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1997년 11월 22일
IMF 외환위기

『모더너스 코리아 픽처스 3』육십 네 번째 장면

by 박재한

<IMF 여파, 금_모으기_운동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 CC BY-SA 4.0>


1997년 한국은 표면상으로는 성장하고 있었다. 실제로 한국은행 경제성장률 지표를 살펴보면 1996년에는 7.2%의 성장을 기록하였고, 1997년에는 5.8%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별문제 없이 경제성장을 하고 있었기에 정부와 국민 모두는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고 평범히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 해외에서 터진 일련의 사건으로 발생한 경제적 위기는 단숨에 한국까지 퍼져 건국 이래 최대의 경제 위기를 겪게 된다. 문제의 발단은 태국의 고정환율제 포기 선언이었다. 10%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있었던 태국은 1997년 7월 즈음 고정환율제를 포기하였고, 그 결과로 태국 바트의 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한편 김영삼 정부는 국민소득 1만 달러 달성과 더불어 선진국만 가입할 수 있다고 알려진 OECD 가입도 이루어내며 선진국 대한민국을 연 대통령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국민소득 1만 달러라는 하나의 상징을 유지하기 위해 고환율을 지키려고 하였다. 정부는 고환율 유지를 위해 가지고 있던 외환보유고를 풀었고, 1997년 10월 즈음 305억 달러에 달했던 외환보유액이 1997년 12월에는 204억 달러 정도로 약 101억 달러의 외환이 급격히 시장에 풀렸다. 이런 와중에 소위 아시아 금융위기라고 불리는 태국발 경제위기가 아시아 전역을 강타하자 아시아에 투자하고 있었던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의 투자 금액을 전면 회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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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외채비중 및 단기외채비율, ECOS / 96년 1분기 단기외채비율은 163.6, 단기외채비중은 47.3인 반면에 97년 4분기 단기외채비율은 약 286.1, 단기외채비중은 36.1을 기록했다. 참고로 단기외채비중은 단기외채/대외채무 X100, 단기외채비율은 단기외채/외환보유액 X100이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대외채무의 건전성을 판단하는 자료로 단기외채비중과 단기외채비율을 보는데, 여기서 단기외채는 만기가 1년 이하인 대외채무를 뜻한다고 한다. 단기외채비중은 전체 대외채무 중에서 단기외채가 얼마나 되는지를 의미하는 것이고, 단기외채비율은 준비자산 대비 단기외채 비율로, 단기외채 지급능력을 말한다고 한다. 이 말인즉슨 단기외채비율이 163에서 286.1이 되었다고 하니 대외 신용도가 급격히 떨어졌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김영삼 정부까지의 한국의 경제는 관치금융체제이었다. 관치금융이란 정부가 금융산업에 대해 깊숙이 관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한국의 기업 성장 구조도 대기업 중심의 문어발식 경영과 더불어 대기업이 되면 대기업이 망할 때 하청업체의 일자리들까지 감안하면 절대로 기업이 망하게 정부가 두지 않을 것이라는 대마불사라는 기업풍토, 기술은 그냥 사 오면 그만이라는 당시의 사회 분위기까지 겹쳐지며 딱 한 번만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전체가 도미노식으로 무너질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당시 대한민국의 대기업이었던 한보그룹이 부도를 선언하며 5조의 빚이 순식간에 발생하였고, 이후 삼미그룹, 진로그룹, 기아그룹, 쌍방울그룹, 해태그룹 등의 대기업이 줄줄이 부도를 내며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로 인하여 김영삼 대통령은 그간 보여줬던 업적이 희석되었고, 지지율이 7%를 맞이하며 불명예로 퇴임하게 된다.


"우리 경제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중략) 정부가 이미 발표한 정책의 조속한 집행과 함께 외환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정부의 모든 능력을 총동원하고자 합니다. 시급한 외환 확보를 위해 국제통화기금에 자금지원 체제를 활용하겠습니다. (중략) 국민 모두가 이 위기를 극복하고야 말겠다는 한마음으로 뭉친다면 우리는 반드시 해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결연한 의지와 능력을 대내외적으로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 -1997년 11월 22일 김영삼 대통령의 담화문 중 일부 발췌-"


이후 1997년 12월 3일 임창열 경제부총리와 IMF 총재는 한국에 550억 달러의 긴급지원을 해주는 내용을 체결하며, 한국 경제는 본격적으로 IMF 관리로 들어서게 된다. 또한 97년 외환위기롤 한국 사회는 자살률 급증, 이혼율 증가했고, 국가 지표로 보더라도 GDP는 6312억 달러(1996)에서 3973억 달러(1998),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인하여 실업률은 2%(1996)에서 6.8%(1998) 등 총체적인 침체기로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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