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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look Feb 17. 2022

지금부터 중요한 얘길 할 거야

<음악가의 음악> 최예근 인터뷰

Ⓒ unlook / Photograph 기우


어느 작은 합주실, 최예근이 밴드와 함께 생기 넘치는 목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2012년 싱글 「못살 것 같다」를 발표한 그는 같은 해 SBS 오디션 프로그램 「K팝스타2」에 출연했다. 피아노 선율이 흐르고 힘 있는 보컬이 무대를 채웠다. 독특한 리듬으로 듣는 이를 설레게 하는 그가 무대를 마치자 심사위원이었던 박진영 씨가 “앞으로 쭉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고 말했다. 심사위원의 말처럼 최예근은 계속 음악을 했다.


그는 2015년 「Super Moon」을 발표한 뒤 「까만 얘기」 「어른」 「미안하다는 말」 「안녕, 나」 등 연달아 싱글을 선보였다. 2019년 EP 앨범 「너만 알아볼 수 있는 의미를 담아서」를 통해 음악적 방향성을 또렷하게 했고, 2020년 「갈 곳을 잃어도 어디든 흘러갈 수 있게」를 발표하며 최예근만의 음악 세계를 펼쳤다. 십여 년 동안 음악을 해온 그는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고 했다. 쌓인 이야기와 쌓일 이야기가 한 아름이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최예근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 같다.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른다. 그는 쉴 때도 무엇인가를 한다고 했다. 소모되고 소비된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지치지는 않는다고 했다.


하기 싫은 일에는 절대 몸을 움직이지 않아요.
하고 싶고 싶은 것만 하니까 지치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음악이 너무 좋아요.


당연과 필연


가족들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걸 좋아했어요. 다섯 살 때 같아요. 가족들이 시끌벅적하게 떠들다가도 제가 노래하면 조용해졌어요. 모두 하던 얘기를 멈추고 제게 집중했죠. 행복해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댄스 가수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노래하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 모두 알고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무대에 설 기회가 많았죠. 무대에 서는 게 낯설지 않았어요.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게 익숙했거든요. 첫 공연이 언제였는지, 그때의 떨림이나 감정 같은 게 잘 기억이 안 나요.


제 곁에는 늘 피아노가 있었어요. 피아노 위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곤 했죠. 건반이 눌리면서 이런저런 소리가 났어요. 신기하고 재밌었죠. 그러다 피아노를 칠 줄 알게 된 거예요.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어요.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소리를 따라 쳐보기도 했고요. 어느 날 다른 사람이 연주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흰 건반과 검은 건반을 자유롭게 쓰는 거예요. 그때 저는 흰 건반만 쓸 줄 알았거든요. 어떻게 하는 건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피아노 학원에 다니게 해달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죠.


피아노 학원은 바이엘을 배우다 그만뒀어요. 악보를 보며 연주하는 게 제겐 따분하고 어려운 일이었거든요. 느낌대로 연주하는 게 좋았어요. 악보 바깥에서요. 그게 재밌었어요.


Ⓒ unlook / Photograph 기우


중학교 3학년 때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사람들에게 알려졌어요. 「K팝스타2」가 끝나고 학교에 돌아오니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어 있었죠. 친구들은 한창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어요. 음악은 제게 막연한 꿈이었어요. 생각해보니 음악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더라고요. 그즈음 음악을 제대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음악이 당연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필연적인 무언가가 된 거예요.


오디션 프로그램을 거치며 확실히 피아노 실력이 늘었어요. 그 무렵에 작곡도 시작했고요. 거의 종일 연습실에 있었거든요. 그때 쓴 「파렴치」라는 곡을 나중에 편곡하여 웹드라마 「오피스워치」의 배경음악으로 썼어요. 처음 버전을 들어보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발랄하고 귀여워요. 딱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생각이 녹아 있어요.



