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1976년 12월 6일
울산 현대조선소와 산업화

『모더너스 코리아 픽처스 2』쉰 네 번째 장면

by 박재한
1976.12.06 산업화의 상징, 울산 현대조선소 전경 한국정책방송원 공공누리 1유형.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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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현대조선소 전경, 한국정책방송원 공공누리 1 유형>


1970년대 한국은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전체적인 산업구조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소위 "잘살아 보자"라는 표어로 전폭적인 중화학공업 붐이 일어난 한국 경제는 남동임해공업지역(포항, 울산, 부산, 거제, 창원으로 이어지는 2차 산업 벨트이다. 주로 경상남도 해안가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육성과 더불어 원전 건설, 대형 인프라 설치 등으로 중화학 공업 단지를 육성하였다. 이는 1973년 1월 12일 정부 기자회견에서 "중화학 공업 정책 선언"을 기점으로 전폭적인 자본 투자가 이루어졌다고 보는 경향도 있다. (대통령 기록관 73년 1월 12일 자료)


“우리나라는 바야흐로 중화학공업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정부는 이제부터 중화학 육성 시책에 중점을 두는 중화학공업화 정책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1973년 1월 12일 박정희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 중>


이후 제철 산업 육성을 위해 포항종합제철 준공이 1973년에 이뤄졌다. 후에 포스코로 불리는 포항종합제철은 3년이 지난 1976년에는 확장 사업까지 공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같은 해인 1973년에는 거제도 일대를 중심으로 옥포조선소 기공식이 이루어졌으며(현 한화오션), 여천공업단지 조성을 통해 석유화학과 비료 산업 투자도 더불어 이루어졌다.(현 여수국가산업단지, GS칼텍스, LG화학, 롯데케미컬 등 294개(2024년 기준)의 석유화학 등의 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산업단지이다.) 이후 창원공업단지 건설까지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이루어졌다. (2020년대 기준으로 2600여 개의 기업과 12만 명의 종사자가 근무하고 있다.) 실제로 1970년대 전체 산업 중 중화학공업 비율이 12.8%였는데, 1980년대가 되자 41.5%로 대폭 증가하였다. 또한 경제성장률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1970년 10.2% 성장률을 기록한 이후로 1972년에는 7.3%, 73년에는 15.0%, 74년에는 9.6% 등 10%의 성장률을 꾸준히 기록하였다. 과감한 중화학 공업 육성으로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륙한 것은 사실이나 그와는 별개로 후퇴한 민주주의, 극악한 노동 강도(전태일 열사의 분신), 중화학 공업 중심 정책으로 인한 석유파동 위기는 비판받을 문제점으로 기억되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한국은행의 자료에 근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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