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너스 코리아 픽처스 2』마흔두 번째 장면
<한미상호방위조약, 퍼블릭 도메인 / (우) AI 채색화>
휴전 협정이 체결된 이후 1953년 8월 경 당시 아이젠하워 미합중국 대통령의 각료였던 덜레스 국무장관이 서울을 방문하여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대한 구체적인 문안을 협의하였다. 전쟁의 자동 개입 여부에 대한 치열한 협의 끝에 "헌법상의 절차에 따라 행동한다"는 문구를 넣는 것으로 합의하고 서울에서 큰 틀의 합의를 마무리 짓게 된다.
<극동 문제 담당 국무차관보 로버트슨의 대화 비망록>
덜레스 장관은 자문을 받아 이 대통령과 그가 함께 작성한 공동 성명 초안을 발표하였다. 덜레스 장관은 한국인들이 초안을 검토할 동안 미국인들이 퇴장할 것을 제안하였다. 약 30분 후, 우리는 회담장에 다시 들어갔다. 장관은 외무부장관 변영태가 사소한 문구를 수정 제안한 것을 토의 없이 수락하였다.
그러자 변 외무부장관은 대한민국은 중국 공산주의 침략자들을 한국 땅에서 몰아낼 권리를 포함하여, 국내 문제에 대한 완전한 주권을 가지고 있음을 합의하였다는 내용의 문단을 추가할 것을 제안하였다. 덜레스 장관은 동의하기에는 그런 내용은 애초에 유엔의 조치를 촉구한 미국의 입장과 상당히 모순된다고 말하였다. 즉, 남침은 내전이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공산주의의 침략이라는 입장 말이다. 그러한 입장에 기초하여 유엔은 한국전쟁은 순전히 국내적 문제로서 유엔이 개입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소비에트 진영의 주장에 반하여 개입한 것이다. 이 대통령과 그의 고문들이 이 시각을 받아들여, 현재 쓰여 있는 내용의 공동 성명을 수락하였다.
이후 1953년 10월 경 이승만 행정부 소속 번영태 외무장관 등이 미국으로 이동하여 덜레스 국무장관과 최종 서명하였고, 1954년 11월 18일 공식 발효되게 된다. 이 동맹 조약은 영구히 유지된다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제6조에 의하여 지금까지도 한미동맹의 근간이 된다.
+) 위 이승만 대통령의 사진은 1954년 7월 28일 미국 상하원합동회의에서 연설한 장면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상징적인 장면이 특별히 없어 넣은 사진이기는 하나, 대한민국 대통령 최초로 미국 의회에서 영어로 연설한 장면이자, 4개월 뒤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발효되게 되니 의미 있는 사진으로 판단하였다. 참고로 이승만 대통령은 대통령 간선제로 제1대 대통령에 취임한 이승만 대통령은 1950년 5월 30일에 치러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소속된 여당인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의석이 줄고 무소속과 야당 의석이 대거 늘어나 여소야대의 국회 구성이 되어 간선제로서의 재선이 사실상 불투명해졌다.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독립촉성국민회에서 벗어나 자유당을 창당하고 1952년 7월 7일 대통령 간선제를 직선제로 바꾸는 원포인트 개헌을 임시수도 부산에서 강행하게 되었는데, 이를 발췌개헌이라고 부른다. 다만 개헌을 하는 과정에서 헌병대를 동원하여 야당 국회의원을 연행하고 군경의 포위 속에서 기립표결로 발췌개헌을 통과시켰다는 점에서는 친위 쿠데타가 아니냐는 논란이 발생하게 된다.
- 친위 쿠데타, 표준국어대사전
정권을 잡고 있는 세력이 무력 등을 빌려 이미 성립되어 있는 헌법 체제를 무시하고 정권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일
그렇게 개헌이 통과된 이후 치러진 제2대 대선(1952년 8월 5일)에서 이승만 후보는 5,238,769표(74.61%)를 받으며 상대 후보 무소속 조봉암(797,504표 / 11.35%)을 제치고 제2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전문>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정식명칭은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 의상호방위조약」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1953년 8월 8일 변영태 외무장관과 덜레스 미국무장관 사이에 서울에서 가조인되고, 1953년 10월 1일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정식으로 조인되었으며, 1954년 11월 18일부터 발효되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전문과 6조로 되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본 조약의 당사국은, 모든 국민과 모든 정부가 평화적으로 생활하고자 하는 희망을 재확인하며, 또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평화 기구를 공고히 할 것을 희망하고, 당사국 중 어느 1국이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 고립되어 있다는 환각을 어떠한 잠재적 침략자가 갖지 않도록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에 대하여 그들 자신을 방위하고자 하는 공동의 건의를 공공연히 또한 공식으로 선언할 것을 희망하고, 또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 더욱 포괄적이고 효과적인 지역적 안전보장 조직이 발달될 때까지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고자 집단적 방위를 위한 노력을 공고히 할 것을 희망하여 다음과 같이 동의한다.
제1조 당사국은 관련될지도 모르는 어떠한 국제적 전쟁이라도 국제평화와 안전과 정의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방법으로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해결하고 또한 국제관계에 있어서 국제연합의 목적이나 당사국이 국제연합에 대하여 부담한 업무에 배치되는 방법으로 무력에 의한 위협이나 무력의 행사를 삼갈 것을 약속한다.
제2조 당사국 중 어느 1국의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전이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있다고 어느 당사국이든지 인정할 때에는 언제든지 당사국은 서로 협의한다. 당사국은 단독으로나 공동으로 자조(自助)와 상호 원조에 의하여 무력 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지속 강화시킬 것이며 본 조약을 이행하고 그 목적을 추진할 적절한 조치를 협의와 합의하에 취할 것이다.
제3조 각 당사국은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있는 영토와 각 당사국이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합법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에 있어서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무력 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 인정하고 공통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
제4조 상호적 합의에 의하여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許與)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
제5조 본 조약은 대한민국과 미합중국에 의하여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비준되어야 하며 그 비준서가 양국에 의하여 워싱턴에서 교환되었을 때 효력을 발생한다.
제6조 본 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다. 어느 당사국이든지 타 당사국에 통고한 후 1년 후에 본 조약을 종지(終止)시킬 수 있다.
이상의 증거로서 하기 전권위원은 본 조약에 서명한다.
본 조약은 1953년 10월 1일 워싱턴에서 한국문과 영문 두벌로 작성되었다.
대한민국을 위하여 변 영 태
미합중국을 위하여 존 포스터 덜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