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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마귀소년 Nov 01. 2021

워드로브

현대인이라면 누구든 워드로브에 대한 고민과 정비와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사진 출처: www.pixabay.com



  워드로브wardrobe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의복. 단순한 옷장 속의 의복이 아닌 전반적인 의상 계획이 포함된다.


  옷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군을 제대한 이후부터였다. 하지만 기껏 20대 초반의 나이로 앞으로 어떤 인간상을 빚어나갈지, 타인의 눈에 어떤 인간으로 비치면 좋을지에 대해서까지 생각할 재주는 없었다. 그저 학교로 돌아와 학업을 이어나가고, 동기를 비롯해 학교에서 알게 된 몇몇 사람들과의 느슨해진 관계를 다시 긴밀하게 해 나감으로써 타지에서의 고립을 면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했을 뿐. 제 몸을 둘러싼 작은 동그라미의 반경을 줄이지 않기 위해 가능한 한 적은 에너지를 쓴다. 그리고 학업이라는 궤도를 충실히 따라간다. 이것이야말로 분명한 정체성이요 삶의 관념이었다.


  어떤 인간으로서 살지에 대한 관념이 서지 않았으므로 워드로브에 뚜렷한 관념이라는 게 있을 리 만무했다. 그저 대학생들이 입고 지나가는 옷 중에서 예뻐 보이는 게 있다 싶으면 그와 유사한 디자인을 SPA 브랜드에서 구입하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 보세가 아닌 SPA로 한정한 것은 보세 쇼핑몰에서 사진만 보고 옷을 구입했다가 형편없는 질로 인해 낭패를 본 뒤 얻은 귀중한 깨달음이었다. 물론 몇 년을 두고 입을 만한 내구성은 아닌 데다 앞서 말한 복식에 대한 관념 부족으로 옷가지들의 조합에도 서툴렀다. 뭐, 간신히 봐줄 만한 수준이나 되었을까. 지금의 생각으로도 패션 센스나 의상 계획이 없는 사람이라면 일단 SPA 브랜드로 워드로브를 구성하는 게 타당하다.


  복학 후 2년 차부터는 머리를 기르기 시작하면서 하이엔드 스타일을 흉내 내었다. 당시 밀리터리룩을 다양하게 변주한 디올 옴므나 발망, 릭 오언스 등 유럽 하이엔드 패션이 세계적으로 유행할 때였고 그런 흐름을 국내 의류 브랜드가 마구잡이로 카피하여 유통시켰다. 물론 일정한 수입이 없는 대학생 신분에다 타향살이를 하는 빠듯한 신세에는 그런 카피를 구입하는 것조차 분수에 넘치는 일이다. 백화점 브랜드를 필두로 일반 의류 브랜드, 보세와 SPA가 마구잡이로 카피한 끝에 의류의 질도 격하될 대로 격하된 옷가지를 그런대로 만족하며 구입하는 것이 한계다. 물론 지금도 유럽은 의류 유행의 발원지요 한국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쪽이다. 10여 년 전과 같이 국내 의류 생산자가 해외에서 유행하는 디자인을 베끼는 관행이 여전하고,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그러한 관행을 알면서도 하이엔드 브랜드를 구매할 여력은 못 되니 하품(下品)이나마 구입한다. 그리고 브랜드는 아래일망정 원본보다 마감이 더 좋다든가, 보세보다 소재가 더 좋다든가 하면서 자위하는 것도 여전하다. 어느 사회든 상류층은 소수요, 그 외의 다수는 부족한 자본으로 무엇을 하든 상류층을 흉내내기에 그치기가 십상인 것이다.


  워드로브의 정의를 서두에 제시한 것은 이러한 과거를 청산하고 제대로인 의상 계획을 짜는 데 기준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만약 자신이 수트나 유니폼처럼 일상에서 갖춰야 할 복식이 분명하다면 고민의 무게와 범위가 줄어든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스스로 워드로브를 주체적으로 관리하지 않고 아무거나 주워 입는 수준이라면, 옷가지의 품위가 사람의 품위를 정하는 본말전도의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든 워드로브에 대한 고민과 정비와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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