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너스 코리아 픽처스』스물세 번째 장면
<사이토 마코토, 퍼블릭 도메인>
1919년 3월 1일부터 2달여간 이어진 만세운동의 여파로 일본 제국의 극악무도한 무단통치 10년의 모습과 한국인의 저항이 세계 만국으로 뻗어나갔다. 일본 측은 이러한 국제여론과 반발이 극으로 달한 한국인들을 달래는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었고, 제3대 총독이 된 사이토 마코토는 기존 무단통치에서 조선인 회유 및 친일파 양성에 초점을 맞춘 문화통치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문화통치라는 말 자체가 대단히 좋아 보이는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실상은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개조하려는 프로젝트에 지나지 않았다. 사이토는 기존의 헌병경찰제를 폐지하고 보통경찰제를 도입하여 치안의 범위는 경찰이 담당하게 하였다. 그러나 경찰의 수를 대폭 늘려 독립운동 감시를 더 촘촘히 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성하였다.
교육에서는 기존의 조선인과 일본인의 차이를 두었던 교육제도에서 벗어나 균등한 교육의 기회를 부여한 것처럼 개편하였으나, 실상은 조선어 교육을 대폭 줄이고 일본어 교육을 확대하여 조선어를 소멸시키려고 하였다.
또한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제한적으로 풀어주는 조치를 시행하여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의 신문사들이 창간되는 일이 있었으나 가혹한 검열로 인하여 안 하니만 못하게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경제 분야에서도 화사령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개편하여 조선인들도 회사를 설립할 수 있게 하였지만 이미 한국의 시장의 대부분은 일본 자본과 기업이 장악한 뒤였다.
<AI 채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