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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마귀소년 Nov 01. 2021

컨템퍼러리 클래식

클래식과 캐주얼의 중간 지대

사진 출처: www.gentlecurve.co.kr




컨템퍼러리 클래식contemporary classic  복식 현대적 감각을 살린 보수적 패션 경향. 전통적인 기본 성질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요소를 추구한다.


  지난 글-우아함에 대하여-의 후속편이다. 컨템퍼러리 클래식이란 어구는 내가 추구하는 내면의 우아함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표어다. 우아함의 정도는 상대적이게 마련이고, 우아함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표현의 방식은 가지각색일 것이다. 다년간 두 가지 스타일의 옷을 조금씩 경험하는 동안 클래식은 다소 딱딱하고 컨템퍼러리는 다소 느슨하다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균형점이 필요했다. 그 균형점을 나타내는 말이 사전에 있길래 옮겨보았다.


  두 개의 단어를 분리해서, 우선 클래식을 살펴본다. 남성 복식에서 클래식이라 하면 투 피스(재킷과 팬츠)의 수트와 드레스 셔츠, 타이, 벨트, 구두의 조합이 기본이다. 쓰리피스 수트나 턱시도, 더블 브레스트 수트, 셋업 수트 등은 저 기본에서 더 보수적이거나 더 진보적이거나 하는 정도의 차이다. 수트 차림은 남녀를 막론하고 우아함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안일 것이다. 가장 큰 미덕은 신체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은 부각한다는 것이다. 내가 수트를 입었을 때 거울을 살펴보면 평소보다 어깨는 넓어보이고 얼굴은 작아보이며, 다리와 팔은 굴곡이 없이 매끈하게 일자로 떨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허리의 군살을 모두 감추어 준다. 옷을 입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 보정 효과가 일어난다. 이게 혼자만의 착각이 아닌 것이, 아주 가끔이라도 직장에 수트 차림을 하고 가는 날이면 100%의 확률로 누군가에게 칭찬을 듣게 된다. 와-오늘 멋져 보이네요, 수트빨 잘 받네요, 모델 같네요. 다소 뻔하지만 한 나절 정도는 기분이 좋아지는 말들이다. 이건 명백한 복식의 힘이다. 코트가 비싸 보이네요. 무슨 브랜드에서 샀어요? 한번 만져봐도 돼요? 처럼 브랜드를 우선시하는 말들보다 훨씬 듣기 좋다.

 

  그래서 수트는 출근룩으로서의 기능 면에서나 우아함을 표현하는 심미성 면에서 모두 충분하다. 다만 그런 정석에 기반한 스타일이 고루하다거나 지나치게 차려 입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는 반대의 효과도 있다. 내가 다니는 직장만 해도, 수트나 재킷을 항상 입는 사람은 거의 50대 이상이거나 관리직에 있다. 나는 그 사람들의 스타일도 세심히 살피는 편인데 우아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걸치는 재킷과 넥타이, 구두를 살폈을 때 클래식 스타일에 대한 조예나 애호를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클래식을 즐기고 복식 자체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멀리서 봐도 합성섬유인 게 뻔한 재킷, 반짝이 같은 게 달린 넥타이, 로고가 큼지막하게 보이는 벨트, 재킷보다 소매가 짧은 드레스 셔츠, 캐주얼화에 가까운 쉐잎의 구두 따위를 고를 리가 만무하다. 단지 그들은 '나는 나이가 지긋한 관리직이요.'를 드러내기 위해서 그런 차림을 한다고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한편 책 몇 권과 클래식 패션을 기반으로 한 카페를 눈팅해가며 입문 단계에 온 내가 나름대로의 원칙에 따라 옷을 입어 보았다. 미리 잘 닦아 둔 날렵한 쉐잎의 더블몽크스트랩 구두, 의자에 앉아 있어도 맨살과 다리털이 보이지 않는 롱호스 양말, 기성품이지만 천연 소재만으로 된 그레이톤의 샤크스킨 수트, 목 둘레와 재킷의 길이에 맞춘 하얀색 셔츠, 실크 소재에 무늬가 은은하게 보이는 남색 넥타이, 셔츠 소매 안에 쏙 들어가는 두께의 드레스 워치, 로고가 튀지 않는 소가죽 벨트를 차려 입는다. 몸에 걸친 것 중 하나도 맞춤은 없어서 완벽하게 자신와 하나라는 느낌은 없지만 그런 대로 신경을 쓴 복장이다. 그럭저럭 직장에서 어떤 손님에서 부끄럽지 않을 정도는 되겠지. 문제는 이것이 주변 동료들과의 코드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복식을 살펴보면, 최소한의 일관성을 갖춘 사람이 드물다. 대체로는 심미성보다는 실용성에 초점을 둔 것 같다. 드레스 셔츠보다는 캐주얼 셔츠나 티셔츠를, 울 바지나 슬랙스보다는 등산복 바지를, 재킷보다는 점퍼를 훨씬 선호한다. 평균 연령이 40대로 체형이 젊은이같지 않은데 체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옷을 입는 경우가 많다. 자연히 전체적인 룩이 인간을 우아하게 보이도록 하기는 커녕 생기 없어 보이게 한다. 패션에 대한 조예와 관심도가 낮은 사람일수록 브랜드와 스타일의 폭이 넓지 않은 클래식을 입는 것이 적합하다. 그나마 낫다.


