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직장에서 조퇴한 날이 있었다. 남들이 한참 열심히 일할 시간에 자유의 몸으로 놀러 다니는 것만큼 달콤한 일도 없다. 한가한 오후를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다가, 옛날에 살았던 동네를 찾아갔다.
그 동네는 좋게 말하면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의 그리운 정취가 살아있는 곳이요 나쁘게 말하자면 사람이나 건물이나 시대의 흐름에 뒤처져 퇴락한 곳이었다. 골목길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풍경은 짧게 잡아도 15년 전쯤에 자취를 감췄고 동네에 남은 사람들이라곤 자녀조차도 중년은 되었을 법한 지긋한 노인들이다. 상가 건물에 변변한 마트나 학원, 빵집이 사라진 지도 오래됐다. 주택가 일색인 그곳은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 세트장과 흡사한데, 다른 점이라곤 흙바닥을 아스팔트로 덮었다든가 외풍이 들어오던 창문을 집집마다 이중창으로 바꾼 그런 정도다.
부모님은 내가 돌이 되기 전 동네의 2층 주택을 구입했다. 집의 큰 공간은 우리 가족이 쓰고 지하와 옆방, 2층엔 세를 놓았다. 아주 어렸을 적이라 기억은 없지만, 사진첩을 보면 옆방이나 2층에 세 들어 살았던 어른들이 날 업어주거나 손을 잡고 서 있는 사진들이 몇 장이나 있다. 80년대의 보편적인 이웃 간의 정서 뭐 그런 느낌으로. 2층이나 옆방의 구조가 아직까지 머릿속에 그려지는 걸로 보아 아마 그네들 방에 스스럼없이 놀러 가서 시간을 보내곤 했으리라.
학교를 다니기 전까지는 동네 아이들과의 거리도 가까웠다. 남자아이들끼리 모여 마당에서 공을 차고 놀고, 친구 집에 가서 놀고, 모험심에 으슥한 골목길을 가 보거나 이웃 동네의 놀이터까지 섭렵하는 뭐 그런 추억. 어린이 유괴로부터 안전한 시절은 아니었어도 동네에서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뭔 일이 있겠느냐는 당시 어른들의 무심함이 좋았다.
유년기가 지나고 학교가 갈리면서 동네의 동무들은 거리가 멀어졌고, 우리 가족은 몇 년을 더 살다가 90년대 말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그 동네를 떴다. 집은 당시 슈퍼를 운영하시던 작은 아버지께 팔렸다. 슈퍼와 집은 지척이었고 작은 아버지 입장에서는 출퇴근하기 최적의 거리였다. 슈퍼는 90년대 초반 이후로 쭉 동네와 성쇠를 함께 했다. 슈퍼도 동네도 앞의 10년은 활황기, 다음 10년은 쇠퇴기, 그 후 10년은 침체기였다.
아파트로 옮겨간 이후로 10대는 내 학업이 우리 집의 가장 중요한 문제였고 학교 위치에 따라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그러는 동안 옛 동네는 까맣게 잊혔다가 20대에 이르자 불쑥 기억 저편에서 떠올랐다. 그리고 나서부터 난 몇 년을 주기로 옛 동네를 찾기 시작했다.
방문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일단 작은 아버지와 사촌동생을 만나기 위함은 아니었다. 지난 삶의 회고? 회고라기에는 20대 초반이라는 나이는 너무 이르다. 추억팔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유년기의 추억을 굳이 꺼내어 자랑하려 함도 아니다. 차라리 그건 제행무상이라는 진리에 대한 내 나름의 탐구였다.
제행무상은 대학교 교양수업 시간에 일본인 교수가 일본어로 알려준 말이었다. 이제는 그 교수의 이름이 무엇이고 당시 그가 학부생들에게 뭘 가르쳤는지는 알지 못해도, 그 단어만큼은 확실하게 기억난다. 형체가 있는 것은 언젠가 사라진다. 형체가 없는 것도 언젠가 사라진다. 모든 것은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않기에 덧없다. 쓸쓸하다.
나는 은연중에 제행무상을 부정하며 옛 동네를 찾았는지 모른다. 입시, 군대, 서울살이를 지내는 동안 내 안에서 마모되고 퇴색된 것들이 너무나도 그리워져 눈앞으로 불러내고 싶었던 것도 같다. 형체가 남아 있는 집을 되찾아감으로써 형체가 없는 유년기를 일부나마 되찾아내려고 한 성싶다. 덧없음에서 덧있음을 어떻게든 찾아내보려는 발버둥이었다.
그러기를 몇 차례, 이제 그런 일도 완전히 결딴이 나고 말았다. 옛 동네가 작년에 재개발구역으로 선정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리고나서부터다. 조퇴한 날 마지막으로 찾은 동네는 응팔의 마지막화에 나오는 쌍문동 모습과 판박이였다. 모든 주민들이 떠난 지 한참인 동네는 무성한 잡초와 바깥에 아무렇게나 버리고 간 쓰레기 더미로 뒤덮였다. 녹이 슨 대문은 이사의 편의를 위해 떼어져 길가에 나와있고 집집마다 입구에 출입금지 띠가 둘러 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였던 만큼 마음이 아프지는 않았으나, 앞으로는 이렇게 초라한 형해마저도 자취를 감추리라는 예감이 들어 쓸쓸했다. 덧없는 세상에서 어떻게든 덧있음을 찾아 움켜쥐려던 내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것들이 다 빠져나간 손바닥에는 덧없음만이 덩그러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