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의 음악> 전유동 인터뷰
가을 아침을 느지막이 깨우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는 매일 오전 아홉 시에서 열한 시까지 방송된다. 전 산울림의 멤버이자 현재 김창완밴드의 리더 김창완이 2000년부터 진행을 맡고 있다. 그가 사십 대부터 시작하여 육십 대가 될 때까지 마이크를 잡고 있는 이 라디오 프로그램은 국내 어떤 방송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스펙트럼이 넓다. 노래 속 숨은 이야기를 소개하는 코너, ‘제목 없음’의 오늘 주제는 ‘작은 것들을 눈여겨보게 하는 노래’다. 임희윤 기자가 전유동의 「이끼」가 수록된 앨범 「관찰자로서의 숲」을 소개하자 DJ 김창완이 말한다.
핑크 플로이드 같은 뮤지션만 컨셉 앨범을 만드는 게 아니고,
이 앨범이야말로 진정한 컨셉 앨범이네요.
리스너에게 “사사 떨리는” 울림을 전하는 싱어송라이터 전유동은 2015년, 클라우즈 블록(Cloud’s Block)으로 데뷔했다. 아무도 안 할 만한, 그럴듯한 활동명을 짓고 싶었던 그는 클라우즈 블록이라는 이름으로 네 장의 싱글과 두 개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표했다.
「주안」은 컴필레이션 앨범 「서울, 변두리」에 수록된 곡이다. 인천에서 서울을 오가며 음악 활동을 하던 그가 늦은 밤 전철을 타고 가며 느꼈던 생각을 그대로 옮겼다. 뮤직비디오는 주안역에서 양주행 열차를 기다리며 시작된다. 김지녀 시인의 시집 <시소의 감정>을 읽고 있는 전유동과 열차 속 사람들, 그리고 “타닥이는 마음”이 교차된다.
나는 지금 잘 나아가고 있는지, 나의 제자리는 어디인지 묻는 모습이 「주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수없이 많은 시간 전철을 타며 나와 같은 곳에서 내리는 이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유동의 가사는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한 울림을 준다. 클라우즈 블록으로 활동하던 때부터 그의 음악적 목표 중 하나는 시집 같은 가사집을 묶는 거였다. 그 뜻을 정규 앨범 「관찰자로서의 숲」으로 이룬 셈이다. 종이책의 형식으로 음악에 관한 사려 깊은 생각과 가사들이 담긴 아름다운 앨범이다.
전유동의 음악은 너무 가까이 있어서 돌보지 못하는 우리의 감정과 우리의 자연을 노래한다. 소수자의 삶에 관심이 많고, 겉돌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를 만든다. 「관찰자로서의 숲」 뒤편에는 전유동이 음악을 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문장이 적혀 있다.
누군가 내 노래를 들을 때 내가 그곳에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어렸을 때 미술 학원에 다녔어요. 생각보다 재능이 있더라고요. 상을 정말 많이 탔어요.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 김천예술고등학교에서 주최한 미술 대회에서 입상했어요. 상을 받으면 그 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전형이 있었죠. 그때 우리 가족은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에 살고 있었어요. 김천시까지는 차로 오십 분 정도 걸렸어요. 돈도 많이 들고요. 처음에 아버지는 반대했어요. 그래도 저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죠. 살면서 처음으로 스스로 일궈낸 업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매일 밤 아홉 시까지 그림을 그렸어요. 야간 실습을 마친 뒤 버스를 타고 집 앞 정류장에 도착하면 열 시 삼십 분이 넘었어요. 어머니는 항상 버스 정류장 앞으로 마중 나오셨죠. 그때 저는 미술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어요. 오래전부터 체계적으로 미술을 공부해 온 친구들과 경쟁할 엄두가 나지 않았죠. 또 돈도 많이 드니까, 집안에 폐를 끼친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학교에 입학한 지 두 달 만에 그만두기로 마음먹고 아버지께 “인문계 고등학교로 전학 가겠다.” 말씀드렸죠. 아버지는 돈 때문에 관두는 거라면 계속 다니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뒤였죠. 그때였어요.
나는 나에게 실패자 꼬리표를 달아버렸어요.
