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너스 코리아 픽처스 2』쉰 번째 장면
<경부고속도로 완공, 한국학중앙연구원 공공누리 1 유형, AI 채색화>
<경부고속도로 완공, 한국정책방송원 공공누리 1 유형, AI 채색화>
1968년 12월 21일 완공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연장되고 있는 경부고속도로, 어떤 이유로 만들어지게 되었을까? 시작은 박정희 대통령의 서독 방문이었다. 서독을 방문하며 아우토반을 시찰한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고속도로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져야 한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1967년 5월 3일 제6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가 열렸는데, 박정희 후보는 윤보선 후보를 11%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당시의 경제성장률을 보면 당선 이유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1963년 공식적으로 박정희 정부가 출범한 이후로 경제성장률은 9% 내외의 성장률을 보였다. 1963년 9%, 1964년 9.4%, 1965년 7.3%를 기록하던 경제성장률은 남동임해공업지구 건설과 중화학공업 육성으로 1968년에는 13.2%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러던 중 치러진 6대 대선에서는 여당과 박정희 후보에게 표가 몰렸으리라 짐작된다. 재선에 성공한 박정희 정부는 경제발전을 성공하기 위해 독일의 아우토반 시찰 후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착공하게 된다. 전국에 도로망을 설치하고 새마을운동, 포항제철소 건설 등의 정책을 펼친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아래 경제 발전을 진행했고, 실제로 1968년에는 경제성장률이 13.2%, 69년에는 14.6%, 70년에는 10.2%, 71년에는 10.7%를 달성하며 고도성장기를 만들게 된다. 한편 박정희 정부는 경제발전과는 별개로 3선 개헌을 추진하며 이승만 정권과 동일한 행태를 보이게 된다. 1969년에 이뤄진 제6차 개헌(3선 개헌)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은 또다시 선거에 출마하게 된다. 권력을 다시 놓는다는 것은 정녕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일까? 삼선개헌은 또다시 한국 민주주의사에서 드리우는 먹구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징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