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1972년 10월 17일
10월 유신과 독재

『모더너스 코리아 픽처스 2』쉰 두 번째 장면

by 박재한
1972.11.21 유신헌법 국민투표 참여 권장 표어판, 한국정책방송원, 공공누리 1유형.jpg

<10월 유신, 한국정책방송원 공공누리 1 유형>


"여러분! 이번에 정권 교체를 하지 못하면 이 나라는 박정희 씨의 영구집 권의 총통시대가 오는 것입니다."젊은 김대중의 돌풍으로 대선에서 힘겹게 이긴 박정희는 고민에 빠졌다. 그는 김대중이 뭘 했다고 95만 표 차이밖에 안나냐, 선거비용을 써도 김대중보다 훨씬 더 많이 썼고, 행정력을 얼마나 사용했냐고 반문했다. 박정희는 민주주의를 위해 선거는 불가피한 것이지만 큰일이 날 수 있다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김종필 증언록 중 인용)


1년이 지난 1972년 10월 17일, 오후 7시를 기점으로 전국 비상계엄령이 선포됐다. 일종의 초헌법적인 비상조치를 시행했는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국회 해산과 정치활동 중지 등 헌법 일부 조항의 효력 정지

② 비상 국무회의가 효력이 정지된 일부 헌법 기능 수행

③ 비상 국무회의의 헌법 개정과 국민투표

④ 개정 헌법에 따른 헌법질서 성립


결국 김대중 후보가 말했던 영구총통의 집권시대가 개막한 것이다. 유신헌법이라는 이름의 이 헌법 개정안은 11월 21일 국민투표에 붙여졌고, 결국 91.5%의 찬성률로 가결되었다. 유신 헌법의 내용은 대통령 직선제 폐지,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간접 선거, 국회의원의 1/3을 대통령 추천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 헌법의 효력까지 중지시킬 수 있는 긴급조치권을 대통령 권한으로 부여, 국회 해산권, 법관 임명권, 법률 거부권을 대통령에게 부여, 대통령 임기 6년으로 확장, 연임 제한 철폐가 있다. 사실상 군주와 다를 게 없을 정도로 대통령 한 명의 인물에게 막대한 권한과 권력이 주어진 것이다.


결국 유신헌법에 입각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2,359명이 선출되었고 이들은 1972년 12월 23일 통일주체국민회의 제1차 회의에서 박정희 후보를 제8대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 이로써 유신체제가 공식적으로 출범하게 된 것이다. (10월 유신,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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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주체국민회의, 한국학중앙연구원 공공누리 1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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