미술을 그만둔 뒤에는 가톨릭 신부가 되려고 했어요. 스스로 결정한 건 아니고, 주변의 권유가 있었죠. 성당에 다니고 있었는데 집안사람들이 신부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어요. 어릴 때부터 할머니도 그러셨고, 주변 사람들에게 신부를 해보라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나쁘지 않겠다 싶었죠. 미술의 실패로 한 번 실망을 안겨드렸으니까. 그걸 만회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세계 각국에 수도원이 하나씩 있는데, 한국에는 왜관읍에 있어요.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에 수사로 들어가려고 준비를 했죠. 가끔 체험 활동으로 수사님들과 함께 생활도 했어요. 외부인 출입 금지 구역을 드나들 정도였죠. 성당 사람들은 제가 신부가 될 거라는 걸 의심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대학 면접을 앞두고 마음이 흔들리더라고요. 그 길은 제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 아니었으니까요. 오래 고민하다 면접 당일에 제 생각을 담당 신부님께 말씀드렸어요. 주변 사람들이 많이 실망했죠. 주변의 온도가 차가워졌어요. 미술을 관둘 때가 생각이 나더라고요.
또 실패한 걸까?
그때 저를 위로해 준 게 음악이에요. 그래서 음악을 하기로 결심했죠. 부모님께 음악을 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또 돈 안 되는 거 하려고 한다며 반대하셨죠. 작곡과에 들어가려면 피아노 실기 시험을 치러야 하더라고요. 그때까지 피아노를 한 번도 쳐본 적이 없었어요. 한참 전부터 입시를 위해 야간 실습을 하던 예고 친구들이 생각났죠. ‘지금 시작한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겠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하고 생각했죠. 그래서 피아노를 포기했어요. 내가 이길 수 있는 싸움은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그 돌파구가 가사였죠. 노랫말에 집중하기로 한 거죠.
노랫말을 잘 쓰려고 국어국문학과에 갔어요. 자기소개서에도 작사가가 되고 싶다고 적었죠. 대학 사람들은 저를 신기하게 바라봤어요. 시와 소설을 얘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음악을 한다고 맨날 기타를 메고 다니니까, 별종이라고 생각했겠죠. 1학년 때는 대학 공부가 음악에 도움이 될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어요. 지금 돌아보니 음악 활동에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시 강의를 하는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분 수업은 다 들었어요. 수업을 들으며 기민하고 예민하게 사물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죠. 지금도 그 교수님은 종종 찾아뵙고 있어요. 앨범을 들고서요.
저는 겉돌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계속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린 시절 가정교육을 엄하게 받았거든요. 많이 맞았죠. 그런 상처 때문인지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종종 불편함을 느껴요. 어떤 관계나 무리에서 겉돌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저처럼 어딘가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당신에게는 당신만의 매력이 있어요.”
2020년 8월 30일, 벨로주 홍대에서 「관찰자로서의 숲」 쇼케이스가 열렸다. 쇼케이스 소개말에서 전유동은 말한다.
음악을 통해 나는 무엇을 얘기하고 싶을까?
음악에 담기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쇼케이스 무대 전까지 음악가라는 정체성에 대해 의심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이전 공연들은 굉장히 소모적이었다. 커버 곡을 불러야 하거나, 음악에 집중하지 않는 관객들과 마주해야 했다. 어떤 행사는 그를 공연과 공연 사이를 메우는 그저 그런 음악가라고 느끼게 했다. 돈이라도 받았다면 버텨볼 만했을 텐데 한 푼도 받지 못하는 공연이 허다했다. 단지 나를 알려야 해서 하는 공연들이었다. 음악가로서 공연을 했다고 느끼는 무대는 별로 없었다.