TRACK 1

Super Moon


어린 시절부터 앨리샤 키스를 좋아했어요. 처음에는 그가 보컬리스트인 줄만 알았어요. 나중에 싱어송라이터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그 후 곡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에 제 주변에는 전문 작곡가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없었죠. 그래서 일단 마음 가는 대로 곡을 썼어요. 입으로요.


이거 꽤 재밌는데?


그렇게 만든 곡이 「Super Moon」이에요. 그 무렵 팝을 많이 들었는데, 문득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음악이 드물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직접 곡을 써보니까 조금 알겠더라고요. 모국어와 외국어에는 각자 맞는 멜로디가 있다는 걸요.


Ⓒ unlook / Photograph 기우


저는 일상에서 느끼는 여러 감정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어요. 「Super Moon」을 작업하며 그 방법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죠. 그러면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정체성이 점점 강해진 거 같아요. 저는 계속 같은 길을 걷고 있었는데, 확신이 생긴 거죠. ‘이 길이 맞는구나.’ 하는 확신이요.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많지 않아요. 환경과 상황이 바뀌었을 뿐이죠.


저는 계속해서
좋은 음악가가 되기 위해 걷고 있어요.


Ⓒ unlook / Photograph 기우


☑  2016년에 발표한 「까만 얘기」는 이전에 발표한 곡들에 비해 담백하게 표현된 거 같아요. 특히 “나의 까만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라는 부분이 인상 깊었어요. 이 곡을 쓸 때 어떤 시절을 지나고 있었나요?

「까만 얘기」는 영화 「도가니」를 보고 쓴 곡이에요. 장애인 시설에서 벌어진 비리와 범죄에 관한 영화였죠. 그렇다고 이 곡은 누군가를 동정하고 있지는 않아요. 영화 주인공의 상황과 행동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어쩌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말 못 할 일들을 마음속에 품고 사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어요. 살다 보면 말 못 할 때가 있잖아요. 이를테면 너무 힘든 일이 있어도 듣는 이가 불편할까 봐 말하지 못할 때도 있고요. 또 어떤 말들은 오해를 살까 두려워 삭히곤 하죠. 여러 이유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쓴 곡이에요.

어려운 시기를 견디는 데 음악이 도움이 되었다는 걸 정규 앨범을 작업하며 알게 되었어요. 이제까지 제가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인 것처럼 음악을 했다는 사실도요. 사실 모두 제 이야기인데 말이에요.

곡을 설명할 때 누군가의 이야기를 담고 싶다고 말하곤 했어요. 하지만 그런 말은 일종의 연막이었던 거 같아요. 사실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한 건데 말이에요. 요즘 들어 최예근이라는 음악가를 어느 하나의 프레임에 가두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요새는 오히려 괜찮은 프레임이 생겨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해요. 프레임에 갇히고 싶지 않은 이유는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은 거죠.


우리는 가능성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잖아요.


TRACK 2

안녕, 나


「안녕, 나」는 음악가와 곡의 감정의 거리가 가깝다. 최예근은 「안녕, 나」를 작업할 때 슬픈 얘기는 하기 싫었다고 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나는 슬픈 사람은 아닐 거라고 덧붙였다. 슬픔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애썼다고, 되돌아보니 그랬다고 말했다.


이 곡을 들으며 그의 음악 색깔이 점점 또렷해진다고 느꼈다. 다양한 음악을 하고자 하는 음악가의 마음이 전해졌다.


「안녕, 나」는 멜로디를 만들고 가사를 썼는데 록 음악인 거예요. 의도한 건 아니에요.


저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음악을 해요.


Ⓒ unlook / Photograph 기우


음악을 들을 때 한 곡을 오래 듣는 편이에요. 어떤 곡은 반년 동안 계속 듣기도 했어요. 중학교 2학년 때 보니 레이트(Bonnie Raitt)의 「I can make you love me」를 정말 좋아했어요. 그 노래만 계속 들었죠. 다른 가수가 부른 버전도 많더라고요. 거의 1년 동안 그 노래만 들은 거 같아요.


