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전

『모더너스 코리아 픽처스 3』일흔 한 번째 장면

by 박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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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3 북한 해안포 발사로 불타는 연평도” 작성자: 대한민국 국군 Republic of Korea Armed Forces, CC BY-SA 2.0, https://www.flickr.com/photos/kormnd/7445571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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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5 해병대 연평도 k-9 사격” 작성자: 대한민국 국군 Republic of Korea Armed Forces, CC BY-SA 2.0, https://www.flickr.com/photos/kormnd/7445570778>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0분경,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일명 북한)이 아무런 사전통보도 없이 대한민국 영토인 연평도에 무차별적인 폭격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왜 공격했는가에 대해서는 주도권을 갖기 위해서, 김정은의 후계 구도 확립 등의 설이 있지만, 대한민국 영토에 아무런 통지 없는 포격을 가했다는 점은 엄연한 사실이다.


북한군은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 대연평도를 향하여 170발의 포격을 진행했고, 포격을 받은 후 대한민국 국군은 즉각 K-9 자주포를 통한 80여 발의 대응사격을 개시하였다. 이후 북한군은 MIG-23 전투기를 띄웠고, 국군은 F-15K 전투기를 띄우며 즉각 대응을 하였으나, MIG-23기가 바로 퇴각하며 제공권을 국군이 잡게 된다. 이후 미군이 F-22와 공중급유기를 오키나와에서 한반도 상공으로 출격하며 북한군의 포격은 사그라들었다.


연평도 포격전으로 대한민국은 국군 2명(대한민국 해병대 소속 서정우 병장과 문광욱 이병이다. 전투 당시의 계급이다.)이 전사하였고, 민간인 2명이 사망하는 비극을 맞이하였다. (또한 해병대원 16명과 민간인 3명이 부상을 입었다.) 북한 측은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자유아시아방송에 따르면 조선인민군(북한군) 10명이 죽고, 30명이 부상당했다고 전해진다. 연평도 포격전은 6.25 전쟁 이후 대한민국 영토가 포격받은 교전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 이전에는 "연평도 포격 도발"로 불렸으나, 해병대와 유족들의 염원으로 2021년 "연평도 포격전"으로 공식 호칭이 변경되었다.


"추가 도발도 예상이 되므로 몇 배의 화력으로 응징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다시는 도발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막대한 응징을 해야 한다" -청와대 브리핑(2010년 11월 23일), 이명박 대통령-


“불의의 피격에도 당당히 이겨낸 연평도 포격전 영웅들께도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 -2021년 제6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 문재인 대통령-


이후 연평해전,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 포격전으로 대한민국의 서해 5도와 서해 바다를 수호한 55명의 호국 영령을 기리기 위해 3월 넷째 주 금요일을 서해수해의 날로 제정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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