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와 노력이라는 함정에서 벗어나야 할 시대

만화가 지망생의 경험을 곁들인, 구시대의 패러다임에 관하여

by 언럭키

작년에 웹툰작가 지망생들, 아마추어들로 이루어진 스터디에 들어가 본 적이 있었다.

스터디를 열어준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주 n시간 씩 각자에게 맞는 목표작업시간을 설정해서 지킵시다. 시간을 못 채울 시 퇴장입니다."


나는 항상 '어떤 경험을 하느냐' 보다, '경험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스터디가 얼마나 튼튼한지, 얼마나 배울 점이 많은지는 굳이 따지지 않기로 하고 일단 목표를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수개월 동안 스터디를 하면 할수록 '뭔가 애매한데?' 싶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작업시간이 크게 부족한 사람이었으면 이런 스터디가 유의미할 수도 있었겠으나, 이전부터 나는 작업의 양 자체가 크게 부족한 사람은 아니었다.


스터디가 지속될수록 내면에서 계속 올라오는 물음.

'이곳에서 내가 얻을 것이 과연 많은가?' '나 혼자 하는 것과 이 스터디를 참여하는 것이 무엇이 다른가?'


결국 나는 스터디가 끝나고 나서 이 물음에 답할 수 있었다.


작업시간, 작업량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이 스터디 자체가 구시대의 패러다임에 묶여있는,

내 가치관과 다른 곳이었기에 계속해서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눈앞의 결과를 중시하고, 개개인의 의지와 노력을 강조하는 문화가 있다.

여타 선진국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한국은 확실히 그렇다는 걸 많이 체감해 왔다.

누군가 실패하면 "니가 의지가 부족했으니 그렇지.", "노력을 더 했어야지."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누군가 그 실패를 발판 삼아 재도전하려 하면 "당장 결과가 안 나오는데 무슨 소용이야? 또 한다고 되겠어? 현실을 생각해." 라며 상대를 꺾으려 들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결과와 노력이라는 것에 대한 환상이 어느 정도 있으며, 실패와 과정의 가치를 절하하고 이 세상엔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하다.

물론 세대가 교체되기 시작하면서 점점 사회가 바뀌고 있음을 느끼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아직 부족하다고 본다.


그럼 대체 왜 우리 사회는 눈앞의 결과와 노력에 집착하는 사회가 되었을까?

아주 고대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할 말이 많겠으나 가장 가까운 시기를 돌아보자면,

바로 고성장 제조업 시대의 패러다임이 결과와 노력, 바꿔 말하면 사람을 기계처럼 갈아 넣어 뽑아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후 한국은 풍비박산이 나버린 척박한 불모지였다.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이 척박한 한반도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빠르게 성장해야만 했다. 나라의 기반을 다지고 고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제조업에 투자해야만 했고, 놀랍게도 한국은 대성공을 거뒀다. 그 이면에는 주입식 교육을 통해 사람들을 공장의 기계처럼 만들어 당장의 결과를 뽑기 위해 모두가 중노동을 감내해야만 했던 현실이 존재했다.


그렇다. 주입식 교육을 통한 결과지상주의, 노력지상주의는 제조업 기반의 고성장 시대에는 적합했을 수도 있는 패러다임이다. 물론 한국이 세계사적으로도 특이 케이스의 대성공을 거둔 나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는 이것이 좋고 나쁘고, 선하고 악하고의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시 한국이 그런 풍조를 가지고 나아간 것을 가치판단의 개념에서 볼 게 아니라, 그 시대에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선택했을 뿐인 것이라고 본다.


그럼 다시 돌아와서, 현시대에는 과연 구시대의 패러다임이 여전히 유효한가?

내 생각엔 전혀 아니다. 한국은행의 이창용 총재가 여러 번 언급해줬듯이, 이미 우리는 고부가 가치의 첨단 산업으로 산업 전환을 했어야 하는 나라이다. 현재 외형적으로는 선진국 반열에 들어왔으나, 국가의 펀더멘탈은 여전히 제조업을 주 동력으로 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의식과 사회 분위기 역시 그 시절의 잔상에 많이 묶여있다고 본다.