벨로주 홍대는 그에게 꿈의 무대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객석이 제한되었지만, 온전히 전유동의 음악을 들으러 관객이 입장했다. 무대에 선 그는 비로소 음악가가 되었다고 느꼈다. 「무당벌레」는 2019년에 클라우즈 블록으로 활동한 시기에 발표한 곡이자, 2020년에 재발표한 싱글이다. 같은 이름의 두 곡을 들어보면, 장르와 이미지, 음악 스타일에 모두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 재발표한 「무당벌레」를 듣고 적지 않게 놀랐어요. 이전의 곡은 포크에 가까웠는데, 새로운 활동명으로 발표한 첫 곡은 보다 브리티시 록에 가까웠거든요. 클라우즈 블록에서 전유동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새로운 다짐 같은 게 있었을 것 같은데요.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다.’ ‘나를 던져보고 싶다.’ 하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가진 한계를 뛰어넘고 싶었어요. 활동명을 바꾼다고 내 음악의 본질이 변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도 있었고요. 혼자 활동을 할 땐 어쿠스틱 기타로 곡을 만들고 거대한 편곡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어쿠스틱 기타로 작업한 곡이 그대로 곡으로 완성되고 편곡되어 발매됐어요. 포크의 성격이 강할 수밖에 없었죠.
「관찰자로서의 숲」을 작업할 때 힘든 적도 많았지만 ‘나도 이런 걸 해보는구나.’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두근거렸던 순간이 많았어요. 특별한 다짐보다는 하루하루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어요.
☑ 「무당벌레」를 구성하는 형식 역시 놀라웠어요. 대중음악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코러스나 브릿지가 없거든요. 보컬은 벌스만 채우고, 코러스에 해당하는 부분은 연주로 채워져 있어요. 그 마디 수도 독특하고요. 브릿지가 나와야 할 부분에선 오히려 앞의 연주를 반복하다가 다시 벌스로 돌아옵니다. 이렇게 한 곡의 구성과 형식을 색다르게 한 이유가 있을까요?
「무당벌레」의 키워드는 ‘기도’예요. 훗날 미래의 내가 ‘이제 마지막이야.’ 하고 되뇔 때 “조금만 더 앞으로 나아가자.” 하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곡을 썼어요. “끝이 아닐 거야.”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거야.” 미래의 나에게, 그리고 제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어요. 그런 생각으로 미사곡처럼 만들자는 생각을 했고, 가톨릭 성가의 구조를 일부분 가져왔어요. 처음에는 4절까지 있는 짧은 구조의 곡을 만드는 게 의도였지만 완성된 곡을 들었을 땐 처음 의도는 사라지고 하나의 곡이 탄생했죠. 간주를 작업할 땐 제가 느끼는 호흡과 감정을 듣는 이가 느낄 수 있게 공을 많이 들였어요.
☑ 코러스 부분에서, 드럼의 스네어가 당기듯이, 엇박으로 찍혀 있는 것도 흥미로운데요. 곡 마지막 부분에서 보컬의 뉘앙스를 따라 하듯이 연주된 드럼 역시 그 합이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보컬을 먼저 녹음하고 드럼 녹음이 진행되었나요?
정해진 리듬으로 반복하지 않고 몇 박자 줄이면서 제가 곡 안에서 느끼는 호흡을 그대로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 지점이 컸죠. 곡을 꼬아서 어렵게 만들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어요.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게 되었고 음악적인 희열을 느꼈어요. 그게 이 음악 속에 있는 나의 호흡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작업하다 보면 음악적 희열을 느낄 때가 종종 있어요. 녹음을 위해 악보에 곡을 옮기는 과정에서 변박이나 마디가 추가되는 것을 알아차리죠. 저는 음악적 지식이나 감각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에요. 「무당벌레」의 경우 박자를 세어보니 8분의 9박으로 변박이 되는 마디가 있었어요. 곡 마지막 부분은 프로듀서의 디렉팅으로 드럼을 먼저 녹음한 뒤 보컬을 녹음했어요. 리듬 악기를 먼저 녹음한 거죠. 보컬 녹음을 할 때 애를 먹었어요. 더블링을 할 땐 정말 오기로 해냈죠. 제가 선으로 그어놓은 한계를 뛰어넘고 팔랑 날아간 거죠.
☑ 전유동 음악의 전체적인 제작 방식이 궁금해요.
가사를 먼저 쓰고 반주와 멜로디를 작업해요. 저는 음악이 그리는 장면과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듣는 이마다 각기 다른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도록 그 몫을 남겨두는 게 좋거든요. 주제를 정하고 곡을 쓰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그럴 땐 작업이 더딘 편이에요. 정규 앨범 「관찰자로서의 숲」은 수록곡들의 편곡이 어느 정도 되어 있고 데모로 만들어진 곡들도 많았어요. 「인천의 포크」 컴필레이션 앨범에 참여하면서 틈틈이 앨범의 구성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어요. 앨범 제목도 이미 정한 뒤였죠.
