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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기자인생 Feb 19. 2021

안녕, 바다!!! 안녕 다이빙!!!

웰컴투인구, 땡스투 사장님, 강사님 그리고 멸치님

2019년 11월 첫째 주 일주일의 중국 출장을 앞두고 심란해졌다. 내일은 아무도 안 해주는데, 난 자리를 일주일이나 비워야 한다니.


손톱이나 깎아서 월화수목금금금용 내 분신이나 만들어서 출장도 보내고 밀린 업무를 시켜야 하나 생각하다가, 어차피 걔도 내 꼴 날걸 싶어서, 걱정 아닌 걱정을 하면서 인스타 피드를 무한 검색하다가, 무언가에 홀린 듯이 다이빙 검색하기 시작했다. 덕질하는 나의 아이돌님 인스타도 잘 확인을 안 하는 데 버킷리스트 82위 즈음에 있던 스쿠버 다이빙이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소비의 신답게 일요일 밤 9시에, 오픈워터와 어드밴드스 교육을 쿨하게 비용 결제를 하고 ( 갚아야 할 돈이 있는 자, 어서 신나게 일터로 향하라!!! )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면서 나의 다린이 라이프는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5, 6학년 때, 평창동에 있던 귀빈 수영장에서 필수과목으로 배웠던 수영을 안 하려고 이리저리 내뺐던 기억이 선한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다이빙을 배우겠다는 생각을 일요일 밤에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일요일 밤에 출장 가기 엄청 싫었나 보다-라고 생각했을 때, 이미 나는 5미터의 풀장에서 발을 하나도 떼지 못해, 강사님을 학 떼게 만들고 있었다. 평생 운동이라고는 국룰인 숨쉬기 운동과 산책만 간신히 챙겨둔 운알못이었고, 근육은 원래 입에만 있는 거니까!!!! 대한민국 평균은 나 같은 몸치 아냐?라고 우기기엔 나만 평균 이하였다. 강사님은 말하셨지 넌 내가 가르쳤던 애 중에서 못하기로 다섯 손가락에 안에 들어!!! 어디 가서 탑파이브 못해봤는데, 이렇게라도 해서 다행인가?


수영장 교육을 받고 그다음 주에 바로 해양실습을 갔다. 나의 첫 바다는 양양의 인구해변. 친절하셨던 다이빙 샾의 사장님께서, 쿨내 진동하게 나를 바다로 밀어주셨다. 어디 가서 난 늘 자랑스럽게 말한다. 내 발로 들어간 바다가 아니라고. 매우 수동적이었으며, 나의 의지는 0.198263% 정도 반영되었을 뿐이고, 추락하는 것에 날개가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깊은 심호흡이 1회 끝났을 때, 난 바다에 처음으로 안겼다. 수영장도 무서워서 ‘밉상 진상 화상’의 꼴을 다 보여주었는데, 바다에 떠 있는 나는 상황 판단이 잘 안된 상태였다. 돈도 안 환불해줄 거 같고, 강사님 무섭 + 강사님 미안 + 환불이 불가능할 거 같은 느낌에 안 들어갈 수 없어 들어갔다.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BCD의 공기 조절도 내가 했는지 강사님께서 살려주셨는지 기억도 안 난다. 다만 사진이 남아 있고 바닷속에서 나를 본 사람들이 있어 내가 입수에 성공했구나라고 알고 있을 뿐.  

첫 다이빙은 무서워서 기억도 잘 안 나고, 얼른 집에 가서 엄마를 만나 구출되었다는 느낌을 받고 싶었는데, 두 번째 입수에서 멸치 떼가 그렇게 내게 연애를 걸어왔다.


강사님이 처음 교육 때, 한국 바다? 해외 바다? 물었다. 당연히 난 질문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돈도 시간도 부족한 욜로욜로족인 나는 당연히 한국 바다요-라고 답하면서도 한국 바다에 뭐가 있지?  뭐 없지 않아? 그냥 들어갔다 오기만 하면 되는 거 아냐?라는... 아무런 생각 없는 실습생이었다. 그냥 나는 인스타 피드의 예쁜 곳에 가서 다이빙을 하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을 뿐, 국내와 해외 바다의 차이점 조차 검색도 안 해보고 무식하게 수업을 받으러 갔으며, 수영장 교육을 다녀오고 나간 멘탈은 해양실습 때까지 돌아오지 못해, 생각이란 게 뇌에 담겨 있던 적이 없었다.