특히 최근 AI가 우리에게 던져준 충격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게 해 줬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흔히 일컬어지는 다음 시대에 결과와 노력, 개인의 의지만을 쫓는 사회는 경쟁력을 전혀 갖출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나라가 아직도 제조업만으로 고성장하는 나라였다면 모를까 이미 그 단계를 넘어섰고 외형적으로나마 선진국에 진입했기에 더 이상 과거의 패러다임에 망령처럼 묶여있어선 안된다.


우리는 이제 구시대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단순히 노동량을 늘리고, 개인의 의지를 꾸짖고, 사회 문제가 터지면 시스템보다 개개인을 비난하고, 질문하는 능력을 배제한 채 타인이 넣어주는 지식을 그저 주입받아 그대로 써내려가는, 그런 것이 먹히는 시대는 지났다.


내가 생각하는 AI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을 몇 가지만 뽑자면 과정을 보고 통찰을 얻는 능력, 끊임없이 비판하고 질문하는 능력, 인간 개개인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스토리와 철학을 깎아 개성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구시대처럼 결과와 노력에 집착하기만 해서는 양적 성장은 이룰 수 있을지라도 질적 성장은 이루지 못하고, 양적 성장만으로는 위의 3가지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AI에게 대체되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개개인은 어떡해야 하는가?

눈앞의 결과보다 내가 쌓아온 과정을 눈여겨보고 그 안에서 계속해서 고칠 점을 찾고 얻은 것을 되새겨야 한다.


가끔 "좋은 결과가 좋은 과정의 증거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당장 축구 경기만 봐도 a팀이 b팀을 상대로 2:1 승리를 거두었다는 단순 결과를 가지고 "뭐야, b팀이 1골밖에 못 넣은 걸 보니 그냥 못해서 졌네."라고 진단한다면 과연 통찰력 있는 훌륭한 진단일까?

사실 그 안에서 a팀과 b팀이 얼마나 치열한 전술 싸움을 주고받았는지, 골이 나오는 데에 어떤 빌드업과 수싸움이 있었는지, 골이 나올 때 수비진은 어떻게 움직였는지 등등 경기 내에서 봐야 할 것들은 정말 많다.


하지만 2:1이라는 결과는 그런 것들을 하나도 말해주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선수가 골을 넣었는지, 태클이 몇 회 성공했고 슈팅을 몇 번 했는지와 같은 세부 지표조차도 말해주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직접 라이브로 경기를 보고 공을 가지고 있지 않은 선수들의 움직임, 감독의 전술지시, 선수 교체카드 등등 다양한 요소들을 보고 판단해야 그 경기의 과정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다.


결과는 과정의 극히 일부를 보여줄 뿐이다. 결과를 통해 과정을 역산하려는 것은 불분명한 인과관계에 기대 인과를 설명하려는 행위다. 과정 그 자체를 보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첫 문단의 내 스터디 얘기로 돌아가보자.

스터디를 하면서 내가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내 가치관을 더 단단하게 굳히는 계기를 얻었다는 부분이었다.

주간 목표를 단순히 n시간이라는 양을 채우는 것으로 잡는다면 과연 그것에서 뭘 얻을 수 있겠는가?


좋은 과정을 가지고 나아가면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결과를 쫓는다면 역설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노동량(작업량)은 따라오는 것이다. 내가 오늘 '무엇을' '어디까지' 해낼지 에 초점을 맞추고 진심으로 그 일을 즐기고 몰입해서 하나씩 쌓는 삶을 보내고 있다면 '많은 작업시간'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있다.

