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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마귀소년 Nov 01. 2021

우아함에 대하여

사고와 표현에서 품위를 은근히 드러내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다

사진 출처: www.pixabay.com




우아함 (優雅함) [명사] 고상하고 기품이 있는 아름다움.


  우아함은 아름다움 중에서도 상위에 위치한 것으로 현실에서 매우 큰 희소성을 지닌다. 포털에 우아함으로 검색을 해 보면 으레 (여)배우의 화보에 따라붙는다. 노출 빈도로 순위를 매기자면 배우 다음으로는 새로 출시된 자동차, 여성의 소지품-가방이나 구두-, 건축물 정도일 것이다. 이것들의 공통점을 생각해보았다. 1. 우아함을 판단하는 기준이 외면에 치우쳐져 있다. 2. 여러 사람이 노동력과 자본을 투입하여 고도로 가공했다. 3. 그 결과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 4. 사진(또는 영상)과 실재의 미감은 꽤나 차이가 있다.


  이번엔 미디어가 아닌 현실으로 눈을 돌려본다. 극히 한정된 틀 안에서나마 우아함을 확실히 설득시키는 미디어의 피사체와 달리, 실재하는 인물이나 사물들은 그다지 우아하지 못하다. 내가 속한 어떤 집단에서도 사람들은 너절한 이해관계나 자질구레한 일상에 구속되어 있었다. 필연적으로 천박하고 저속했으며 끊임 없이 추태를 보였다. 왜 이다지도 우아하지 못한가? 이는 사람 하나하나의 문제라기보다는 집단의 문제요, 나아가서는 우아함이라는 개념 자체의 문제로 보인다. 이를테면 우아함은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 산과 같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해관계와 일상에 얽힌 매일의 숙제를 해결하기에 급급하다. 늘 마감에 쫓기느라 심신이 녹초가 된 사람에게 등산의 장점을 열거하면서 끝도 모를 산을 오르라고 격려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러나 여기서 끝맺지 않고 계속해서 우아함을 논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와 희소함의 가치 때문이다. 비록 우아함의 판단 기준이 외면에 치우쳤다고 했지만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관찰일 때에 한정된 이야기다. 우리는 무엇인가의 껍데기를 보고 쉽게 미혹된다. 그러나 아름다운 껍데기가 반드시 알맹이의 질을 보장하지 못함도 잘 알고 있다. 과대포장을 풀었을 때 알맹이가 썩었거나 보잘 것 없음을 알게 된다면 조금 전까지 우아하게 보였던 포장지가 되려 천박하고 저속하게 느껴진다. 포장지는 다소 수수해도 내용이 확실한 물건이야말로 요긴하다. 화려한 허울을 내세우기보다 이왕이면 사고와 표현에서 품위를 은근히 드러내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다.


  한 사람의 워드롭, 그리고 TPO에 따른 옷차림은 내면을 밖으로 드러내는 기준이 된다. 역으로 그것은 누군가의 우아함을 알아차리는 데 유효한 기준이 된다. 사무실에 출근한 나는 옆 자리의 동료를 발견하고 인사하며 속으로 묻는다. 저 사람의 옷차림은 TPO에 적합한가? 옷가지와 장신구의 조화가 자연스러운가? 소재가 고급인가? 마감은 잘 된 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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