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1960년 8월 13일
윤보선 대통령 취임

『모더너스 코리아 픽처스 2』마흔여섯 번째 장면

by 박재한
1960.08.13 윤보선 대통령 취임 [위키 커먼즈, 퍼블릭 도메인] 1960.08.13-1962.03.24 장면 총리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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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보선 대통령과 장면 총리, 퍼블릭 도메인>


3.15 부정선거로 이승만 대통령은 대통령직에서 하야하고 하와이로 망명을 떠났다. 이후 개헌이 진행되어 대통령 중심제에서 의원내각제로 정부체제를 바꾸게 되었으며, 대통령 직선제도 대통령 간선제로 바뀌게 되었다. 이렇게 제2공화국이 출범한 것이다. 그렇다면 국회의원의 구성이 중요할 터, 당시 의회의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었을까?


1960년 7월 29일에 이루어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이었던 자유당은 단 2석을 얻으며 대패했다. 완벽하게 대패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무려 175석을 획득하였다. 전체 의석을 기준으로 75%가 민주당 의원인 것이다. 수치만으로 놓고 본다면 민주당의 총리와 민주당의 대통령이 선출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한국 정치가 그렇게 쉽게 쉽게 진행되지는 않을 터 또 다른 문제가 생기게 된다. 사실 당시 민주당은 압도적 여당 자유당과 대적하기 위해 단일대오로 뭉친 정당이다. 즉 이념과 계파는 살아있더라도 자유당과 이승만을 공동으로 대적하자는 하나의 의미로 합친 것이다. 하지만 자유당과 이승만이 무너졌다. 이제 그들은 같은 정당이더라도 다른 의견을 원래 갖고 있었기에 서로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주 쉽게 요약하면 민주당은 구파와 신파로 구분되고 있었다. 구파는 대체로 지주 등의 자본가 출신 정치인이고, 신파는 구파보다 젊고 새롭게 흥하고 자수성가한 정치인들을 뜻한다. 총선이 끝나고 국회에서 치러진 제4대 대선에서 윤보선 후보는 79.09%(208표)를 받고 쉽게 대통령 선거에 당선되었다.


윤보선 대통령은 구파의 대표 정치인이었다. 구파 출신이었던 윤보선 대통령은 1980년 8월 16일 민주당 구파 출신인 김도연 의원을 국무총리로 지명하였다. 하지만 민주당 신파는 이를 극구 반대하였고 결국 과반이 넘지 못하여 김도연 의원은 국무총리가 되지 못하게 된다. 결국 윤보선 대통령은 신파 출신인 장면을 국무총리로 내정하였고, 신파의 동의로 장면 국무총리 인준안은 가결되었고, 이렇게 윤보선 대통령과 장면 내각이 출범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정치적 의견이 갈려있는 이들이 대통령과 총리가 된 상황이었기에 초기 제2공화국은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이때 샛별처럼 한 인물이 갑자기 등장하며 대한민국 역사를 송두리째 바꾸게 된다.


+) 장면 내각은 경제제일주의를 핵심 역점 사업으로 선정하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댐, 발전소와 같은 대형 인프라 건설에 박차를 가할려고 하였으며,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시안(울산공업도시 계획 등)을 만들기도 하는 등 노력을 하였으나 군사정변으로 제대로 된 빛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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