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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르는 마음 Nov 06. 2023

하얀 바다

뭐라도 써볼까 싶어 연필을 들고 노트를 펼쳤다. 무엇에 대해 써야 할까? 오늘 다현과 말다툼을 한 이유에 대해? 아니면 잘 죽는다는 게 어떤 건지에 대해 써볼까? 생각 조각들이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것들 중 하나를 낚아 채 종이에 담아보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잘 잡히지 않았다. 쓰고 지우기를 여러 번, 지저분해진 페이지를 찢어 구기고는 던져버렸다. 구겨진 종이를 한 무더기 만들어 놓고 다시 흰 종이를 멍하게 바라봤다. 몇 초, 아니 몇 분쯤 지났을까, 초점이 흐릿해지더니 주변의 사물들이 연기처럼 흩어지고 온통 하얗게 변해버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처럼. 조각배를 타고 가다 배에 구멍이 뚫려 바다 한가운데서 천천히 잠기듯 그렇게 종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십 년 전쯤, 그림을 그릴 때도 그랬다. 몇 번이고 종이에 삼켜졌다. 기발한 아이디어, 아름다운 선을 그리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흰 도화지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게 나아 보였다. 아직 때묻지 않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순수한 하양. 순수해서 점하나 쉽게 찍는 것조차 두려웠다. 나는 아무 곳에도 닿지 못한 채 영원히 표류하게 될까 봐 그림 그리기를 그만두었다.


쓰는 일도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 떠오르는 것들을 그대로 옮겨 적으면 되겠지 싶어 책상 앞에 앉는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란 게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깨닫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 생각들 마저도 언어와 이미지, 여타의 감각들이 뒤죽박죽 섞여 그대로 노트에 옮기기에 마땅찮다. 그것들을 적절한 언어로 바꾸다 보면 내 어휘력 또한 빈곤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반듯하게 감긴 실타래를 풀듯 술술 써 내려가면 좋겠지만, 글쓰기는 오히려 꼬여 있는 실을 풀어내는 것에 가깝다. 때론 억지로 풀려다 더 엉키기도 한다. 풀리지 않은 문장을 붙들고 끙끙거리는 초라한 내 모습만이 흰 종이 위로 비칠 뿐이다.


글을 쓸 생각은 없었다. 글쓰기와 나는 거리가 꽤 멀다고 생각했다. 출판사에 있으면서 여러 작가들의 글을 읽었다. 잘나가는 작가도 있었고, 별로 유명하지 않은 작가도 있었다. 대부분 글쓰기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의 수만큼 글의 형태도 다 달랐다. 꾸준히 글을 접하면서, 좋은글인지 아닌지를 떠나 글 쓰는 사람을 존경하게 됐다. 매번 새로운 내용을 떠올려서 원고지 수백 장을 채우는 일은 아무래도 재능이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리포트 한 장을 채우는 일에도 허우적거렸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써보기로 했다. 연필과 종이만 있으면 되는 가장 접근하기 쉬운 일이기도 하고, 오직 글쓰기를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사진 찍기가 눈앞의 풍경들을 흐르는 시간에서 떼내어 고정시켜두는 것이라면 글쓰기는 내 안에서 떠오르는 풍경들을 붙잡아 두는 것이다. 어떤 작가는 “쓰이지 않은 생각은 생각이 아니”라고 했다. 극단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붙잡아 두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생각들은 아주 잠깐만 떠올랐다가 다시 저 깊은 곳으로 가라앉을 것이다. 그리고 그중엔 제법 멋진 것들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 것들에 ‘나의 언어’로 고유한 형태를 빚어 준다. 그렇게 빚어진 것들이 모였을 때 나는 비로소 ‘나’가 될 수 있다.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꽃이 돼’는 것처럼.*


더불어 글쓰기는 그 자체만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종이에 옮기기만 하는 게 다가 아니다. 뒤죽박죽이었던 생각들을 조립하고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면서 좀 더 명료한 형태를 만들어 나간다. 그러다 문득 적기 전엔 알 수 없었던 생각들이 반갑게 튀어나오기도 한다. 쓰기 전까지는 무엇을 낚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대단한 작품을 쓰겠다는 포부 같은 건 없었고, 곧 떠날 여행에서 뭐라도 남겨야겠다는, 다분히 실용적인 목적으로 글을 쓰기로 했다.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갔을 때였다. 알람브라 궁전에서 한 무리의 한국 관광객들이 요란하게 사진을 찍고 있었다. “빨리, 빨리 여기 서봐, 아이 참, 부끄러워하지 말고,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니까”라는 말을 듣고 코웃음이 났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포즈를 취하고 깔깔대는 그들의 모습이 귀엽기도 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고작 ‘인증샷’이나 남기려는 게 한심해 보이기도 했다. 혼자 여행을 다니다 보니 사진을 찍어 줄 사람이 없어서 샘이 나서 그런 건 아니었다. 눈 앞에 펼쳐진 정경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을 음미하고 중요한 것은 어차피 마음에 남을 거라는 믿음으로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썩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인증샷이라도 남았겠지만 나의 것은 거품처럼 떠올랐다 사라져버렸으니까. 그래서 이번엔 연필과 노트, 카메라를 챙겨가기로 했다. 더 잘 기억하기 위해.


매주 한 편씩 글을 썼다. 글을 쓸 때마다 지나간 기억들을 보물 찾기하듯 더듬거렸다. 때로는 보물이 나오지 않아 서글프기도 했고 때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과 마주쳐서 당황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밌게도 그런 것들을 제대로 바라봤을 때 글은 더 잘 써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풀어낸 시간들이 생각보다 밝지 않아 놀랐다. 딱히 어둡게 살아온 것 같진 않은데. 그래서 이번엔 밝게 마무리 지어 보려고 한다. 언제나 새로운 모험을 떠나는 이들 앞엔 밝은 희망만이 있을 뿐이니까.


떠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다시 한번 저 넓은 바다 위로 작은 배를 띄워 보기로 했다.



* 김춘수, 「꽃」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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