요즘엔 제레미 주커(Jeremy zucker)의 노래를 듣고 있어요. 친구들이 질린다고 할 정도로요. 「어른」을 작업하며 내 안에 블루스가 있고, 록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교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거든요. 교회 음악에 록 장르가 제법 많잖아요.


「어른」의 기타 솔로를 작업할 때 조금이라도 블루지한 분위기로 흐르면 계속 쳐냈어요. 고음을 내지르는 제 모습을 보며 록 스피릿을 발견한 거죠. 이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어요.


Ⓒ unlook / Photograph 기우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했어요. 입학 무렵 「어른」의 라이브 클립이 우연히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어요. 대학에 가기 전까지는 제가 만든 곡을 실연할 기회가 없었어요. 학교에 가서 처음 해본 게 많아요. 제 또래의 연주자들을 만나 함께 실연한 것도 그중 하나죠. 잘하는 친구들과 하니까 너무 재밌었어요.


음원 제작비가 여의치 않을 때였죠. 그래서 밴드를 결성하게 됐어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재미였죠. 함께 음악 하는 게 너무 좋았어요.


「어른」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관여한 첫 번째 작업이에요. 자유롭게 연출할 수 있었죠. 이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얻었어요. ‘나 음악 꽤 하네?’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거든요.



TRACK 3

미안하다는 말


2018년 최예근은 싱글 「미안하다는 말」을 두 가지 버전으로 발매했다.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밴드를 그만두게 됐다. 그는 밴드 시절 굉장히 세심하게 작업들을 연출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만난 김희원과 유진경을 통해 김제휘를 알게 되었고, 그들과 작업실에서 다 같이 먹고 자며 음악에 몰두했다. 그 친구들은 그가 처음 음악적으로 의지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불어넣어준 용기 덕분에 「미안하다는 말」을 발표할 수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의 밴드 버전은 라이브 클립을 위해 작업한 거라고 했다. 하지만 마음에 쏙 들어 음원으로 발매하게 됐다고. 「어른」이 짝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미안하다는 말」은 이별에 관한 노래다.


Ⓒ unlook / Photograph 기우


☑ 크레딧을 보면 공동 작사, 작곡, 편곡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협업하는 걸 선호하는 이유가 있나요?

다른 사람과 대화하면서 영감을 많이 받은 편이에요. 가끔 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는데 돌려 말하고 있구나 하고 느낄 때가 있어요. 그런 마음을 대신 표현해주고 싶어요. 누구에게나 조심스러운 이유나 상황이 있잖아요. 이렇게 말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까 상상하곤 하죠. 그런 감정들을 구체화하여 가사를 쓰고 멜로디를 만들어요.

친구들과 아이디어나 영감을 나누는  즐거워요. 저는 작업을 하며 친구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편이에요. 서로의 작업물을 통해 새로운 작업물이 되기도 하고요.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창작을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해요. 같은 얘기를 해도 사람마다 호흡과 음률이 다르잖아요.  지점을 발견하며 작업하면 술술 풀리기도 해요. 장르라는 것은 도구와 같죠.  음악  주인공이 어떤 곳에 있는지에 따라 음악 색깔이 정해져요.


☑ 다양한 음악가와 함께 작업하는 건 음악적 지평을 넓히는 데도 도움이 될 거 같아요. 장르의 경계 없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사실 제가 어떤 음악을 하는 싱어송라이터인지 잘 모르겠어요. 저는 주제에 맞는 장르를 선택해요. 최예근 하면 R&B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에요. 제가 다른 음악을 해도 R&B처럼 들리니까요.

요새는 힙합 작업을 많이 해요. 저는 작업하는 속도가 빠른 편이에요. 이십 분 만에 멜로디와 가사가 나오기도 해요. 심지어 녹음까지 할 때도 있고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작업이 빨라져요. 물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이후 작업을 오래 해야 하죠.


제게 장르는 도구예요.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인 거죠.