정규 앨범 「관찰자로서의 숲」이 어느 정도 구성되었을 때 그는 단편선에게 프로듀싱을 부탁했다. 단편선은 2006년 1인 포크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2013년에 밴드 ‘단편선과 선원들’을 결성하여 다양하고 실험적인 음악을 선보였다. “아방가르드와 팝이 뒤섞인 동양적인 사운드와 한국의 옛 가요에 기반한 특유의 발성”이 특징이며 제12회 한국대중음악상 록 음반 부분을 수상하는 등 이름을 알렸다. 2019년에는 독립 프로덕션 ‘오소리웍스’를 열었다.
단편선은 전유동의 데모 앨범을 오랜 시간 꼼꼼히 들어보았다고 한다. 편곡을 위해 전유동과 만난 자리에서 대부분의 곡을 악보도 없이 연주할 정도였다. 단편선의 지휘 아래 정규 앨범의 방향이 정해졌다.
그전까지 전유동은 혼자 음악을 해왔다고 했다. 그 때문에 세션을 섭외하고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는 일이 생소했다. 그와 단편선은 연주자에게 디테일을 요구하기보다는 정규 앨범에 담길 ‘음악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세션으로 참여한 박재준(드럼), 송현우(베이스), 복다진(건반), 파제(일렉기타) 등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음악으로 대화했다.
전유동은 앨범 제작에 참여하는 프로듀서, 엔지니어, 세션 등이 각자의 예술적 감수성과 가치관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게 했다. 서로의 스타일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 그것이 전유동이 다른 사람과 관계 맺고 함께 일하는 방식이다. 「관찰자로서의 숲」은 다양한 사람들의 상상력이 모여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멋진 음반이 되었다.
☑ 음악 활동을 계속하게 하는 동력이 뭔가요?
예전에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음악을 했어요. ‘이렇게 곡을 만들면 사람들이 좋아하겠지?’ 뭐 그런 생각이었죠. 가사에 멋진 말들도 많이 넣었고요. 지금은 나 자신을 포장하지 않고, 순수하게 드러내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작곡할 때 느낀 감정이나 생각이 사람들에게 온전히 전달될까?’ ‘나는 얼마나 진정성 있게 작업하고 있을까?’ 하는 질문을 하죠. 음악에 안 좋은 모습이나 빈틈을 가리기 위해 넣어둔 요소나 표현이 있는가 스스로 검열을 하기도 하고요. 온전히 내 모습을 드러낸 음악만이 결국 전유동의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나를 위로하려고 쓴 음악이 사람들을 위로하는 모습을 자주 봐요. 그런 모습 때문에 있는 그대로 나를 잘 담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느껴요.
듣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더욱더 책임감을 가지며 노래하고 싶어요.
2015년부터 무대에 선 전유동이 스스로 음악가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때는 2020년부터다. 음악가가 음악가이기 위해서는 듣는 이가 필요하다. 무대에 선 전유동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는 비로소 음악가가 되었다. 「관찰자로서의 숲」을 발매하고 네이버 온스테이지에 출연하는 등 활동이 늘었다. 매주 일요일 밤 열두 시에는 인디음악방송 「랏도의 밴드 뮤직」에서 「쉬어가는 전유동의 철새도래지」를 진행하고 있다.
눈에 띄게 듣는 사람이 늘었다고 말하는 그는 함부로 가사를 쓰지 않으려고 늘 노력한다. 「무당벌레」의 가사 중에 본래 “많은 이의 숨을 뚫고 팔랑 날아가지”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뉘앙스가 있어서 가사를 고쳐 썼다.
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땐 한 번 잘못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아그리파 석고상을 그리다 구도가 어긋나면 한 부분만 수정할 수 없는 것처럼. 미술을 공부할 때 그는 수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 큰 절망감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그런데 미디(Musical Instrument Digital Interface)로 작업할 때는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자유롭게 수정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전유동의 작업 방식이 미술 작업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그림을 그릴 때처럼 모두 지우고 다시 시작한다고 했다.
