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1971년 4월 27일
박정희와 김대중

『모더너스 코리아 픽처스 2』쉰 한 번째 장면

by 박재한
1971.04.27 7대 대선 중 김대중_신민당_대통령_후보_광주대단지_시찰_(1970._12._21).jpg
51.png

<7대 대선 중 김대중 후보, 서울역사박물관 공공누리 1 유형>


경제개발로 나라가 성장한 것과는 다르게 무리한 3선 개헌으로 정계는 뒤숭숭해졌다. 한편 야당의 핵심 정당 중 하나였던 신민당에서는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이 40대 기수론을 선언하며 돌풍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이러던 중 주요 야당 중 하나였던 신민당의 대선 후보로 김대중 후보가 선출되었는데, 이때 그의 나이는 47세였다. (만으로는 46세였다.) 박정희와 김대중은 수백만의 인파를 몰며 선거전을 펼쳤다. 이때 그들의 연설은 지금까지도 주목을 받는 명연설로 기억되고 있다.


- 1971년 4월 25일 7대 대선 박정희 후보의 선거유세 중

유권자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씀드리거니와, 내가 이런 자리에 나와서 여러분에게 “나를 한 번 더 뽑아 주십시오.” 하는 정치 연설은 오늘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확실히 말씀드립니다. (중략) 여러분들에게 나를 한 번 더 뽑아 주십시오, 하는 이야기도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여러분들이 표를 많이 모아서 우리 공화당과 이 사람을 한 번 더 지지하여 일할 수 있는 뒷받침을 해 주시면, 앞으로 4년 동안 여러분들을 위해서 있는 정력을 다 해서 한번 멋있는 수도 서울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1971년 4월 18일 7대 대선 김대중 후보의 선거유세

여러분! 이번에 정권 교체를 하지 못하면 이 나라는 박정희 씨의 영구집 권의 총통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공화당은 지난 개헌 때 이미 박 정희 씨를 남북통일이 될 때까지 대통령을 시키려고 했으나, 그 당시는 아직 자기 공화당 내부나 야당이나 국민이나 거기까지는 할 수 없어서 못 했던 것입니다. 나는 공화당이 그런 계획을 했다는 사실과 이번에 박정희 씨가 승리하면 앞으로는 선거도 없는 영구 집권의 총통시대가 온다는 데 대한 확고한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선거는 박정희 후보의 승리였다. 그러나 이변은 존재했다. 40대 젊은 정치인이었던 김대중 후보와는 불과 8%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95만 표만 뒤집혔다면 정권은 교체될 수 있었다. 청와대와 공화당은 당황했다. 경제발전은 차치하고 정권부터 먼저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모든 것을 잠식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김대중 후보가 연설을 하며 우려하던 영구총통의 시기가 찾아오게 된다.


+) 7대 대선부터 지역감정을 유발한 선거전이 펼쳐졌다. 호남은 김대중, 영남은 박정희라는 거대한 지역감정을 형성하고 '신라 대통령론', "호남에서 영남인의 물품을 불매하기로 했다."는 내용의 허위전단을 영남에 뿌리기도 하는 등 노골적이고 원색적인 지역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이때 생긴 지역감정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참담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1971년_한국 7대 대통령 취임식, 셀수스협동조합, 기증저작물.JPG

<7대 대통령 취임, 셀수스협동조합 기증저작물>



이전 24화50.1968년 12월 21일 경부고속도로 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