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너스 코리아 픽처스 2』마흔아홉 번째 장면
<베트남 파병, 퍼블릭 도메인>
쿠데타 후 대선을 통해 대통령으로 취임한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이 정치로 뛰어든 명분을 정당화하기 위해 경제발전을 국정의 최대 목표로 삼았다.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그 어떠한 것도 전부 할 수 있다는 취지로 경제개발 하나에 목숨을 건 투쟁을 한 셈이다. 그렇다면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뭐가 필요할까? 박정희 정부는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돈이 가장 먼저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돈을 벌기 위해 박정희 정부는 여러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와중 베트남 전쟁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베트남 전쟁은 1955년 11월부터 1975년까지 약 20년간 이어진 전쟁이다. 민주주의 국가였던 남베트남과 공산주의 국가였던 북베트남의 20년간의 전쟁이었다. 미국은 남베트남을 지원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과 군대를 배치하고 지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북베트남도 중국과 소련을 등에 업고 대단히 맹렬하게 진격했다. 전세가 격화되자 미국은 자유세계 진영의 국가들에게 SOS를 요청했다. 그때 자유주의 세력을 수호하기 위해 지원해 줬던 지난 역사를 기억하고, 이제 한국이 자유수호를 위해 파병을 하겠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는 한국은 베트남 파병을 승인(국회에서 파병동의안이 가결되었다.)하고 지원했다. 총 파병인원은 32만명었고, 그중 5,099명이 사망하고 11,232명이 부상을 입었다. (박정희 정부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에도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이 지원하겠다는 말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한국군이 참전한 베트남 전쟁 도중 남베트남의 전선이 악화되기 시작하자 미국은 한국의 추가파병을 요청했다. 이에 김현철 주미대사는 미국 국무부 차관과의 면담에서 추가적인 파병에 대한 지원을 약속함과 동시에 몇 가지의 약속을 받았다. 이것을 우리는 브라운 각서라고 부른다.
<브라운 각서> 「Brown Memorandum」, 1966년 3월 4일
브라운 각서(Brown Memorandum)
브라운 각서 제1차(1966. 3. 4)
이동원 외무부장관 귀하
귀하께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월남공화국 정부로부터 월남에 대한 한국 전투부대 증파에 관한 요청을 접수했음을 본인에게 통고했습니다.
귀하는 또한 대한민국 정부가 한국의 헌법절차에 따라 국회의 승인을 얻는 대로 1개 연대의 전투부대를 4월에, 1개 사단 병력을 7월에 각각 도착시키도록 하는 방식으로 월남정부에서 요청받은 원조를 월남정부에 제공키로 결정했다고 진술하였습니다.
본인은 대한민국 정부가 월남전선을 한국의 안전과 직결된 한국의 제2전선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그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라는 귀하의 설명에 유의했습니다.
미국정부는 월남에서 싸우고 있는 자유세계 군대에 대한 고도로 효과적인 기여를 다시 증강하려는 대한민국 정부의 결정을 충심으로 환영합니다. 본인은 한국의 안전과 발전에 대한 우리의 공동이익에 비추어 미국은 한국방위와 경제적 발전이 더욱 증진되기 위하여 다음의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음을 말씀드릴 권한을 받았습니다.
A. 군사원조
1. 한국에 있는 한국군의 현대화 계획을 위하여 앞으로 수년 동안에 걸쳐 상당량의 장비를 제공한다.
2. 월남에 파견되는 추가 증파병력에 필요한 장비를 제공하는 한편, 증파에 따른 모든 추가적 「원」화 경비를 부담한다.
3. 월남에 파견되는 추가병력을 완전히 대치하게 될 보충 병력을 장비하고 훈련하며 이에 따른 재정을 부담한다.
4. 한국의 대간첩 활동능력을 개선하기 위하여 한⋅미 합동으로 연구한 결과에 따라 한⋅미 양국 정부가 필요하다고 결정한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는 데 기여한다.
……(중략)……
B. 경제원조
1. 이 같은 추가병력의 월남파병과 한국에서 1개 예비사단, 1개 예비여단 및 지원부대를 동원 유지하는 데 필요한 순 추가비용의 전액과 동액의 추가 「원」화를 한국 측 예산을 위하여 방출한다.
2. 상당수의 한국병력, 최소한 2개 사단병력이 월남에 주둔하고 있는 동안
군원이관(軍援移管)
을 중지하는 한편 1967년 미회계 연도에는 66회계 연도에 중지된 품목과 67회계연도 회계표에 있는 품목을 한국에서 역외 조달한다.
……(중략)……
4. 수출을 진흥시키기 위한 모든 분야에서 한국에 대한 기술 원조를 강화한다.
5. 1965년 5월에 한국에 대해 약속했던 1억 5천만 달러 규모의 차관에 덧붙여 미국정부는 적절한 사업이 개발됨에 따라 1억 5천만 달러 제공약속에 적용되는 같은 정신과 고려 밑에 한국의 경제발전을 돕기 위한 추가 AID차관을 제공한다.
……(중략)……
윈드롭 G 브라운
브라운 각서 이후 미국의 원조가 시작되자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가파르게 증가했다. 제2차 경제성장개발계획 기준 7%를 초과한 12.1%를 보면 대단히 높은 고도성장을 하고 있다는 점을 미루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베트남 전쟁은 남베트남이 최종 패배하며 베트남은 최종적으로 공산권 국가가 되어버린다.
+)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을 위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독일 노동자 파견과 한일 국교 정상화도 진행하였다. 참고로 한일 국교 정상화에 대해 반대를 하며 1964년 6월 3일에 발생한 6.3 항쟁을 주도한 인물 중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도 있었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은 고려대 총학생회장 직무대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