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너스 코리아 픽처스 2』마흔세 번째 장면
<이철승 국회의원이 사사오입에 항의하는 모습, 퍼블릭 도메인>
휴전 이후 치러진 제3대 국회의원 선거(1954년 5월 20일)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속한 자유당이 전체 의석 203석 중 114석을 차지하며 거대 여당이 되는 데 성공하였다. 많은 의석을 확보하기는 하였으나, 개헌 가능 의석인 136석 확보에는 실패하여 개헌에 대해서는 야당과의 협조가 중요했다. 순탄하게 정치가 흘러가나 싶었지만, 여당 내부에서는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대선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제헌 헌법에 의하면 대통령의 임기는 4년이며 재선에 한하여 1차 중임을 할 수 있는 대통령 중임제를 채택하고 있었다. 물론 앞전에 발췌개헌을 하기는 하였으나 발췌개헌은 대통령 간선제를 직선제로만 바꿨기에 나머지는 제헌헌법과 동일했다. 헌법에 입각하면 이승만 대통령은 더 이상 출마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건강했고, 또 대통령을 하고 싶은 의지가 막강했다. 결국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은 1954년 11월 27일 개헌안을 제출하게 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칙 <단기 4287년 11월 27일 헌법개정> <제3호, 1954. 11. 29.>
이 헌법공포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제55조 제1항 단서의 제한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당시의 헌법 제55조 1항의 단서는 대통령 중임제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이 부칙을 신설함에 따라 이승만 대통령은 초대 대통령으로서 죽을 때까지 선거에 출마하고 집권할 수 있는 특혜를 헌법에 노골적으로 수록하려고 한 것이다.
결국 1954년 11월 27일 개헌 투표를 하게 된다. 투표 결과 재적인원 203명 중 찬성 135표, 반대 60표, 기권 7표, 무효 1표가 나왔다. 앞서 개헌 가능 의석이 136명이라고 언급했던 것처럼 투표는 부결로 끝나게 된다. 여기서 기적과 같은 논리가 튀어나온다. 203을 2/3로 나누면 135.3333이 되는데 사람을 0.333333으로 나눌 수는 없기 때문에 사사오입(반올림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4 밑으로는 버리고 5 위로는 올린다는 뜻이다.)에 의거하여 135명이 헌법 개헌 의결 정족수라고 주장한 것이다. 서울대 수학과 교수 등 엘리트 지식인들을 대동하여 이러한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만들어내고 1954년 11월 29일 가결로 번복된다. 이 과정에서 이철승 국회의원이 선포 당시 곽상훈 국회부의장의 멱살을 잡는 상징적인 사진이 만들어지게 된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스스로 재선만 하고 물러난 사례를 만들었고, 이후의 미국의 대통령들은 루스벨트를 제외하고는 모두 재선까지만 도전하는 성공적인 민주주의의 역사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정상궤도로 이륙하기까지 정말 먼 길이 남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순간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