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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마귀소년 May 15. 2022

주전자를 기울여 따라주고 싶은 것

나는 강만한 물을 담고 싶었지만

사진: pixabay


이 ‘-씨’는 현대어의 ‘솜씨, 맵씨, 마음씨, 말씨’등에 나타나는 접미사 ‘-씨’와 같은 뜻으로 보이는데, 이 ‘-씨’는 중세 국어의 ‘ㅄㅣ(種)’가 접미사화한 것으로 판단된다.
-내용 출처: 21세기 세종계획 누리집, <국어 어휘의 역사>

접미사 ‘-씨’는 ‘글씨, 말씨, 마음씨’ 등에서와 같이 ‘그 상태나 태도’를 뜻한다.
-내용 출처: 백문식, <우리말의 뿌리를 찾아서>




  마음이 주전자라면 내 것의 용적은 얼마나 할까. 이름자에 [江]이 있는 나는 강만한 물을 담고 싶었지만 막상 강으로 나아간 날에는 아무 것도 담아오지 못했다. 그저 강변을 따라 한참을 걷고 난 다음 가지고 나간 물병으로 옆에 나란히 선 두 사람의 목을 적시기가 겨우였다. 강에서 물병을 비우고 털레털레 돌아오는 그런 날은, 내 이름자를 지었다는 아버지에게 괜스레 묻고 싶어진다.  


  여태 이름자만 믿고 있었어요. 강물로 태어나서, 수많은 생명들과 함께하며, 한 자리를 가만히 지키기만 해도 내가 자꾸자꾸 붇는 줄로만 알았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나는 한번도 강이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어떤 날은 내 자신이 제법 마음에 들어서 물고기들이 놀 만한 호수 같기도 했지만 곧바로 다음 날이면, 무심코 하는 말 한 마디에 형편 없이 작아져 잉어 한 마리도 노니지 못할 물잔이라고 느끼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는 동안에 몸은 자꾸 커지고 나이를 먹어버려 이젠 일가까지 이루고 삽니다. 어째서 이미 가진 것을 펼치지 못하고 발치에조차 가까이 가지 못한 것일까요.

    

  혹시 엉뚱한 분에게 화풀이하고 있나요. 기껏 강으로 낳아줬더니, 불어나려는 시늉은커녕 시종일관 움츠러들기만 한 제 잘못이었을까요. 먼저 손을 내밀어준 기억은 통 없고 다가오는 손마저 얼굴이 붉어져서는 뿌리친 탓이었나요. 매사에 대담하라고 이르셨는데 조금만 무서워도 겁을 내며 도망가느라 그만 물잔만하게 쪼그라든 것일까요. 지금부터라도 용적을 늘리려면 뭘 해야 합니까.


  목이 몹시 말랐던 나는, 강에서 돌아오자마자 냉장고에서 주전자를 꺼내어 식탁 위에 컵과 함께 올려놓는다. 스테인레스로 되어 견고하고 가볍고 식기세척기에 넣어도 안심인 주전자. 손잡이를 움켜잡고 유리컵에다 찬물을 가득 따라내었다. 그렇게 따라내고도 한참이나 묵직하다. 가늠하건대 아내와 아이의 목을 축이고도 능히 서너 사람에게 줄 만한 양이 남았다. 내일 오후에 방문하기로 한 서비스센터 기사. 그보다 전에는, 소독약이 든 탱크를 지고 들어와 약을 치고 서둘러 떠나던 분이 생각난다. 다정스레 안부를 물어오는 아름다운 벗들도 목이 마를테지. 아니면 테이블 위 화병의 꽃들을 며칠이나 더 살게 만들 수도 있겠고. 제가 담고 있는 것으로 다른 존재를 채워주는 저것. 저것에 자꾸 시선이 간다. 


  마음은 무엇을 따라낼 수 있고 그걸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주둥이에서 쉽게 흘러나오는 말씨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밥벌이를 위해 매일 쏟아내는 말들. 결코 적지 않다. 가득 출렁이는 주전자에서 마음 없이 쏟아내는 말을 전부 따라버리고, 나머지를 측량한다. 그랬더니 마음의 말은 전체 용적의 1/3이  못 된다. 여기에 필터를 갖다대어,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함량 미달의 말과, 남의 기분을 도로 빼앗는 말을 다시 거른다. 남은 말씨를 추려보니 겨우 손바가지 안에서 찰랑거린다. 이걸로 오늘 몇 사람이나 채워줬을까. 한 사람? 아니 어림도 없지. 한번으론 성에 안 차 몇 번이나 거푸 떠마시는 나를 그려본다. 오늘 겨우 그 한바가지를 따라냈다고 그리 지쳐서 돌아왔을까. 용적 같은 건 문제가 아니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이번엔 글씨로 눈을 돌린다. 주둥이에서 자음과 모음이 또르르 넝쿨지고 방울져, 저 건너 병풍처럼 너른 바탕에 검은 물결로 흐르는 걸 본다. 역시 업業으로 매일 쏟아내는 것들의 양이 상당하다. 먼저 따라버린다. 마음에서 나온 글씨는 얼마나 될까. 주전자 뚜껑을 열어보니 이번엔 2/3이 남아 있다. 여기에서 하나마나한 인사치레의 글과 남을 찌르려는 글을 걸러낸다. 추린 글씨들은, 바닥까지 탈탈 털어도 500ml 물병을 겨우 채움직하다. 이걸로 오늘 몇 사람을 채워줬지? 두 사람? 아마도 한 사람. 그나마 하루도 온전히 적시지 못할 양. 여기서도 용적은 문제가 되지 못함을 안다.       


  다음 짐작가는 바가 있어, 안방으로 건너가 옷장 문을 열었다. 그곳에 맵시가 들어차 있다. 양말부터 넥타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워드로브가 정돈되어 있는 광경을 그저 흐뭇하게 바라본다. 생업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으므로 처음부터 따라낼 게 없고, 누군가를 시샘하기보다 그에게 내 정성을 보이려 한 일이었으므로 걸러낼 게 없다. 처음으로 가득 찬 주전자를 본다. 이걸로 오늘 몇 사람이나 채워줬을까? 맵시에만 지나치게 정성을 쏟은 나머지 겉만 번지르르하게 차렸다는 우스꽝스러움은 없었을까. 아무쪼록 많은 사람이었길 바라는 마음으로 옷장 문을 다시 닫는다.


  내일부터는 주전자에 정화수를 떠놓아야겠다. 오늘의 앙금이 하나도 없는 새 날의 물을. 그런 다짐의 마음을 기울여, 반듯하게 글씨를 써낸다. 점점이 뿌려진 방울이 아니라 막힘 없이 흐르는 물결이 되도록 펜끝에 주는 필압과 쓰는 순서와 흘림과 삐침에 하나하나 주의를 기울인다. 그러다가 지겨워지면, 의자에 앉아 늦은 시간까지 글씨를 읽는다. 친애하는 작가들과 벗들의 인간다움을 읽는다. 읽고 쓰는 동안 종이 위에 먼저 도착한 것들이 뒤이은 것들과 만나 흐르고, 춤을 추며, 마음을 쓰다듬는다.


  부드러운 물결이 거친 사포질보다 모난 마음을 더 둥글릴 줄로 믿는다. 말씨와 글씨를 자주 쓰다듬으면 더 따뜻해질 거라 되뇌어본다. 주전자를 기울여 둥글고 따뜻한 물을 따라주는 사람이 되겠노라고, 마음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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