  혼자서 수트 차림을 한 나는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튄다. 경조사가 있거나, 큰 행사의 진행을 맡았거나, 증명 사진을 찍기 위해 차려 입은 사람인 양 보인다. 아무리 복식이 예의와 원칙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도 무리에서 크게 벗어나 겉돌고 싶지는 않다. 다른 이의 시선을 받아가며 고집스레 매일 수트 차림을 할 만큼 클래식을 애호하지도 않는다. 작년에 시험 삼아 한 철 내내 수트 두 벌을 돌려 입어보고 나서는, 슬그머니 수트 대신 캐주얼 차림으로 바꾸게 되었다. 수트를 고집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한반도의 아열대성 기후다. 춘추용 재킷을 입는 것은 5월이 한계로서, 땀이 많은 나는 6월부터 9월까지 4달 간 습도 높은 여름을 버틸 재간이 없다. 기온이 높아도 건조한 이탈리아나 비가 자주 오는 영국과 기후 자체가 다르므로 재킷을 무리하게 걸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클래식과 캐주얼의 절충안으로서 컨템퍼러리라는 적절한 중간 지대가 있다. 컨템퍼러리도 브랜드에 따라 추구하는 바가 조금씩 다르겠지만, 내가 선호하는 컨템퍼러리 스타일의 옷은 하이엔드 패션의 큰 줄기는 따르되 튀는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아이템마다 포인트를 하나 정도만 가미한 것이다. 브랜드 로고는 질색이다. 예를 들면 스웨터에 개성적인 짜임 패턴을 하나만 쓴다든지, 코트에 스티치를 한 줄로 넣는다든지, 바지 밑단의 앞 뒤 길이가 다르다든지 뭐 그런 정도. 그보다 포인트의 수가 많아지면 유행을 따르기는 용이해지지만, 2~3년 이내로 식상해져서 착용이 뜸해진다. 백화점에 입점한 브랜드들 가운데는 타임 옴므, 질스튜어트 뉴욕, 띠어리, DKNY, 알레그리 등이 대체로 이런 느낌이다. 상기한 브랜드를 선호하지만 옷의 가짓수가 워낙 많기에 최대한 유행을 덜 탈 만한 것들로만 추리고 추려서 신중하게 구입하는 편이다. 일년에 셔츠 2~3점, 바지 2~3점, 스웨터 2~3점, 아우터 1~2점 정도. 시즌 내 품절이 우려되거나 당장 입고 싶어서 안달난 게 아니라면 시즌오프나 아울렛행을 노린다. 한 시즌이 지난 후에 산다면 적당한 가격에 꽤 좋은 품질의 옷을 살 수 있다. 저것들을 구입하는 데 내가 잡은 예산은 연간 400만원 전후이다.


  최근 컨템포러리의 경향은 몇 년 째 비슷하다. 스트릿과 젠더리스, 그러니까 어깨에 힘은 빼고 핏은 전체적으로 오버하게 만든다. 코트는 죄다 핸드메이드에 로브 형태다. 롱패딩은 들어가고 넉넉한 숏패딩이 대세다. 나는 체형에 상관 없이 상의도 하의도 죄다 큰 옷만을 걸치는 흐름이 못마땅하다. 그래서 올해는 가을 내내 모아둔 용돈으로 결국 외투 하나만 사는 데 그쳤다. 그것도 클래식 브랜드에서 나온 굉장히 포멀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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