수정이 가능하다는 사실, 그 가능성이 작업할 때 제게 큰 힘이 되어줘요.
☑ 1번 트랙 「참새는 귀여워」는 스튜디오가 아닌 인천대공원에서 녹음했다고 들었어요. 마치 꾸밈없는 전유동의 모습으로 앨범의 시작을 여는 것 같아요. 마치 이렇게 말하면서요. ‘나는 참새를 보면 귀엽다고 느끼는 사람입니다. 내 마음에선 참새가 이런 멜로디로 소리 냅니다.’
참새, 진짜 귀엽지 않나요? 내가 보고 생각하는 참새의 이미지를 음악에 오롯이 담고 싶었어요. 울음소리, 날갯짓하고 총총총 뛰어가는 모습들을 애정을 쏟아 묘사했죠. 참새의 다양한 모습을 짧은 음악 속에 담을 수 있었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해요. 작은 참새들을 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치는 사람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곡이에요.
☑ 앨범에서 세션이 참여하지 않는 두 곡 중 하나죠?
인천대공원에서 녹음했어요. 정규 앨범을 홍보할 방법을 고민했죠. 야외 녹음을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무엇보다 저는 진정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참새 소리를 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공원에 간 건 정말 힘든 일이었지만 보람이 있었죠. 야외 녹음한 기타 선율 위로 다른 악기들을 넣기란 어려운 일이었어요. 다른 악기들과 함께 야외 녹음을 했다면 모를까. 프로듀서가 데모를 듣고 이대로 발표해도 좋다고 해서 기분이 좋았어요.
☑ 인디씬의 ‘새 박사’로 불릴 정도로 새를 좋아하잖아요. 이번 앨범에는 「참새는 귀여워」 말고도 「그 뻐꾸기」 「미네르바의 올빼미」 「따오기(36Y)」 등 새가 등장하는 곡이 많이 보이네요.
새가 날아가는 모습이나 울음소리를 들으면 바로 무슨 새인지 아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에요. 새를 많이 좋아할 뿐이죠. 여유가 생기면 탐조를 하고 싶고, 새에 관한 노래를 더 만들어보고 싶어요. 더 많은 사람이 새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요.
제 앨범을 들은 사람이라면 이제 검은등뻐꾸기 울음소리는 알겠죠? 우리 곁에 있는 새에게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것, 그게 제가 음악을 만들며 지구에 공헌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너무 ‘새’라는 컨셉에 매몰되는 건 싫어요. 그래서 새 박사보다 애조가라는 별명이 더 좋아요.
전유동은 동식물과 교감할 때 더 극적인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다른 생물에 감정을 이입하면 더 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이어서 그는 「하울링」이라는 곡에 관해 설명했다. 늑대는 혼자서 하울링을 할 수 없다. 하울링은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여러 마리의 늑대가 계속 우는 것인데, 혼자서 하울링을 하면 세력이 없다는 걸 다른 동물에게 알리는 꼴이 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늑대는 절대 혼자서는 하울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 이야기를 통해 소수자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하울링」에서 소수자가 모여 군집을 이루는 순간을 하울링에 빗대서 표현했다. 하울링을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무리에서 이탈한 동료에게 위치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가 ‘당신과 함께할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라는 마음으로 음악 작업을 하는 것처럼.
☑ 「이끼」는 전유동이라는 뮤지션이 얼마나 디테일한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는지 느껴졌던 곡이에요. 노래를 들으며 따라 부르다 보면 예상과 다르게 전개되는 멜로디가 많았는데, 어떤 방식으로 멜로디 라인을 구성했나요?
마음이 가는 대로 만들어요. 코드의 9음*이나 6음을 썼어요. 그래서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할 때 음이 많이 흔들리죠.
제가 생각하는 “마음이 가는 대로”란 노랫말에서 상상되는 이미지와 곡의 흐름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예요. 그러다 보니 반주를 만들고 나면 코드와 맞지 않은 음들이 있어서 수정을 많이 해야 하는 편이죠.
*화음의 구성음 가운데 9도에 해당하는 음.
