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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마귀소년 Mar 03. 2022

성 안의 사람들

그들의 성공 지침과 나의 이율배반

사진 출처: 두산대백과사전



도성(都城)은 한 나라의 수도인 도읍의 외곽에 쌓은 성곽을 일컫는다. 도읍은 정치·경제·문화를 비롯한 사회 모든 분야의 중심지여서 그곳의 방위와 치안을 위해 축조된 도성의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답사여행의 길잡이 15>


  21세기 한국은 중세 유럽 도시에서 도시의 성 안에 거주하는 사람이 ‘부르주아지’ 라고 불리던 것처럼 서울 안 자가 보유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뉘게 됐다. 또 서울 안 자가 보유자도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냐, ‘마용성(마포·용산·성동)’이냐, 아니면 영등포·동대문 등의 뉴타운 아파트 거주자냐 등으로 세분화된 위계를 갖는다. 이렇게 지리적으로 계층별 거주지가 분화된 사회에서, 중산층 거주 지역이 배타적인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가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조귀동, <세습 중산층 사회>




  성城은 안과 밖을 구분 짓는다. 부르주아지의 어원에서 보듯 성 안에 거처를 마련한 사람은 바깥의 사람들에 비해 우월한 지위에서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서울특별시라는 행정구역명칭과, 거기에 어떤 의도를 가미해 지었을 영화 제목 <특별시민>내게 높고 거대한 성과 성 안의 사람들을 연상시킨다.


  낮 동안에 문을 통하여 수십에서 수백 만의 백성들이 자유로이 들어온다. 생계를 잇는 활동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장을 보는 것은 누구나 한가지지만, 성 안에 일정한 거처가 없는 자들은 문을 통해 다시 왔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들 드나듦에 치르는 값이 막중한 줄 알아도 성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그보다도 막대한 값이니 감내하고 있는 것이겠지. 큰 성 안에다 한 몸 누일 땅뙈기를 마련하기란 예로부터도 어려웠다 하지만 갈수록 더 어려워진다. 바깥의 사람들은 성 안으로 편입되기를 갈망하고, 성 안의 사람들처럼 살기를 갈망한다.


  성 안 사람들은 옛날 사대문 안 사람들이 그랬듯 성 안팎의 구분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안에서 동네와 아파트로 분화하는 양상을 띤다. 자신보다 높은 위계는 질시하고 낮은 위계는 비웃는 부동산 커뮤니티 글은 스카이캐슬의 이야기와도 닮았다.


  성공한 중산층대를 이어 지위를 물려주기 위한 방법도 실천으로 옮기고 있다. 양극화가 심해지는 동안 성 바깥까지 널리 전파되어 왔으며 세대를 넘어 전승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서 성 안에다 거처를 마련해라. 그리고는 더 집값이 비싸고 더 학원이 많은 곳으로 이사해라.

  결혼해서 자식을 낳았다면 성 안에서만 배우고 교류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마라. 그들이 명문 대학의 졸업장을 따고 번듯한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바짝 고삐를 죄어라.

 자식이 성 안의 일자리에 자리잡았다면, 있는 돈 없는 돈 긁어모아서 성 안의 거처까지 마련해 주어라.

  그러고도 돈이 남는다면 손자까지도 성 안의 거처를 마련해주고 세상을 떠나라.


   나의 가문도 이런 비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삼대는 성 바깥에서 안쪽으로 편입되려는 노력을 거듭하였다. 조부모님께서는 아버지를 농촌에서 도시로 유학 보냈으며, 아버지는 도시의 변두리에서 시작해 점차 학군이 좋은 곳로 이사하며 내게 공부를 시키었다.


  중학교에 입학할 시점을 기하여, 학군지에서도 가장 중심지로 이동하였다. 자식을 교육시킨다는 측면에서는 더할 나위가 없는 호조건이었다. 향학열의 열섬 지역과도 같은 곳에서 종종 좌절하고 때때로 자책하였어도, 선생님들의 호언장담 대로 인내의 열매는 달았다. 대학의 입학 증서는 가장 큰 성으로 직행하는 황금 티켓이나 다름 없었다. 그 이후로 큰 성에 다녀왔다고만 해도, 사람들의 눈빛은 즉시 달라졌다.


  이런 연유로 대대로 농군이었던 우리 가문의 직업은 아버지대에 와서 자영업으로 변모했고, 나의 대에 와서 자격증을 필요로 하는 사무직으로 다시 한번 변모한 것이었다.

  


  

  부모님은 자식을 일찍부터  안으 들여보낸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는 여태 단 한번도 의심치 않았다. 본인의 꽃다운 미모와 젊음이 다 가도록 억척스럽게 일하고, 돈을 아껴 저금하고, 그 돈으로 학군지로 이사하여, 두 아들의 교육에 전심전력을 다한 결정을 큰 자부로서 여긴다.


  그런 어머니와 아버지의 희생 덕분에 성년이 되기 전까지 학원비 걱정 없이 공부했다. 대학에 가서는 학자금에 허덕이지 않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졸업 이후 직장에 안착할 때까지 붕 뜨는 기간에도 윤택한 삶의 질을 유지했다. 모든 은공을 어찌 덧없다 할 수 있으랴.


  다만 당신들이 가장 빛나던 때에 누려 마땅했을 것들을 대부분 자식 앞으로 돌아가도록 한 선택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때론 이런 상상도 한다. 나나 아우 중 하나가, 당신들의 빛나는 설계 대로 따라가지 못해 좌절을 거듭했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자부로 남아있었을까. 가문의 수치요 원수 같은 자식이 되지는 않았을까.




  자식을 낳아서 키우고 있으려니 부모님은 이제 그 성공 지침을 다시 한번 물려주어야 한다고 이르신다. 딸아이가 더 크거든 지역의 사립초에 입학 시키라고 틈 날 때마다 내게 종용하시는 것이다. 할머니의 무릎에 앉아 딸기를 먹느라 여념이 없는 아이. 아직 근심 하나 새기지 않은 둥근 이마를 보는 동안에 머리로 온갖 괴로운 생각이 오고간다.


  부모님의 지침에 따라 먹고 살 기반을 마련했을지언정 아이에게 똑같은 강요를 하고 싶지 않다. 더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함이 아닌 더 치열한 경쟁의 장으로 밀어넣기 위한 이사를 하고 싶지는 않다. 자식을 성공시킨답시고 내 손으로 연약한 목덜미를 잡아, 가장 크고 무거운 수레바퀴의 아가리에 밀어넣는 일만큼은 없어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와 동시에 마음 한켠에서는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우선, 나는 학창 시절 학업에 전념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순수한 성취욕이 몇 할이나 되었는지 가늠할 수 없다.


  둘째로는, 부모님이 나를 성의 한복판에 밀어넣지 않았다면. 공부 대신 몸과 마음의 평안을 최우선으로 하셨다면 과연 지금까지의 성취를 일구어냈을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너나없이 모두 성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군비 경쟁을 벌이는 저 판에 발을 들여놓지 않고도 이 아이가 일어서게 도울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한다.


좀먹고 비루한 나의 이율배반.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앳된 손을 잡으며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이다.

-윤동주, <아우의 인상화>


  유난히 여운이 깊은 영화 <동주>의 한 대목을 떠올리고는 나도 살그머니 앳된 아이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나중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아빠, 나는요, 커서 밥 먹고 똥 싸고 잠만 자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이의 익은, 진정코 익은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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