기존에 혼자 독학하며 작업을 쌓아가던 내가 세운 목표와 충돌하는 주간 n시간 채우기는 부작용을 낳을 뿐이었다. 예를 들어 원래도 주 40시간을 했다고 한다면, 평소에는 시간목표를 세우더라도 아주 높게 세우고 살았기에 얼마나 했는지와 관계없이 작업을 계속할 뿐이었지만 스터디 시간목표가 세워진 뒤로는 40시간을 채울 것 같음이 일찍 예감되면 작업의 템포가 느려지고 몸이 퍼지는 경험을 자주 했다.

목표가 되면 안 될 것이 목표가 되면 달성 후 부작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대학이 인생의 목표인 사람이 대학에 진학 후 방황에 빠지듯이 말이다.


양적인 부분은 궁극적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질적인 부분을 추구해야 한다.

단순히 많은 노동량이 목표가 된다면 그것은 열심히 사는 길을 향한 것이 아니라, 과로를 향한 길이 될 뿐이다.


최근 프로 작가님에게 코칭을 받으며 3달간 공모전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여실히 느꼈다.

경력이 꽤 오래된 베테랑 작가님이신데, 이 분은 목표설정법뿐만 아니라 마인드셋, 화법, 가르침의 내용 모든 면에서 아마추어들과는 격이 달랐다.

이분은 수강생들에게 "매주 몇 시간 해야 합니다."라는 양적 목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쌓아가는 것입니다. 하루를 스스로 뿌듯하게 느낄 만큼 알차게 살아주세요." 하는 멘트로 시작했다.

"최소 1시간은 특정 훈련을 매일매일 해주세요."라는 최소 양적목표는 주었지만 "이번 주는 n시간은 반드시 해오세요."라는 방식은 없었다.


화법도 달랐다. 이전 아마추어 스터디의 운영자에게서는 삭막하고 날카로운 화법을 쓰는 분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또한 상대가 말을 많이 하는 것을 경계하고 그것에 대해 일침을 놓거나 논의 자체를 중단시키는 화법, 메시지보다 메신저에 주목하는 방식을 자주 쓰는 분이라 느꼈기에 나와 결이 너무도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반면 프로 작가님은 개개인의 강점과 약점을 정확히 짚으면서도 자신감을 북돋아주고 추진력을 담을 수 있는 친절한 화법, 그러면서도 약간의 단호함을 겸비한 화법을 소유하고 있었다. 또한 수강생들에게서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듣고자 했고, 그 이야기를 토대로 함께 논의를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을 밟았다.


이때 작가님에게서 들어오는 여러 코칭에 대해서도 '이 분이 프로니까' 하고 따르는 게 아니라 '이 코칭이 얼마나 합리적인가'를 하나하나 따지면서 받아들였다. 100가지가 들어오면 그중 99가지가 합리적이라고 느꼈기에 거의 대부분을 수용하면서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다.


이런 배움의 경험이 작년에 있었던 아마추어 스터디와 대비를 느끼게 해 준 것 같다.

프로의 마인드셋, 화법, 작업루틴, 목표설정 등등 모든 것은 거대한 과정이었다.

그 과정을 나는 3개월간 함께 체득하고 따라가고, 배우고 뜯어보며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성장을 이루어냈다. 공모전 마감도 지금까지의 지망생 기간 중 가장 안정적으로 잘 해낼 수 있었다.



요즘 AI의 발전이 무서울 정도로 빠르면서도, 동시에 생각보다 인간을 대체할 가능성은 더 적겠구나 싶은 생각이 있다. 그리고 그런 시대에 맞춰 나는 어떤 작가가 되고자 해야 다음 시대에도 살아남겠는가?라는 고민을 3년간 끊임없이 해왔고 이제는 윤곽이 어느 정도 잡혔다.


과정을 성찰하고 끊임없이 질문하라. 결과와 노력의 허상에 갇혀 노동시간만을 늘이고 자신의 의지를 자책하지 마라. 자신만의 철학과 스토리를 콘텐츠에 녹여내라.

그것이 인간으로서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다음 시대의 가치, 창의력일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독을 즐기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