TRACK 4

너만 알아볼 수 있는 의미를 담아서


내 삶을 다해서 모두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너무 오래 걸려도 멀리 돌아가게 돼도 괜찮아요

지친다면 그건 아마 내가 지도를 쥐고 걸으면서도 길을 잃고,
어린 발을 절뚝거리기 때문일 테니까요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어보고,
누군가의 시선으로 목적지를 궁금해하는 일,
그 모든 것들은 노래가 되었고
그 노래가 이제야 조금씩 세상에 얼굴을 내밀게 되었어요

나를 더 지우고 지워서
더 많은 누군가로서 노래하고 싶어요
최예근의 누군가가 되어주어 고맙습니다


2019년에 발표한 EP 앨범 「너만 알아볼 수 있는 의미를 담아서」의 소개 글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면 나를 끊임없이 갱신해야 한다. EP 앨범은 「고릴라」로 시작한다. “어쩌라고 어쩌라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툭 끝나버리는 가사는 의미심장하다. 청춘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가 스무 살에 쓴 곡이다.  

   

Ⓒ unlook / Photograph 기우


수많은 누군가가 되고 싶다는 말은 곡을 많이 쓰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어떤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나 신념을 작업물에 담아내잖아요. 그때 저는 그런 건 아니었던 거 같아요. 예를 들어 영화 만드는 사람들은 영화가 끝나면 또 다른 이야기로 작업을 시작하잖아요. 저도 그런 식으로 음악을 하고 싶었던 거 같아요. 계속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요.


☑ 「고릴라」는 신나는 리듬이 돋보이는 곡이에요. 첫 번째 트랙은 듣는 이를 앨범으로 초대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이 앨범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처음으로 보여주는 곡이기도 하고요. 이 곡에 담긴 의미가 앨범을 듣는 이에게 일종의 이정표가 될 거 같아요.

대학에서 축제라는 걸 처음 경험했을 때 벌어진 일을 담은 곡이에요. 한 학년에 서른 명 정도였는데, 실용음악과 동기들이 신나게 축제를 즐겼어요. 춤추고 노래하다 목이 말라서 잠깐 연습실에 들렀어요. 그런데 한 친구가 연습을 하고 있었죠. 축제가 한창인데 말이에요. 친구에게 같이 나가서 놀자고 했더니 자기가 만든 연습 계획표를 보여주는 거예요. 그걸 꼭 지켜야 한다면서요. 계획표를 보니까 삼사십 분 단위로 연습 계획이 세워져 있었어요. 친구는 어릴 때부터 계속 이렇게 연습해왔다고 했어요.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연습을 하는 거야?” 물었어요. 친구는 단지 여태 해왔고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했어요. 그런 친구를 데리고 춤추러 갔는데 쭈뼛쭈뼛하는 거예요. 「고릴라」는 그 친구가 춤추는 모습을 보고 만든 곡이에요. 그때 친구에게 했던 말들을 가사에 담았고요.


EP 앨범 「너만 알아볼 수 있는 의미를 담아서」는 대학 축제를 즐기는 청춘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앨범의 두 번째 트랙 「춘래불사춘」은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라는 뜻의 고사성어다. 흔히 스무 살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특별한 나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스무 살은 특별하기 위해 애쓰는 때이기도 하다. 그는 스무 살은, 청춘은 특별하지 않다고, 그저 꿈을 좇는 나이라고, 의욕과 무기력을 반복했던 이십 대를 「춘래불사춘」에 담았다고 말했다.


Ⓒ unlook / Photograph 기우


사람들은 스무 살이니까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해요. 특별하다고 하죠. 그래서 오히려 애썼던 것 같아요. 특별해지려고요. 스무 살은 열아홉 살이랑 크게 다른 게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마음을 담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말하는 스무 살은 특별하지만 내가 겪고 있는 스무 살은 특별하지 않다고 말이죠. 꿈을 좇는 나이일 뿐이죠. 특별하다고 하니까 힘을 내서 무언가에 열중하다 보면 종종 무기력에 빠지곤 해요. 일어나고 주저앉고 다시 일어나는 그 마음들을 담았어요.


