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너스 코리아 픽처스 2』서른 번째 장면
<조선의용대 창설, 퍼블릭 도메인>
1938년 10월 10일 조선의용대가 창설되었다. 김원봉의 주도로 창설된 조선의용대는 초기에는 좌우의 힘을 모아 독립운동을 하자는 취지의 민족혁명당을 결성하는 것으로 시작하였으나, 사회주의자들이 민족혁명당을 주도하는 것에 회의감을 느낀 지청천과 조소앙이 임시정부로 이동하는 것을 시작으로 우익 세력이 빠진 좌익의 세력으로 변모하였다. 후에 민족혁명당을 조선민족혁명당으로 개편하고, 조선민족혁명당의 예하부대를 만들게 되니 그 예하부대가 바로 조선의용대이다. (한커우에서 조선의용대를 창설하였다. 한커우는 지금 우한시이다.) 규모는 약 314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조선의용대,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바로 밑에서 서술할 것이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일본에 쫓겨 충칭까지 거처를 옮긴 이후 군대를 갖춰서 제대로 일본에 대항하자는 취지로 결성된 임시정부의 예하부대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김원봉과 대다수의 조선의용대 군인들이 한국광복군에 합류하게 된다. 그러나 일부 군인들은 화북지대에서 중국공산당의 팔로군과 함께 일본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고 있었는데 이들은 한국광복군 합류를 거부하였다. 이렇게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는 독립적으로 중국공산당의 팔로군과 지속적으로 일본을 상대하여 전투를 벌였고, 후에 이들은 조선의용군으로 개편하게 된다. (후에 이들은 국공내전에도 참전하였고, 이들은 조선인민군으로 합류하여 북한군이 된다.)
<한국광복군 성립 전례식 기념사진, 퍼블릭 도메인>
한편 충칭으로 거처를 옮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0년 9월 17일에 이르러서야 중국 국민당의 지원으로 한국광복군을 창설하게 된다. 한국광복군은 지청천 장군을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으로, 이범석 장군을 참모장으로 최용덕 장군을 총무 처장으로 임명하였고, 1941년 미국을 상대로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자, 한국광복군은 일본을 상대로 대일선전포고문을 발표하는 등 맹렬히 독립운동을 하였다.
1942년 김원봉과 조선의용대 일부가 합류하며 규모를 키운 한국광복군은 1943년에는 영국군과 함께 인도와 미얀마 전선에 투입되어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1945년에는 미국 전략 사무국(Office of Strategic Service, OSS)과 협약을 맺고 특무공작훈련을 받으며 미국의 도움으로 극비리에 본국으로 한국광복군을 보내 상황을 파악한 뒤 주요 시설을 파괴시키고 점령을 한다는 국내 진공 작전을 계획하였지만,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이 나오며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당시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김구는 "천신만고로 수년간 애를 써서 참전할 준비를 한 것도 다 허사이다."라고 한탄하였다. (한국광복군,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AI 채색화>
+) 조선의용대의 군복의 색상은 현재까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초황색(황토색 계통)과 심회색(흔한 회색)이 있는데, 한 논문에 따르면 심회색일 가능성을 제시하였기에 AI 채색화도 이것에 감안하여 색칠하였음을 강조한다. (김정민, 조선의용대 성립 기념사진에 나타난 군복 연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