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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마귀소년 Jan 28. 2022

프로틴 쉐이크와 마음의 평안

그들의 울음이 귓전에서 차츰 멀어져가기를 빈다

사진 출처: unsplash




유청 단백질Whey Protein:
유청에 함유된 단백질의 하나. 베타락토글로불린, 알파락트알부민 따위가 있으며, 카세인보다 영양가가 우수하다. 유단백질의 약 20% 정도를 차지한다.


  1월 첫날부터 프로틴 쉐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우유에서 나온 유청 단백질과 초코향, 초코맛을 내는 물질들이 혼합된 파우더를 물에 섞어 마시면 단백질을 체내에 손쉽게 공급할 수 있다고 해서였다.


프로틴 파우더 한 스쿱+ 냉수 200ml = 프로틴 쉐이크


  스트렝스 운동을 시작하면서 영양에도 신경을 써왔다. 근육의 합성에는 단백질이 필수라는 생각에 정육(소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오리고기), 달걀, 오징어, 고등어 등을 끼니마다 300g이상 먹고 다. 

  

  사람 몸이 필요로 하는 일일 단백질 권장 섭취량은 체중 1kg당 0.8~1.2g 이라 한다. 근육을 만드려는 사람은 1kg 당 1.5g 이상을 섭취하는 게 좋다고 한다. 나의 경우 체중이 85kg이며, 적극적으로 근육을 얻으려는 사람이니 섭취해야 하는 단백질 양이 무려 127.5g에 해당한다.


  하루에 두 끼, 그리고 끼니마다 고기 300g을 먹는다고 할 때 식품들로부터 내가 얻는 단백질의 양을 계산하면 54g~72g 가량 된다. 절반 가량이 부족한 셈이고 그 수치를 다른 식품으로 채워야 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식품들은 조리하면서 수분과 지방이 빠져나가 중량이 줄어드므로, 조리가 끝난 상태에서 300g을 맞추려면 상당한 양을 준비해야한다. 인터넷에서 본 배달 후기를 옮겨보면, 어떤 이가 삼겹살 구이를 한 근(600g) 주문했는데 배달된 음식의 무게를 달아보니 56%(338g)에 불과해 점주에게 항의를 했다고 한다. 후기를 읽은 사람이 진위 여부를 확인코자 직접 지방이 많이 붙은 고기를 구워, 굽기 전과 비교해보니 역시 40%가량 손실이 생겼다.


출처: 배달의 민족

  

  이런 셈법으로 삼겹살 구이 300g을 먹으려면 정육 500g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고, 1인분에 150g을 내는 삼겹살 집에 가면 3인분이 내 기준 최소의 양이 된다. 나와 아내, 아이의 저녁 식사에 삼겹살 한 근으로는 한참 모자랐던 이유를 그때 알게 되었다. 세 식구가 넉넉히 배를 채우려면 800~900g은 준비해야 한다.


  고기를 그렇게 먹고서도 단백질을 매일 50g 이상 더 공급해야 함을 알았을 때, 첫 선택은 가공된 닭가슴살이었다. 가공 닭가슴살은 데치고 불순물을 제거하고 조리까지 해야하는 생고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편리함이 있다. 100g 단위로 소포장이 되어 있고, 포장을 벗긴 뒤 전자레인지에 2분만 데우면 바로 먹을 수 있다.


  보통의 정육보다 하나 더 좋은 점은 가격이다. 병아리가 닭이 되기까지의 생산 단가가 어찌되는지 몰라도 닭가슴살은 비정상적으로 싸게 유통된다. 통상 국내산 닭가슴살 100g 한 팩에 1,500원 전후지만 업체에 따라 1,000원이 안 되는 가격으로 파는 곳도 있다. 


  지극히 편리하고 빠르고 거기다 저렴하다. 클릭 몇 번에 결제가 끝나 문앞까당도한 닭가슴살 50팩을 받고 냉동실에 욱여는다. 그리고는 식사와 식사 사이에 전자레인지에 데운 다음 목구멍에다 밀어넣는 것이었다.


닭가슴살 100g 한 팩에 800원대까지도 있다. 출처: 네이버쇼핑


  그것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어미가 없는 에서 눈을 떴다. 살아갈 길을 모르니 삐악삐악 울며 먹이쫓을 뿐이었. 단기에 외형이 바뀌고 뼈대보다도 가슴이 앞서 피둥피둥 커진다. 정해진 근수를 채우는 때가 오면 정해진 수명도 끝난다. 날 때와 한가지로 영문도 모르고 죽을 때를 맞이한다.