Tell me I am special


☑ 「넝쿨」은 왈츠 리듬에 느린 템포로 진행되며 앨범의 분위기를 전환하고 있어요.

이 곡을 친구들이 듣고 많이 공감했어요. 그때 ‘내 이야기를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힘든 일을 겪고 쓴 곡이거든요. 「너만 알아볼 수 있는 의미를 담아서」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담은 앨범이에요. 장르로 묶인 게 아니에요. 주제에 맞춰 구성했어요.

처음으로 스트링 작업을 한 곡이기도 해요. 아이유 선배님이 도와주셨어요. 어느 날 스트링 작업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선배님 곡을 녹음할 때 같이 녹음하러 오라고 선뜻 말씀해주셨어요. 감사한 일이죠.

가상 악기의 기술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지만 사람이 연주하는 게 확실히 더 좋다고 생각해요. 사람의 연주에는 감정이 담기니까요.


「넝쿨」을 듣고 있으면 청춘의 온갖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 순간 모르는 것투성이인 청춘. 이 곡은 그의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고 싶은 일만 했던 그는 막연한 불안에 시달렸다. 그 불안 때문에 멈출 수 없었다고 했다. 계속 뛰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달렸다. 조급함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간절함을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불안을 꽁꽁 감추고 겉으로는 여유로운 척했다고 말했다. 마치 다른 사람인 듯 말이다.

   

다만 청춘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아픈 건 아니었어요.


Ⓒ unlook / Photograph 기우


☑ 「누군가」는 원 테이크 데모 버전이에요.

이 곡은 완성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앨범에서 빼려고 했죠. 그런데 이 앨범이 아니면 이 곡을 발표할 수 없겠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앨범의 전체 주제와 맥락에 잘 맞았거든요.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마음으로 작업할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조금 더 신경 써서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그 정도로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더라고요. 그냥 이야기의 크기만큼 딱 작업해서 넣었어요.

활동을 하다 보면 나를 깜빡 잃어버리는 순간이 있어요. 내 모습이 아니라 다른 모습을 쫓을 때가 있어요. 좋아 보이는 모습이요. 그럴 때마다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나를 기억하고 되새기는 것이요.

사실 정규 앨범이 나오기 직전에 많은 기획사에서 제의가 들어왔어요. 그때 앨범을 마무리하고 싶어서 제안들을 거절했거든요. 회사에 들어가면 어느 정도는 타협을 해야 하니까요. 정규 앨범을 내고 나면 내 본연의 모습을 언제든 기억할 수 있을 거 같았어요. ‘아, 내가 이런 걸 하고 싶었지’ 하고요. 나를 지키는 방법으로 정규 앨범 작업을 택한 거예요.

굳이 구분하자면 「안녕, 나」부터 정체성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거 같아요. 그런 생각이 발전해 EP 앨범이 된 거죠. 음악가 최예근의 진짜 활동 시기는 「안녕, 나」 혹은 EP 앨범부터라고 말하고 싶어요.


TRACK 5

갈 곳을 잃어도 어디든 흘러갈 수 있게


정규 앨범은 섭외부터 제작까지 모두 관여했어요. 음악 외적인 부분도 제 손을 다 거쳤죠. 그래서 책임 프로듀서라고 적었어요. 소속사와 함께 어떤 작업을 할 수 있을지, 어떤 부분을 도움받을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제대로 된 앨범 하나는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이 앨범을 작업하며 음악에 대한 마음가짐이 단단해졌죠.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작업했어요. 나를 좀 더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었어요.


이 앨범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최예근이 최예근으로서 모든 걸 다한 앨범이에요.


EP 앨범을 작업할 때는 음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연출했어요. 정규 앨범에서는 많은 부분을 내려놓았어요. 달리 말하면 다른 창작자와 협업하는 재미와 행복을 알게 된 거죠. 음악적으로도 그랬고, 사진이나 영상 같은 외적인 부분도 열어두고 작업했죠. 이를테면 최예근이라는 사람의 뇌가 여러 개가 생긴 셈이죠. 동료들과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었어요. 심지어 그 과정이 매우 의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예요.