봄이 와서 꽃들 노랗게 피어나면
나도 노랗게 웃을 수 있을까
나는 너를 지우기 위해 살았을까
그게 힘들어서 난 노랗게
부서지나 봐
☑ 특히 코러스 부분에서 달라지는 피아노 코드의 변화가 마치 “부서지나 봐”라는 가사를 정말 돋보이게 해주는 것처럼 들렸어요. 이 부분 역시 ‘마음 가는 대로’ 작업한 부분일까요?
사라지는 것을 받아들이고 노랗게 말라가는 이끼의 모습과 디미니시 코드*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디미니시 코드는 슬프고, 무섭고, 오묘한 느낌을 자아내거든요. 소멸을 담담하게 맞는 이끼의 모습과 잘 맞지 않나요? 프로듀서도 이 부분을 좋아해서 한 프레이즈로 끝나던 것을 한 번 더 반복했어요.
*Diminished code: 단3도와 감5도로 이루어진 코드.
☑ 「이끼」 말고 다른 곡에서도 알게 모르게 변화하는 음악적 장치를 숨겨놓았을 것 같아요. 혹시 리스너가 알아차리지 못해서 아쉬웠던 곡이 있나요?
「둥글게 굴러가는 네모난 나」라는 곡은 송폼* 중간중간마다 박자가 바뀌어요. 4분의 5박자에서 8분의 6박자로, 또 4분의 4박자로, 다시 8분의 6박자로 계속 바뀌죠.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아쉽지는 않아요. 듣는 이가 몰라야 더 뿌듯한 것도 있거든요. 둥글게 굴러가는 모습을 표현하려다 보니 박자를 이렇게 짜게 됐는데 잘 표현된 것 같아서 좋아하는 곡이에요.
*Song form: 인트로, 벌스, 코러스 등으로 이루어진 곡의 형식.
전유동은 특별나지 않지만 대체 불가능한 음악가이고 싶다고 했다. 엄청난 아티스트가 되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잘하는 것 같진 않은데, 따라 하긴 어려워.’ 이런 인상을 주는 음악가였으면 한다고. 말하자면 대단한 사람인 동시에 사람들에게서 멀어지지 않는 음악가인 셈이다.
그는 자신이 듣는 모든 음악에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독특한 음악 세계를 가진 싱어송라이터로 평가받는 토쿠마루 슈고를 닮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토쿠마루 슈고는 자기 방에 쌓인 수백 개의 악기로 곡을 만든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토쿠마루 슈고처럼 전유동이 세계 무대에 진출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전유동은 자신을 “너무 가까이 있어서 돌보지 못하는 우리의 감정과 자연을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음악가가 되기 전까지 그의 인생은 실패로 가득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었고 노래했다.
나는 그 뻐꾸기와 나무들과 바람들과 사람들을 열렬히 사랑해야겠다.
나는 그 뻐꾸기와 나무들과 바람들과 사람들을 열렬히 사랑해야겠다
☑ 「그 뻐꾸기」는 처음 들었을 때부터 웃음이 나왔던, 아주 재미있는 곡이에요. 곡에 나오는 검은등뻐꾸기를 꼭 만나고 싶다는 음악가의 마음이 온몸으로 느껴져요. 검은등뻐꾸기의 울음소리를 어디선가 실제로 들어본 적이 있나요?
‘옥천지용창작가요제’에 나간 적이 있어요. 그때 정지용 시인의 시로 곡을 만들었죠. 누나 결혼식 다음 날이었는데,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옥천에 갔어요. 공연 리허설 한참 전에 도착해서 안개 자욱한 주위 풍경을 감상하다가 새 울음소리를 들었어요. 누구의 울음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죠. 얼마나 알고 싶었는지 몰라요. 공간을 청명하게 울리는 소리였어요. 그 후 어느 유튜브 채널을 통해 그 주인공을 알게 됐어요. 얼마 전 집 근처에서도 그 소리를 들은 적이 있죠. 무척 반가웠어요.
바다3
정지용
외로운 마음이
한종일 두고
바다를 불러-
바다 우로
밤이
걸어 온다.
☑ 「참새는 귀여워」처럼 세션이 참여하지 않은 곡인 것 같은데.
