껴진다니?

어… 오빠랑 같이 산책하고 이야기하면 재밌고 좋은데 그 정도 까진 거 같아. 두근거리는 게 없어

그래? 왜 그렇지?

그냥 이제 와서 이렇게 말하기 너무 미안한데, 내가 좀 더 생각하고 말했어야 했나 봐. 전처럼 편하게 친구로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아

근데 꼭 그 두근거림이라는 게 있어야 되나? 그냥 지금까지 지낸 것처럼 지내면서, 그것만으로도 좋잖아, 응? 또 지내다 보면 그런 게 생길 수도 있는 거고. 그래도 아니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면 되지

미안해. 나도 생각 많이 했고 이렇게 말하는 것도 너무 힘든 일이야. 그래도 지금에서라도 이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안 그러면 오빠가 나중에 더 힘들 것 같아

괜찮아. 그건 내가 감당할 문제니까. 응?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면 안될까? 내가 잘 해볼게

나도 힘들다고. 서로 더 힘들게 하지 말자. 오빠 좋은 사람이야, 착하고. 오빠가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흘, 고백하고 헤어지기까지 고작 사흘이 걸렸다. 솔직히 나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보다 한 살 많은 같은 과 누나였다. 너무 예뻐서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더 눈에 띄려고 주변을 맴돌았지만 마음은 만 킬로쯤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한 번은 누나와 친구, 나 이렇게 셋이 밥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친구는 “좋아하긴 좋아하냐? 티도 안 난다”고 했다. 그 마음조차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멀어져 버릴 것만 같아서. 그런데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그 누나한테 고백할 걸 그랬다. 씨발.


시멘트처럼 차갑고 딱딱한 그녀의 표정을 보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작정하고 나온 것처럼 보였다.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베개가 축축해졌다. ‘왜 이렇게 이기적이냐. 이럴 거면 애초에 더 생각해 보던지. 앞으로 다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편지를 써보내면 그녀가 조금은 타격을 입을까. 아니면 집에 찾아가 울면서 ‘너무 좋아한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 한 번만 더 생각해 봐 달라’고 할까. 그런 생각들을 하며 그날 밤도 잠들지 못했다. 일주일 동안 수업도 나가지 않았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했더니 키득거리며 “병신, 다 잊고 다른 사람 찾아봐라”고 했다. 미친놈. ‘보호, 책임, 존경, 지식’이라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써볼 새도 없었다. 무엇보다 이성적인 끌림이 가장 먼저 있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이렇게 굴욕적이고 청승맞은 적은 이전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없었다. 마치 내가 지우개로 지워져 버리는 느낌이랄까. 그 뒤로 ‘남자다움’이라는 문제가 계속 따라다녔다. 앞으로 고백을 하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했다. 몇 번인가 서로 호감이 있는 게 확실했고, 고백만 한다면 맺어질지도 모를 상황이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입 밖으로 내지 않은 말은 없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마음까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보단 다시 지워지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서른 살까지 연애를 해보지 못했다. 서른이 되고 나서 앞의 그 친구와 -이놈도 연애를 못해봤다- “우리 이제 진짜 여자 없을지도 모르겠다”라며 푸념 따위나 늘어 놓고 있었다.


내가 서른 살이던 그 해 어느 여름 밤, 나는 정확히 같은 곳에서 다른 여자에게 좋아한다고 말했다. 사흘 만의 이별 이후 7년만이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면 어쩐지 캠퍼스에 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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