Ⓒ unlook / Photograph 기우


☑ 이 앨범의 첫 번째 트랙 「자각몽」에는 설렘과 불안이 공존하고 있는 거 같아요. ‘휘청거리는’ 불안과 ‘맛본 적 없는 세상’을 기대하는 마음이 모두 엿보여요.

 곡에는 정규 앨범을 작업하며 생긴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마음대로 음악을   있어서 설렜어요. 동시에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 하는 의구심도 끊임없이 들었죠. 자각몽이라는 제목에도 설렘과 불안 사이를 오가는 감정이 담겨 있잖아요. 현실에서 오는 의구심을 있는 그대로 풀어내고자 노력했어요.

자각몽 작업하며 제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어요. 곡을 만들며 ‘ 이런 음악 좋아했었지하고 자각하는 순간도 있었죠. 애정이 많이 깃든 곡이에요. 음악적 이상향을  담을  있었다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곡은 최예근의 주제가 같은 곡이죠.


무게감 없이 휘청거리는 하루의 전원을 끄면
눈을 감고선 셋을 세볼까
맛본 적 없는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 「Unbalance」를 들으며 최예근의 음악적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고 느꼈어요. 일렉트로닉 장르에 맞춰 방향에 맞는 비트 소스를 선택하거나, 리듬 샘플을 자유롭게 활용한 것들이 특히 좋았어요.

이 곡에는 제가 굉장히 불안정했을 때의 모습이 담겨 있어요. 밤낮이 바뀐 상태에서 나온 곡이거든요. 당시 저는 아주 단단한 사람이었어요. 단단하다는 게 꼭 좋은 의미는 아니에요. 약간만 잘못되면 펑! 하고 터지는 상태였던 거죠. 그 불안함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Unbalance」는 라이브 무대에서 자주 부른 노래예요. 공연장에서 부르면 정말 재밌어요. 밴드 사운드가 너무 좋거든요. 한편으로는 그것을 돌파하고 싶었어요. 마치 게임 음악처럼 정황을 듣는 이에게 구체적으로 전달하고 싶었죠. 누군가 쫓아오고 도망가는 긴박한 상황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다양한 악기를 사용하여 다채롭게 음악을 구성했죠. 밴드 사운드의 록 음악을 돌파하고 싶은 마음이 이 곡에서 실현된 셈이에요.


Ⓒ unlook / Photograph 기우


그는 세 번째 트랙 「허수아비」가 자신을 가장 잘 대변하는 곡이라고 했다. “부지런하게 포기하는 나를 보면 엄청나게 성실한 도전가인 줄 알겠다” 하는 소개는 얼핏 보면 알쏭달쏭하다. 그는 정규 앨범을 작업하며 때때로 사람들에게 멋있게 보이고 싶었다고 했다.


Cause I’m not awesome
Damn not be cool
You know I'm diligent
But I’ve done enough to do it my self


「허수아비」는 멋있어 보이고 싶어서 노력하는 나에 대한 노래에요 하지만 멋있으려면 노력하는 모습이 들키면 안 될 것 같았어요. 그 모습을 「허수아비」에 솔직하게 담고 싶었어요.



☑ 「고릴라」 「까만 얘기」 「Super Moon」 등 이전에 발표했던 음원을 편곡해서 앨범에 실었어요. 이전에 선보인 곡들을 다시 꺼내는 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 거 같아요.

정규 앨범에 담긴 곡들은 무대에서 공연할 때 버전이 많아요. 이전에 발표했던 곡들은 정규 앨범을 고려하고 작업한 건 아니에요. 오히려 당시 했던 생각이나 상황들이 더 많이 들어가 있죠. 우연히 정규 앨범의 세계와 어울리는 것들이 있었고, 앨범에 맞춰 새로 만들어 수록하게 되었죠.

