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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빠른거북 Nov 15. 2018

누구나 불만은 있어요

하지만 누구나 쉽게 말하지는 못해요.

오늘은 드디어 학급의 자리를 바꾸는 날이다. 학생들의 자리는 제비뽑기에 적힌 내용으로 랜덤으로 정해진다. 종이에는 앞으로 앉게 될 모둠과 앉아야 할 자리가 적혀있다. 

같은 모둠이던 경민, 동준, 찬혁이는 '제발 우리 모두 같은 모둠이 되게해달라고' 두 손모아 빌고 있다. 경민이와 동준이는 평소 눈빛만 보아도 통하는 소위말하는 짱친(짱 친한, 정말 친한)이다. 거기에 아무하고나 잘 어울리는 찬혁이까지 어우러진 그 모둠은 늘 웃음꽃이 피며 파이팅 넘친다. 모둠별 대항이 있는 동아리 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합이 잘 맞아 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둠이었다. 자신들의 친분을 수업시간에도 종종 표현하기 때문에 선생님의 주의와 경고를 자주 받는 모둠이기도 했다. 떨리는 뽑기 시간 학생들이 제각각 뽑기번호를 뽑았다. 뽑음과 동시에 학생들은 자신의 짝꿍과 모둠을 알게 되었다.

"와!!!!!!"

"아.."

여기저기서 다양한 비명과 한숨과 웃음소리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자리가 다 결정이 되고 나서 원래자리로 복귀하던 순간, 같은 모둠이던 경민과 동준은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경민이는 두손모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동준이는 의자에 눕듯이 앉아 담임교사를 쳐다보고 있었다. 동준에게 말을 거는 친구들에게 "뭘봐.", "앞에 봐"라며 딱딱한 말투로 친구들에게 응대하기 시작했다.

담임교사가 바라보자 동준이가 큰 소리로 말했다. "희연이랑 앉기싫어요. 저." 희연이는 뽑기를 통해 동준이 짝꿍이 된 학생이었다. 순간 학급 학생들이 일제히 동준이를 쳐다보며 희연이의 표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담임교사 역시 희연이의 표정을 살피기 시작했고 동준이를 쳐다보며 학급 친구들에게 말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억지로 바꿀 필요는 없지만 친구를 앞에두고 그렇게 표현하는 것은 친구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 보여요."

친구를 생각하지 않고 말하는 태도, 자신이 가지게 된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 학생, 원하는 대로 앉지 못해 시무룩해진 학생들을 향해 담임교사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기존, 학생들이 원하는 대로 자리를 앉게 해줬을 때 발생했던 문제(수업시간에 떠드는 것, 장난치는 것, 그로인해 친구들의 수업과 선생님의 수업을 방해하는 것)들을 다시 이야기 했고 그러한 문제들이 지속, 수차례의 주의와 경고에도 변하지 않았다는 내용들과 함께 본인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감정적으로 표현하지 말고 선생님을 설득시키라는 말이 이어졌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표현하지 않으면 모두 여러분이 뽑은 결과를 인정하는 것으로 알겠어요."

담임교사의 말에 동준이가 손을 들었다.

"얘기해보세요."

"모둠에 남자가 1명인게 싫어요."

해당 학급은 남학생에 비해 여학생이 5명 많은 학급이었다. 뽑기를 통해 자리를 정하게 되면 어떤 경우에는 지난번처럼 한 모둠에 남학생이 3명인 모둠도 있고 남학생이 아예 없는 모둠도 있었다.


제비뽑기 결과 동준이가 남자 1명인 모둠이었기 때문에 나왔던 불만사항이었다.

"그럼 대안책을 제시해 보세요. 무작정 '싫어요.', '안 해요.'라는 말은 선생님을 설득 시킬 수 없어요."

동준이와 같은 모둠이던 유일한 여학생 연이가 말했다.

"모둠 안에 남학생 숫자를 정하는 것은 어때요?"

그래도 모둠안에 남학생이 1명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연이의 말에 대부분 학생들은 동의를 표했고 남학생 자리를 모두 정하고 여학생 자리를 뽑자는 의견이 다수가 되었다.


동준이가 남자가 1명인 모둠에 들어가지 않을 수 있을 '기회'의 제안이 열린것이다.

동준이는 '옳다구나'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한 결과를 원하지 않았던 '경민'이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번 뽑기를 통해 '내가 혼자 앉는 사람'이 되어도 이제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모두 동의 할 수 있나요?" 교사의 말에 학생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 인해 동준이는 남자가 1명인 모둠에 들어가지 않게 됐고, 그 자리가 맘에 들지 않았던 경민이도 다른 모둠에 배치되게 되었다.

학생들은 모두 저마다 일이 해결된 듯 기분 좋게 수업을 마무리 짓고 하교하였다.


무작위 제비뽑기나 남학생의 수를 정하고 제비뽑기 하는 것이나 사실 마찬가지의 결과라는 것을 아는 담임교사는 생각한다.

학급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휘둘린 것인지 하는 생각과 동시에 고개를 푹 숙이며 자신의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학생을 외면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해서. 그러면서도 그 두 학생을 위해 반짝이는 제안을 해준 연이의 제안이 상황을 해결하는 것에 큰 역할을 했음을 안다.

동준이 역시 하교 후 담임교사에게 말한다.

"싫다는 이유만으로 애들 앞에서 버릇 없게 굴어서 죄송해요."

그냥 그 사과 한마디에 '이전보다 나은 결과, 학생들이 만족할만한 결과가 됐겠지.' 생각하는 교사다. 동준이는 희연이에게도 자신의 진심(=앉고 싶은 남학생이 있었다)을 표현하고 집에 갔다.


하지만 문득 생각이 든다.

누구에게나 불만은 있다. 하지만 누구나 다 쉽게 말하지는 않는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동준이처럼 자신의 감정을 쉽게 표현할 수 있는 학생이 많은 것이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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