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너스 코리아 픽처스 2』스물일곱과 여덟 사이 첫 번째 장면
1923년 임시정부의 갈등을 봉합하고자 국민대표회의를 소집하였으나, 무장투쟁을 주장하는 창조파와 실력양성을 주장하는 개조파와의 의견 차이만 확인할 뿐 임시정부의 노선을 정하지 못하고 마무리 되었다. 그로 인하여 임시정부의 세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의 위임통치청원서를 제출했다는 사유로 탄핵을 당하며 임시정부의 내부는 대단히 혼란하였다.
와중에 김구는 위축된 임시정부의 기강을 다시 세우고, 가혈찬 독립운동을 다시 하기 위하여 1931년 중국 상하이에서 한인애국단을 조직하게 된다. 한인애국단의 이봉창 의사는 천황 암살 계획을 수행하기 위하여 도쿄로 이동하였고 실제로 1932년 1월 8일 도쿄의 경시청 앞을 지나는 천황을 향해 폭탄을 던졌다. 하지만 폭탄은 불발되었고 당시 천황이었던 쇼와는 살아남게 된다. 암살 미수에 그친 이봉창 의사의 의거로 이봉창 의사는 사형에 처하고 만다.
하지만 1932년 4월 29일의 상황은 달랐다. 상하이에서 전승한 것을 기념함과 동시에 쇼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고위 관료들이 모인 훙커우 공원으로 간 윤봉길 의사는 행사가 시작하자마자 연단에 물통 폭탄을 던졌고 성공적으로 폭발하였다. 이로 인하여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인 시라카와 요시노리 일본 대장이 사망하였고, 상하이 일본인거류민단 행정위원장인 가와바타 사다지는 창자가 끊어져 사망하고 만다. 또한 노무라 기치사부로, 우에다 겐키치 등 맣은 일본 제국의 군인들이 부상을 입었고,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 다음의 이야기다. 당시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다리를 절단하게 된 시게미쓰 마모루는1945년 9월 2일 일본의 항복 문서 서명식에서 절뚝거리며 힘겹게 몸을 이동하였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와 한인애국단의 독립운동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상단의 흑백 사진은 전부 퍼블릭 도메인임. 아울러 채색이 된 사진은 맨 아래의 시게마쓰의 사진을 제외하고는 전부 AI 채색화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