「고릴라」는 정규 앨범에서 꼭 필요한 서사였죠. 새로 곡을 만드는 것도 고려했는데 이 곡이 너무 찰떡같이 묻는 거예요. 정규 앨범에 수록된 「고릴라」는 페이퍼 브릭과 작업한 곡이에요. 이미 공연장에서는 몇 번 부른 적도 있었죠.

「까만 얘기」는 내용이 달라져요. 곡의 화자가 다르거든요. 이전에는 영화의 한 장면이 보여야 했어요. 화자보다는 장면이 연상될 수 있게 작업했죠. 반면에 정규 앨범의 「까만 얘기」는 화자가 돋보여야 했어요. 그래서 전주 없이 바로 노래가 시작해요.


☑ 「탓」과 「Super Moon」을 들으며 단지 노래를 잘 부른다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음악에 담긴 서사를 목소리로 해석하는 능력이 누구보다도 탁월하다고 느꼈고요.

노래할 때 곡의 화자가 되려고 노력해요. 화자의 성격을 정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상상하죠. 만약 소심한 사람이라면 직접적으로 말은 하지 않고 돌려서 말하겠죠? 그런 행동들을 상상하며 노래해요. 말 그대로 노래 속 주인공이 되는 거죠. ‘내가 나를 비워서 또 다른 누군가가 된다’라고 했잖아요. 그 말이 딱 맞는 거 같아요.

모든 것을 계산해서 부르지는 않아요. 어느 정도는 감각적으로 소화하는 거 같아요. 활동 초기에는 악보에 표시를 하며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도 했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감각적으로 감정을 캐치하게 된 거 같아요. 보통 보컬 작업을 할 때는 지시 없이 스스로 해요. 정규 앨범도 다 작업실에서 녹음한 거죠.


더는 다른 사람 이야기 뒤에
숨지 않을 거예요.


LAST TRACK

Better Rush


싱글 「Better Rush」는 최예근의 어릴 적 꿈이 실현된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곡에서 그는 노래하고 춤춘다. 2013년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음원을 발표했다.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아직 많다고 하는 그는 음악이 너무 좋다고 했다. 행복하다고 했다. 최예근은 달린다. 조급하지 않게.


기억하고 싶은 감정이 생기면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어둬요. 정돈되지 않은 채로요. 곡을 쓸 때마다 그것들을 들춰보죠. 그러면서 '그때의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하고 생각해봐요.


요새는 음악의 첫인상으로 곡을 완성하는 경우가 많아요. 작사와 작곡을 거의 동시에 해요. 가이드 녹음할 때 가사가 없어도 주제에 맞게 녹음해서 보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음악을 멈추지 않게 하는 동력은 동료들이에요. 음악 작업을 하지 않는 날에도 작업실에 모여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놀곤 하죠. 그 모든 순간이 영감이 돼요. 그러다 작업을 시작하면 의견을 주고받으며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집중하죠. 저와 함께 음악을 하는 동료들이 지금보다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며 작업하는 게 제 바람이에요.


Ⓒ unlook / Photograph 기우


음악가로서 정체성이 가장 명확해지는 순간은 무대에 있을 때에요. 재밌게 작업한 곡들을 관객들에게 들려주는 시간이죠. 노래를 시작하면 사람들이 제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걸 느낄 수 있어요. 동시에 제 귀에도 그 음악이 들리고요. 그 순간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색 물감이 펑펑 터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차분한 곡을 부를 때는 신나는 마음을 조금 감추기도 해요. 관객이 음악에 몰입해야 하니까요. 무대 위에서 감정 조절을 하죠. 제 음악을 잘 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요. 그 모습을 보며 관객들이 좋아해줄 때 음악가로서 정체성이 또렷해져요.


무대를 잘한다는 자신감이 있어요.
제게 음악적 욕망을 묻는다면
그건 무대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에요.


출처: YEGNY 최예근


*이 글의 전부 또는 일부 내용을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unlook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 unlook,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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