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녀의 옷장

불가해한 여성복의 세계

by 까마귀소년

사진 출처: pixabay



신사의 옷장은 꾸리기 쉽다. '절제'라는 대원칙 아래 개성을 조금만 보태면 되기 때문이다. 클래식 복식 한정으론 어떤 재킷, 어떤 수트를 마련하느냐가 워드로브 구성의 절대 기준이라고 봐도 될 만하다. 셔츠와 니트, 구두 같은 건 재킷/수트에 맞춰 3~4점씩만 구비해도 충분하다. 수트 두 벌과 재킷을 세 점 갖고 있는데, 작년에 이들을 중심으로 이너를 적절히 바꾸어가며 직장에 입고 다녔다.


반면 숙녀의 옷장은 어떠한가?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소재와 또 그만큼 많은 무늬와 패턴으로 만들어진 옷이 있고 유행의 주기도 걷잡을 수 없다. 거기다 젠더리스라는 흐름 아래 기존의 남성/여성복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옷까지 더해진다.


옷만으로 완성이 된다면 다행인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추가해야 할 장신구는 또 몇 종이나 되는 것인가. 여러 가지를 다 갖춰놓고 하나만 신경을 제대로 쓰지 못해도 룩의 전체적인 조화가 깨진다. 너무나 많은 갈림길과 많은 선택지로 인해 나는 여성복을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를 포기했다. 난해함을 넘어선 불가지, 불가해다.


어쩌다 아내를 따라 여성복을 파는 매장을 방문하면 머리가 핑핑 돈다. 나이대, 가격대, 전체적인 컨셉에 따라 매장마다 포지셔닝이 확실히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체 옷가지의 종류가 다양한 탓이다. 피팅 룸에서 입고 나온 옷이 아내에게 어울리는지 아닌지 정도의 조언은 하지만, 내가 나서서 어떤 옷이 그녀에게 어울릴지 판단하고 권하는 일은 없다. 그만한 안목이 없다.


그래서 내가 컨셉을 정해주고자 했더니, 당사자는 그런 컨셉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말을 한다. 아가씨 때엔 몸의 곡선을 한껏 살리는 옷을 즐겨 입던 기억이 있는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패션의 트렌드도 아내의 취향도 참 많이 변했다. 너무 몸을 옥죄지 않는 한편으로 적당히 단정해 보이는 옷이면 된다고 한다. 편하게 입고 싶지만 직장인이라는 특성상 최소한의 격식을 버릴 수 없는 상황이다. 비즈니스 캐주얼보다는 일반 캐주얼에 살짝 더 가까운 한 지점이다.


일년에 겨우 몇 번 옷을 사러 나가서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나는 안전한 길을 안내했다. 옷의 종류가 지나치게 많지 않고, 유행을 적당히 반영하면서, 옷감의 질은 검증된 특정 브랜드를 한두 가지만 정해놓고 파는 방법이다. 그리고 브랜드의 전체적인 가격대에 따라 사는 품목을 달리 한다. 백화점 여성복 층에 입점한 브랜드에선 재킷과 아우터를 사고 영캐주얼 층에 입점한 것들에선 셔츠나 슬랙스 등을 사는 식이다.


여기다 브랜드의 룩북을 주기적으로 참고하면서 다음 계절에 어떤 식으로 옷을 입을 건지 미리 생각해 놓는다면, 2~3년쯤 뒤에는 옷장이 일관된 컨셉으로 맞춰지지 않을까 싶었다. 거의 날마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이런 쪽의 최신 정보를 찾는 데 즐거움을 느끼는 나와 달리, 옷 자체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아내이기에 이런 식으로라도 도움이 되고자 했다.




미니멀리즘의 유행, 의류 산업의 환경 파괴에 대한 경각심 확산, 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이라는 세 가지 이슈의 결합은 세계인들의 옷장에 긍정적인 바람을 일으켰다고 생각한다. 남녀를 구분할 것 없이 패션과 뷰티에 관한 지나친 양적 소비를 줄이고 질적 소비로 나아가는 데 좋은 단초를 제공했다.


과거 아내도 "옷은 많은데 입을 것이 없다"라는 여인들의 공통된 푸념을 했으나 재작년 이후부터 옷의 소비를 확 줄이면서 값을 더 주더라도 내구성과 마감을 따져보는 쪽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몸의 실루엣을 너무 그대로 드러내거나 유행이 지난 옷가지들을 과감하게 처분하였다. 그래서인지 밖에 입고나갈 옷의 조합이 단순해졌으며, 좋아하는 옷들 위주로 옷장이 재편되었다는 느낌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숙녀의 옷장은 여전히 잘 알지 못할 세계이니, 아내가 옷을 사겠다하는 날이면 수행비서로서 군말 없이 따라나서서 쇼핑몰로 모신 다음, 피팅룸 바깥에서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다가, 마지막엔 카드라도 쓱 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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