앨범 제작이 한창일 때 만든 곡이에요. 옥천에서 들은 울음소리가 검은등뻐꾸기의 것이라는 걸 알고 바로 만들었죠. 이름을 알게 돼서 기분이 정말 좋았거든요. 이미 정규 앨범의 셋리스트도 어느 정도 완성되어서 세션과 함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들뜬 기분을 안고 홈레코딩으로 데모를 녹음했죠. 그런 기분 좋은 감정들이 곡의 완성에 지대한 영향을 줬을 거라 믿어요. 정말 순식간에 만들어서 지금 생각해도 신기해요. 프로듀서가 제안한 레퍼런스를 들으며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비트를 만들고 있었죠.
☑ 808 기반의 드럼 샘플 소리와 무그(Moog) 신스 베이스 소리 등 각 샘플과 소스가 놀랍도록 잘 어울리게 느껴져요. 도대체 어떻게 작업을 한 건가요?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편집하고 곡에 녹여내는 작업을 처음 해봤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한 건지 잘 기억이 안 나요. 제가 가지고 있던 사운드 샘플로 작업을 했어요. 세션 없이도 만들 수가 있었고 그게 이 곡에 제일 잘 어울리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죠. 무그가 없어서 무그 신스 가상 악기를 트라이얼 버전으로 설치하여 작업했어요.
☑ 곡 마지막에 등장하는 내레이션도 인상 깊어요.
얘가 그러면, 울지 않으면 알 수가 없네.
얘는 노래를 혼자 다르게 하잖아.
이렇게.
그다음에 검은등뻐꾸기 울음소리를 흉내 내면서 끝나는데요.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검은등뻐꾸기의 울음소리를 암시하는 멜로디가 계속 중첩되어 있어서 마지막 부분에서 마침내 그 소리를 듣게 됐을 때 아주 익숙하게 느껴져요.
검은등뻐꾸기의 울음소리를 잊지 않도록 의도된 장치예요. 계속 들으면 정들잖아요. 마지막에 울음소리를 따라 하지 않았다면 반복되는 멜로디가 검은등뻐꾸기의 울음소리인지 모르고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그 뻐꾸기」의 모티브가 자연으로부터 왔다는 메시지도 전하고 싶었죠. 정규 앨범 「관찰자로서의 숲」의 컨셉과 취지에 잘 맞겠다고 생각했어요.
☑ 사투리 억양이 곡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게 전유동 음악의 또 다른 매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마치 영국 밴드 음악에서 출신 지역마다 각기 다른 억양과 단어를 쓰는 것처럼요.
아무리 서울말을 쓰고 싶어 한들 살아온 세월이 있기에 완벽하게 구사할 수 없어요. 제 말씨가 서울 말씨와 대구 말씨 그 중간에 있다고 생각해요. 서울에서는 제 말씨를 보고 사투리라고 하고, 대구에 가면 서울말을 쓴다고 그래요. 말씨가 나의 정체성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해서 한 번에 녹음한 거예요. 「참새는 귀여워」와 같이 진정성 있게요. 저는 제 말씨를 굳이 감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부끄럽지도 않고요.
전유동은 ‘둘러보는 것’을 삶의 중요한 가치로 꼽는다. 끊임없이 주위를 둘러보고 이해하려는 마음은 전유동 음악의 원동력이다. 그가 타고난 관찰자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에게 ‘진정성’이란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왜 이렇게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할까?’ ‘왜 이렇게 부족한 점이 많을까?’ ‘그때 왜 사과하지 못했을까?’ 이러한 고민은 잘못을 고백하고 인정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스스로를 방어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라 부끄럽고 못난 모습까지 끌어안고 더 나은 나로 나아가는 것. 이러한 삶의 태도는 마치 꾸미지 않은, 솔직한 고해성사 같다.
☑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앨범 전체에서 악기가 가장 많이 사용된 트랙이에요. 이 곡을 지하철에서 들었을 때,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다른 트랙에 비해 뒤로 빠져 있는 듯한 악기 밸런스와 전체적인 음압 때문에요. 그렇게 프로듀싱한 이유가 있을까요?
녹음할 때부터 곡의 분위기라든가 의도를 프로듀서와 레코딩, 믹싱 엔지니어를 맡은 천학주(머쉬룸 레코딩 스튜디오) 님과 충분히 소통했어요. 가장 욕심이 나는 곡이었지만 제가 나서기보다는 프로듀서와 엔지니어에게 모든 것을 맡기기로 했어요. 사운드적인 측면에서는 제 의도보다는 엔지니어의 의도와 생각이 많이 담겼을 거라고 생각해요.