  동무들 틈에 섞이어 실려간 곳에서 느닷없이  댕강 잘리고, 피를 쏟기고, 털을 뽑히고, 내장까지 빼앗긴 뒤 세척되었다. 가공업체로 운반되어서는 가슴께 살만이 깔끔하게 도려내지고 불순물을 제거하는 공정, 육질을 부드럽게 하는 공정을 거쳤다. 조리까지 마치면 온갖 양념과 함께 세련된 포장으로 감싸인다. 냉동창고에서 꽁꽁 얼었다가 택배차를 타고 마침내 문 앞까지 왔다.


  먹음직스러운 '그것'으로부터 한번도 '생명체'를 떠올린 적은 없었다. 그것의 본디 모습이 닭임을 알리는 단서라고는 고작해야 귀여운 캐릭터로 꾸민-희화화된-포장지의 그림과 작디 작은 문자열 뿐이니 말이다. 접시에 올라가 김을 모락모락 피워올리던 그것은 슈퍼마켓에 진열된 닭다리 모양의 과자만큼이나 내 마음에서 멀었다.


가슴살팩을 수백 개쯤 먹는 동안 닭과 나는 생명체로서 대면한 일이 없었다. 출처: pixabay


  한 업체의 제품을 50개쯤 시키면, 처음에는 입에 착 달라붙듯 하던 것도 차츰 물린다. 그리고 다 먹어갈 때쯤 해서는 슬슬 다른 업체로 갈아탈 준비를 하게 된다. 소비자들의 이런 심리를 파악해선지 제품은 나날이 다양해지고 맛있어진다. 훈제, 고추, 마늘과 같은 기본부터 푸팟퐁커리, 로제, 마라 등 닭가슴살로 이런 맛을 낸다고? 싶은 것도 수십 종은 된다.


  수백 개를 달아서 먹고는 현실 자각의 시간이 찾아왔다.


-어찌하여 이걸 먹고 있는가? 배가 고파서인가?

-아닙니다.

-이것이 네가 좋아하는 음식인가?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때문에 이것을 계속 먹고 있는가?

-배가 고파서도 아니요, 좋아하는 음식이어서도 아니요, 그저 더 크고 더 많은 근육을 얻기 위함입니다.


  답을 내린 후에 냉장고 문을 열어보았다. 냉동실 안에는 화려하게 치장된 욕망과 미련함이 그득히 쌓여있다 못해 금방이라도 와르르 쏟아질 듯 위태하였다. 오래 전 읽은 <육식의 종말>(Beyond beef)이 불현듯 떠올랐다. 비건이 될 생각도 공장식 축산업을 반대하는 입장도 아니건만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렸다. 욕망과 미련함으로 차마 그것들을 내다버리지 못하고 꾸역꾸역 씹어넘겼다. 그리고는 닭가슴살 주문 앱을 삭제하였다.


영국산 프로틴 파우더 한 포대 (5kg)


  닭가슴살을 끊고 나서도 운동은 끊지 아니하였다. 단백질 섭취는 줄었어도 먹은 것을 근육으로 바꾸는 작업을 지속하니 몸이 아주 조금씩 조금씩 커졌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조금씩'을 위해 이제껏 저지른 일이 무엇이었나를 돌아보는 작업도 함께였다.


  일반적인 식사 외에는 추가 공급을 끊었다가, 프로틴 파우더를 사 먹게 된 게 이제 한 달여가 되어간다. 우유의 부산물로써 영양이 풍부하고 가공법의 발달로 맛까지 좋다는 지인의 말에 혹했다. 지인의 집에서 시험 삼아 쉐이크를 마셔보니 과연 맛이 좋았다. 복용 횟수로 40번을 넘긴 지금은... 맛을 거의 음미하지 않고 꿀꺽꿀꺽 약처럼 먹을 뿐이다. 어떤 산해진미라도 매일 2회를 꼬박꼬박 먹는다면 이와 같아지지 않을까.


  유청 단백질이 동물 복지나 환경, 인체에 끼치는 유해성에 대해서는 앞으로 시간을 두고 살펴보아야 한다. 유청의 원재료인 우유도 공장식 축산의 산물이며 젖소의 과다 사육이 환경 파괴에 큰몫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유가 심혈관질환 발병율을 높이고 골밀도를 낮춘다는 학계의 경고도 무시할 수만은 없다.


  이런저런 숙제가 남아있어도, 마음이 다소 가벼워진 것만큼은 확실하다. 냉동실을 하얗게 비워둠으로써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닭이 하나라도 줄어들기를 빈다. 들의 울음이 내 귓전에서, 사람들의 귓전에서 차츰 멀어져가기를 조심스레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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