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2003년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

『모더너스 코리아 픽처스 3』육십 일곱 번째 장면

by 박재한
2003.02.25 노무현 대통령 취임 [위키 커먼즈, 퍼블릭 도메인] 2003.02.25-2008.02.24 조지 부시 대통령과.jpg

<노무현과 조지 부시 대통령, 퍼블릭 도메인>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던 와중인 2000년 1월 20일 즈음, 김대중 대통령과 새정치국민회의는 새천년민주당으로 확대개편하고 어렵게 수평적 평화적 정권교체를 한 만큼 다음 대선에서도 대통령을 당선시킬 준비를 천천히 진행해 나갔다. 한편 야당인 한나라당은 지난 대선에서 아쉽게 패배한 이회창 총재를 필두로 다음 대선에서는 이회창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한 채로 대선준비를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다. 한편독자출마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톡톡히 알린 이인제는 새천년민주당으로 입당하여 여당 대선후보가 될 준비를 하였다. 이때까지도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았을뿐더러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생각조차도 대다수는 생각하지 못했다.


한편 새천년민주당은 기존에 시행되었던 대통령 후보 선출 방식을 전면 개편하여 국민이 참여하여 새천년민주당의 국민을 선출할 수 있는 국민 참여 경선 제도를 채택하였다. 내 손으로 여당 대통령 후보를 뽑을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국민적 열풍과 정치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국민적 관심도가 높아졌다. 이에 이인제, 정동영, 김근태, 한화갑, 노무현 등의 후보들이 나와 국민적 지지를 호소하며 지역을 돌며 선거운동을 펼치게 된다. 초반에는 국민적 지지율이 높았던 이인제나 김대중 대통령과 가까웠던 하화갑이 주목받았으나, 뜻밖에 아웃사이더였던 노무현 후보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노무현 후보는 새천년민주당이 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해서는 영남 후보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신을 어필했다. 여기에는 정치인 최초의 팬클럽이라고 불리는 노사모의 적극적인 선거운동도 하나의 주목받는 포인트로 여겨진다. 결국 초기에는 국민적 지지가 가장 낮았던 노무현 후보가 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며, 소위 노풍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열풍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한편 야당인 한나라당에서는 김대중 대통령과 맞서 싸워 근소하게 패배하였던 이회창이 다시금 출마하여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한편 예외적인 변수가 발생한다. 바로 2002년 한일 월드컵이다. 월드컵 열풍으로 2002년 5월부터 뜻밖에 후보가 대통령 후보급으로 지지율이 높아지기 시작하니 이 사람이 바로 정몽준이다. 대한축구협회장 정몽준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유치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로 평가받았다. 이에 4강 신화를 쓰며 월드컵 돌풍을 일으켰던 축구로 정몽준이 높은 지지율을 얻은 것이다. 이제 상황은 이회창, 정몽준, 노무현 3파전으로 흘러가며 묘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이때 노무현과 정몽준의 단일화로 노무현 후보가 다시 한번 선출되자, 시너지를 내며 지지율이 올라갔고 그렇게 선거가 끝나나 하였다. 하지만 선거 전날 정몽준은 갑자기 노무현 지지를 철회한다는 폭탄 발언을 하고 잠적하였고, 노무현 후보 측은 초초한 상황으로 선거날을 맞이하게 된다. 많은 내용이 생략되었지만 여차저차하여 선거가 끝났고, 선거 결과 노무현 후보가 1200만 표(48.91%) 이상을 득표하며 이회창 후보(1140만 표 이상, 46.58%)를 50만 표 차이로 따돌리고 대통령으로 당선되며, 민주당계 정당이 정권을 연장시키는 데에 성공하게 된다. 이 일로 이회창 후보는 정치 은퇴를 선언하였고, 단일화를 전날 철회했던 정몽준은 정치적 면모를 잔뜩 구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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