☑ 크고 좋은 음압을 얻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부분들도 있는데, 생소한 악기들의 소리를 고요함 가운데 제대로 전달하려는 노력이 느껴져서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요즘 같은 시대에 참 고마운 트랙이라고 생각했어요. 전유동이 음악을 하며 꼭 지키고 싶은 것과 포기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포기해도 되는 것은 장르적인 정체성이라고 생각해요. 장르가 나의 정체성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록 사운드로 앨범을 발표했는데 「관찰자로서의 숲」을 모두 포크라고 말했어요. 음악적인 접근이 아니라 정서적인 접근으로 나의 음악을 바라본 것이 아닐까 유추해 봤어요. 장르는 아주 뚜렷하지 않은 이상 듣는 이의 몫이라 생각해요.
장르를 규정하는 것도 저는 잘 모르겠어요. 만약 제가 더 유명해져서 다른 이들이 내 음악을 두고 ‘록이다.’ ‘포크다.’ 논쟁이 오가면 저는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구경이나 할래요.
소위 ‘인디 음악’이라고 하는 분류도 정서적 접근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고요. 음악의 장르를 나누는데 자본의 유무로 기준을 나누는 것도 뭔가 아이러니해요. 소자본으로 창작을 해내는 이들의 태도와 기발함이 인디를 만드는 것이니까요. 전 장르를 포기하겠어요. 그렇다고 해서 제 음악의 정체성이 옅어지진 않아요.
과거를 되돌아보며,
음악가 전유동과 사람 전유동을 한꺼번에 이야기하는 자리였어요.
아, 「75데시벨」은 참매미 울음소리로 만들었어요.
저는 용기가 없고 때론 비겁하고 철없이 살아왔어요. 대범하고 많이 반성하며 긍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부지런함과 꾸준함이 빛나는 삶을 살고 싶어요. 그리고 많은 이에게 사랑받고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전유동은 사과를 망설이지 않는 사람, 옳다고 여기는 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75데시벨」은 아무도 나라는 음악가를 알아주지 않았던 때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고 주위 환경을 탓하던 내 자신이 솔직하게 드러나는 곡이에요.
저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꿈을 꾸고 희망을 말해요.
그는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불행하게 하지 않는 행복에 대해 말했다. 그것을 ‘건강한 행복’이라고 했는데, 건강한 행복을 누리며 오래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음악을 들을 때 앨범 전체보다 기억에 남는 몇 곡을 플레이리스트에 넣어 듣곤 한다. 「관찰자로서의 숲」은 특별한 앨범이다. 듣는 이에게 숲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처음 이 숲에 들어서면 풍경의 아름다움에 감동한다. 그러다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세밀하게 숲을 들여다보면 숲속의 새와 벌레 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기쁨도 슬픔도, 과감함도 섬세함도 있다. 이 숲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우리의 삶처럼 펼쳐져 있는 앨범이다.
전유동 음악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진정성’이다. 그것이 전유동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자 듣는 이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고, 깨달음이자 그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음악에 담아 진실하게 표현하는 힘이 아닐까?
75데시벨
다시 해가 길어지면
잊지 말고 날 기억해 줘
다른 노랫소리가 나의 노랠 앗아가
긴 어둠 속 상상만 했던
너를 기다려왔는데
다시 해가 길어지면
왜 이리 늦었냐고 말해줄래?
끊임없이 잇따라 꿈속에서 나 불렀어
많은 사람들이 내게
안 될 거라 말했지만
그래도 또다시
이 계절을 피우고 난 노래해
이 마음을 피우고 난 노래해
이 지구가 오래오래 돌아
나의 노래는 또다시
이 계절을 피우고 난 노래해
이 마음을 비움으로 채우면
이 지구가 오래오래 돌아
나의 노래는 또다시
이어질 거야
다시 해가 짧아진다
기다렸던 너와 함께 노을을 본다
*전유동의 첫 번째 정규 앨범 <관찰자로서의 숲>은 아래 링크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https://smartstore.naver.com/unl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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