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1998년 2월 25일
김대중 대통령 취임

『모더너스 코리아 픽처스 3』육십 다섯 번째 장면

by 박재한
1998.02.25 김대중 대통령 취임 [위키 커먼즈, 퍼블릭 도메인] 1998.02.25-2003.02.24 조지 부시 대통령과.jpg

<김대중과 조지 부시 대통령, 퍼블릭 도메인>


1997년 말에 촉발된 IMF 외환위기로 한국 경제는 건국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러던 중인 1997년 12월 18일 제15대 대통령 선거가 열렸다. 김영삼과 대립각을 세우면서도 대쪽판사라는 별명을 갖고 새로운 보수 정당의 대통령감으로 불리던 이회창이 후보로 나섰다. 한편으로는 김대중이 사실상 마지막일 수도 있는 대통령 선거 출마를 하였으며, 이외에도 이인제와 권영길과 같은 후보들이 대통령으로 출마하였다. 하지만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의 입장에서는 15대 대선만큼 참혹한 상황에서 열리는 선거는 없었을 정도로 상황은 처참했다. 성수대교 붕괴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한보사태와 김영삼 대통령의 장남 김현철의 구속 그리고 IMF 외환위기 사태까지 겹치며 국민들의 신임을 완전히 상실했다. 오죽하면 당시 여당 후보였던 이회창은 자기 당에서 배출한 김영삼의 인형을 만들어 화형식 퍼포먼스를 보여줬다고 하니 말은 다한 셈이다.


한편 구군부를 대표하는 정치인이자 충청도의 표심을 확보하고 있었던 자유민주연합의 김종필도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고,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또한 인생의 마지막 대통령 선거 출마를 하게 된다. 한편 신한국당에서는 한 편의 해프닝이 발생한다. 이회창의 경선승리를 불복하고 탈당한 이인제는 국민의 인기를 등에 업고 국민신당을 창당하고 대선출마를 선언하 독자노선을 걷게 된다.


그러던 중 1997년 10월 26일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와 자유민주연합의 김종필 후보가 연합을 선언하며 선거지형의 대변화가 발생하게 된다. 일명 DJP 연합이라고 불리는 이 연합은 대통령 후보로는 김대중, 국무총리로는 김종필을 골자로 하는 연합 선언이다. 파장은 굉장히 컸다. 민주화의 상징인 김대중과 박정희와 경제개발, 그리고 군부 세력의 이미지가 있었던 김종필의 연합은 지금으로 봐도 꾀나 파격적이고 갸웃거릴 수 있는 연합이었다. 김대중의 입장에서는 충청도 표심을 확보하여 호남, 충청, 수도권에서 승리하여 대통령에 당선된다는 전략과 의원내각제로 개헌을 성공하여 장면 내각 이후로 김종필 내각이라는 하나의 새로운 정계 개편을 꿈꾼 김종필의 전략이 맞아떨어진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선거 결과는 김대중의 승리였다.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가 1032만 표(40.27%)를 득표하며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도 993만 표(38.74%)를 획득하며 39만여 표(약 1.5%)의 차이로 아쉽게 낙선하였다. 한나라당은 김영삼의 저조한 지지율을 감안한다면 이회창이라는 새로운 대권후보를 찾았다는 것을 그나마의 위안으로 삼았다. 한편 국민신당의 이인제는 492만 표(19.2%)를 득표하며 독자출마 후보 치고는 나쁘지 않은 결과표를 받았다.


어렵사리 대통령에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은 여러 가지 정치사의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겼다. 아마 가장 의미 있는 기록은 건국 이래 최초의 평화적 여야 정권교체일 것이다. 앞서 이승만의 독재와 4.19 혁명으로 윤보선 대통령과 장면 내각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모습을 보기는 하였으나, 1년 만에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며 정권교체가 흐지부지 되었기에 대통령 선거를 통해서 야당에서 여당으로 군인이 아닌 김영삼에서 김대중으로 이어지는 수평적 정권교체이기에 더욱더 김대중 대통령의 정권교체는 의미가 있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사 1998.02.26]

오늘 저는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에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정부수립 50년 만에 처음 이루어진 여야 간 정권교체를 여러분과 함께 기뻐하면서 온갖 시련과 장벽을 넘어 진정한 '국민의 정부’를 탄생시킨 국민 여러분께 찬양과 감사의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중략)


오늘 이 취임식의 역사적인 의미는 참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오늘은 이 땅에서 처음으로 민주적 정권교체가 실현되는 자랑스러운 날입니다. 또한 민주주의와 경제를 동시에 발전시키려는 정부가 마침내 탄생하는 역사적인 날이기도 합니다. 이 정부는 국민의 힘에 의해 이루어진 참된 '국민의 정부’입니다. 모든 영광과 축복을 국민 여러분께 드리면서 제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봉사할 것을 굳게 다짐하는 바입니다. (중략)


우리는 이와 같은 문명사적 대전환기를 맞아 새로운 도전에 전력을 다하여 능동적으로 대웅해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중차대한 시기에 우리에게는 6.25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고 할 수 있는 외환위기가 닥쳐왔습니다. (중략)


잘못하다가는 나라가 파산할지도 모를 위기에 우리는 당면해 있습니다. 막대한 부채를 안고 매일같이 밀려오는 만기외채를 막는데 급급하고 있습니다. (중략)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나마 파국을 면하고 있는 것은 애국심으로 뭉친 국민 여러분의 협력과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아시아개발은행, 그리고 미국·일본·캐나다·호주·EU국가 등 우방들의 도움 덕택입니다. (중략)


올 한 해 동안 물가는 오르고 실업은 늘어날 것입니다. 소득은 떨어지고 기업의 도산은 속출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땀과 눈물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중략)


도대체 우리가 어찌해서 이렇게 되었는지 냉정하게 돌이켜 봐야 합니다. 정치·경제·금융을 이끌어온 지도자들이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에 물들지 않았던 들, 그리고 대기업들이 경쟁력 없는 기업들을 문어발처럼 거느리지 않았던들 이러한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중략)


잘못은 지도층들이 저질러놓고 고통은 죄 없는 국민이 당하는 것을 생각할 때 한 없는 아픔과 울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파탄의 책임은 국민 앞에 마땅히 밝혀져야 할 것입니다.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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