해양 실습 전 날에는 보통 너무 떨려서 잠도 못 자고 가는 길에도 못 잔다는데, 본투비 잠신인 내게 잠을 못 자는 고통보다 우선 시 되는 두려움 같은 건 없었다.  그렇게까지 ( 아직까지 나보다 아무 생각 없이 다이빙 배우러 온 다이버님을 뵌 적이 없다. ) 아무 정보 없이 들어갔던 바다에서 만난 핑크빛 멸치 떼. 바다에서 만났을 때는 멸치인 줄도 몰랐는데!!! 나중에 나에게 연애를 하자고 한 세상 제일 예쁜 물고기가 냉장고에 그득한 멸치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니모는 더 이상 세상 제일 예쁜 물고기 일 수가 없어졌다. 또 만나고 싶어 졌다 그 수줍은 핑크 빛의 멸치님들을!!!!


너무나 안타깝게도 기대했던 그다음 탱크(다이빙)에서 나는 멸치님과의 재회를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난 이미 다이버의 길을 걷기로 마음을 먹었다. 수영장보다 더 깊고 넓고 무서운 바다에서 빛을 내주던 제일 예쁜 물고기를 만났으니까!!! 그렇게 다이빙이 내게로 찾아왔다.



11월 오픈워터 교육이 끝난 그다음 주말, 수영장으로 돌아와서 어드밴스드 교육을 마쳤다. 분명 지난주 해양실습을 가기 전 까지는 수영장 바닥이 하염없이 깊어 보이고 무서웠는데, 더 깊고 물 많은 바다를 만나고 온 직후라서 5m의 풀장 따위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익숙해졌다. 수영장이 익숙해진 것이지, 교육 내용에 있어서 익숙한 부분은 하나도 없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인터넷에는 분명 1년 4계절 내내 다이빙을 즐길 수 있다고 해서 11월에 교육받으러 간 건데, 실질적으로 11월이면, 시즌은 끝이 난 거라 했다. 그럼 난 도대체 왜 때문에 실습만 받고 바다에도 못 내려가 볼 거면 왜 굳이 11월에 시작한 거니? 급한 성질 때문에 이것저것 망설임 없이 시작은 하나, 그 급한 성격 때문에 이러한 낭패를 매번 겪는다. 그래도 난 계속 다이빙을 할 것이니, 이것은 나의 취미 리스트에 하나로 곧 자리하게 될 것이며, ‘취미는 원래는 돈으로 하는 것이며 장비병이 곧 취미’이라는 지론 아래 살아온 30여 년의 인생, 스쿠버 다이빙이라고 크게 달라야 할 이유는 없다. 고로 나는 장비를 구입한다. 그렇게 나는 내 장비를 거진 다 갖춘 예비 다이버가 되었다.

2020년 1월부터 실내 수영장 연습을 가면서 물도 장비도 조금 익숙해질 때, 다이빙 동호회에 첫 해외투어 공지 글이 올라왔다. 4월 필리핀으로 떠나는 첫 다이빙 투어에서 거북이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질 무렵, 코로나는 그렇게 내게서 거북이와의 데이트를 앗아갔다. 여름휴가가 아니고서야 길게 휴가를 못 내는 처지의 직장인인지라, 눈치도 덜 봐도 되고 돈도 더 모으고, 실력도 더 쌓아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필리핀 투어 취소가 슬프지만은 않았지만, 남들은 다 만나봤다는 거북이를 언제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동네 개마냥 흔해서 개북이라 불린다는 그 아이들을 제발 꼭 좀 조만간 만나고 싶다. 개북이를 만나서 사진을 찍게 되면 앞으로 모든 SNS의 사진은 개북이와 투샷으로 할 것이다!! 꼭 반드시.

