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피격 사격

『모더너스 코리아 픽처스 3』일흔 번째 장면

by 박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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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4.24 천안함 함수 인양작업” 작성자: 대한민국 국군 Republic of Korea Armed Forces, CC BY-SA 2.0


2010년 3월 26일 금요일 오후 9시 22분 서해 백령도 남방 해상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정상적인 경계임무를 수행하던 대한민국 해군 제2함대 소속 PCC-722(천안함)이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 북한의 아무런 사전예고 없는 기습 도발로 천안함은 침몰하였고, 104명의 해군 중 46명이 전사하였고, 58명이 구조되었다.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는 제2차 핵실험, 2009년 대청해전 등으로 인한 군사적 긴장이 극도로 진행되던 시기에 이루어진 북한의 무력도발로 기술하고 있다.


3월 26일 당시 천안함은 갑작스러운 수중 폭발과 함께 함수(선체의 앞부분)와 함미(선체의 뒷부분)가 두 동강으로 갈라지게 된다. 이후 전력이 차단된 한미는 급격히 침몰하였고, 함수는 표류하다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해군 제2함대사령부는 구조요청을 받아들였고, 즉각적으로 서북 해역에 최고 수준의 경계태세를 발령하고 경계를 강화하게 된다. 또한 인천해양경찰서 소속 501함과 해군 고속정이 투입되어 당일 밤 23시 13분 함체 남아있는 58명의 해군을 구조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후 실종자 수색에 만전을 가하였으나 거센 조류와 탁한 시야로 구조작업에 난항을 겪었다. 그러던 중 한주호 준위가 실종자 수색 도중 감압병(잠수병으로도 불린다. 잠수를 오래 하면 겪게 되는 직업병이다.)으로 순직한다. 정부는 사건 진상작업을 위해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 등의 다국적 전문가가 참여하는 민군 합동조사단을 편성하여 진상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합동조사단은 함체 용골의 급격한 위쪽 꺾임과 파단면, 백령도 지진파 관측소의 지진파 및 공중음파(진도 1.5 규모), 생존자들과 해안 초병이 목격한 물기둥 현상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했고, 그 결과, 천안함은 북한 연어급 소형 잠수정에서 발사된 중어뢰(폭발 장약 250kg)가 가스터빈실 좌현 하단부에서 '수중 비접촉 폭발'을 일으켜 발생한 버블제트 효과와 충격파로 인해 절단되어 침몰했다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 초기 피격 시각에 대해 혼선이 있었으나, 조사단은 지진파 감지 시각과 통신 발신 중단 시각 등을 근거로 실제 피격 시각을 21시 21분 57초로 확정했다.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 中>"


정부는 이를 강력히 규탄하고 5.24 조치라고 불리는 강력한 대북제재조치를 발표했다. 이로 인하여 북한 선박의 남측 해역 전면 불허와 남북 교류 전면 중단, 대북 심리전 방송 재개 등의 조치가 이루어졌다. 또한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의 공격을 강력히 규탄하고 도발 방지를 촉구하는 성명을 채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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