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파 - 나의 새로운 세계의 우주 박해울 작가
책을 사둔지는 오래전인데, 그냥 책장에 쌓여 있는 책 중 가장 가벼워서 꺼내 들었다가 제대로 덕통 사고를 당했다. 과학과 문학을 가까울 수 없다는 고리타분한 이분법적인 생각을 가진, 세상 최고 편협한 존재인 나에게, 이제는 그만 그 이분법을 깨고 과학과 문학이 만난 그 자리를 사랑한다고 커밍아웃을 하라고 한 박해울 작가.
대학에서 문학 공부했지만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글을 써서 낸 소설이라는데, 글이 미쳤다. 읽기 시작하자마자 기파라는 블랙홀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충담이라는 인물은 우주 택배 기사로 사랑하는 딸에게 생체 심장을 주기 위해 우주 택배를 하다가 우연히 소행성 충돌로 난파된 초호화 우주선을 발견한다. ( 작가님이 타이타닉을 모티브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타이타닉이 떠오른다. ) 그 초호화 우주선은 소행성 충돌 후 지구와의 교신은 끊기고 바이러스가 퍼져서 승객들이 죽어나가는데 살신성인하며 열일하는 기파, 그는 외과의로 혼자 살아남아 죽어가는 환자들을 돌보며, 지구에 구조요청을 했고, 지구의 사람들은 이를 보며 기파 예찬을 하고, 기파 재단까지 설립을 한다. 그 위대한 기파를 지구를 모셔오면 막대한 돈이나 생체 심장을 준다고 하여 우연히 발견한 난파 우주선에 충담이 기파를 데리러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충담이 만난 살아있는 사람은 섀도 영상 기사로 일한 아나타와 가끔씩 노래를 부르며 살아 있는 기척은 내지만 만나기 힘든 기파 선생을 찾으며, 숨겨왔던 진실이 드러난다.
책 속에서는 여전히 불평등이 존재하는, 아니 오히려 심화된 듯한 세상에서, 많은 노동력은 로봇으로 대체가 되었고, 의학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많은 생체 기관을 ‘전자부품’처럼 대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사람들은 사람 아닌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순수한 인간의 밑에 계급 아닌 계급으로 존재하는 세계.
( 이 소설에서 다루는 배경은 아직 도달하지 못한 세계인데, 왜 지금부터 러다이트 운동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일까.)
대형 프랜차이즈들에 속속 등장하고 있는 키오스크들, 자동화되고 있는 공장들, 단계별로 발전하고 있는 자율주행 및 무인자동차들, 과연 더 나은 기술이 인류에게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해주는지 의문이 들었다.
태초부터 인간이 지구별로 여행 오는 데에는 다 그만한 신의 섭리가 숨겨져 있을 텐데, 우주로 가는 게 맞는 가 싶기도 하면서, 동시에 나도 우주선 창 밖으로 지구별을 보고 우주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술이 발전해서 세상이 그렇게나 편해져도, 인간들의 탐욕적이고 자신의 안위를 위하는 모습에선 역시 인간이 가장 문제인가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고, 자기 생각과 마음이 존재하는 것 같은 로봇이 스스로의 삶을 끝냈을 때에는, 현실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