무기한 연기된 필리핀 투어 대신, 4월 말 강원도 양양으로 첫 다이빙 투어를 나서기로 했는데, 장비 체결부터 익숙지가 않아, 엄청 애를 먹었다. 바다는 반년만이라서 더 무섭기도 했고, 작년에 받은 교육 따위가 저장되어 있을 만한 저장능력을 지니지 못한 뇌의 소유자인 나에게 첫 다이빙은 급상승으로 인한, 세탁기 안에서 세탁되어 돌아가는 빨래가 느꼈을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해 주었다. 2박 3일의 첫 투어에서 총 7회의 다이빙을 진행했고, 그중 3회를 급상승했으며, 3회는 버디를 잡고 상승했으며, 마지막 1회의 다이빙만 혼자 알아서 해결하고 나왔다. 머리로는 이 타이밍에 공기를 빼야 되는데 싶으면서도, 매번 손이 BCD를 만져 공기를 빼내는 속도가 늦었고, 그와는 반대로 나는 더 빠르게 혼자서 물 위로 톡 튀어나오는 급 상승을 여러 번 하면서 다이빙에 대한 자신감이 급격히 하락했다.  수영장과 달리 열심히 BCD 공기조절을 해줘야 하는 다양한 수심의 바다에서의 급상승은 내게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싫었던 건 이걸 극복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 살면서 꼭 극복하고 싶어 한 공포증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물에 대한 공포였고, 네이버 블로거들의 글에 의하면 물을 무서워해도 잘할 수 있다고 해서 나도 낚인 건데, 그렇게 쉽게 낚인 내 잘못이 제일 크다. ) 쓴 돈이 얼마며, 여기저기에 다이빙 시작했다고 입방정을 얼마나 떨어제꼈는데… 이걸 극복 못하면 어쩌지? 슈트에 왜 나는 굳이 내 이름을 새겨서 중고로 팔기도 힘들게… 까지 생각이 미치자, 일단은 동호회의 정기투어에 꾸준히 참석하는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원래 뭐든지 출석만 하면 장땡이다. 회사도 출근만 하면 노예 모드가 어떻게든 켜지지 않던가!!! 일단은 최대한 참석을 해서 민폐를 끼치더라도 가자, 무조건 다이빙 투어 열심히 가자하고 외쳤는데, 역시나 난 예상대로 탑파이브의 위엄을 지닌 초강력 민폐 다이버였으며, 처음 해양실습 온 실습생이 걱정할 정도로 최악의 실력을 지닌 다린이었다.

 첫 투어가 지나고, 시즌이 다가오면서 작년 11월 해양실습 때 뵈었던 동호회 회원분들이 투어에 참석을 하기 시작하셨고, 그로 인해 다이빙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고작 1년 넘게 한 다이빙이지만, 물에 대한 공포로 받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다이빙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해양실습 때 만난 멸치 떼들이 보여준 그림과 같은 바닷속 세계의 풍경, 해외여행을 금지시킨 코로나, 그리고 세상에 다시없을 너무 괜찮은 버디님들 때문이다. 해양실습 당시 토요일에 3회의 다이빙을 진행했는데, 마지막 3회 다이빙에서 중성부력을 잡지 못해서 두둥 떠 다니며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내 손을 잡아주셨던 버디님이 계셨다. 그 날 처음 만난 사이에, 이런저런 얘기를 깊게 나눠 본 적도 없는 분이었는데, 두려워하던 내게 한 손을 먼저 내밀어 주셨다. ( 진짜 무서웠는데 두 손 다 잡아주시지) 그분 외에도 실습을 마치고 숙소로 가는 길에 선뜻 본인 차량에 나를 실어주면서 본인의 경험을 나눠주신 고마운 버디님도 계셨다. 실습도 세상에서 제일 못해서, 제일 쭈구리로 주눅 들었는데, 이런저런 위안의 말을 건네주신 분들이 있어서, 다이빙을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그 두 분의 합류로 바닷속은 무서웠지만, 다이빙 직후 육지 위의 뻘쭘함은 사라져서, 심적으로 많은 위안이 되었다. 얼마나 실수를 많이 했는지, 난 도대체 왜 이렇게 못하는지 주절주절 거렸는데, 그 주절거림을 언제나 온 마음을 다해서 들어주셨다.


물속에서의 버디와 좋은 호흡을 지니려면, 육지에서의 좋은 호흡도 매우 매우 중요하다. 육지에서의 즐거운 관계가 바닷속에서 도움이고, 그렇지 못한 관계는 바닷속에서도 삐걱거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다이빙을 하는 목적도 마음도 성향도 잘 맞아야 서로에게 좋은 버디가 되어 줄 수 있다. 결국에 다이빙도 다 인간들이 하는 인간 활동 중 하나로 인간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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