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남 부끄럽지 않게
나를 움직이는 건 8할이 타인의 시선이다. 그리고 1할이 부모님의 기대, 남은 1할 쯤이 나의 의지가 된다. 만약 내가 타인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난 지금 쯤 멋진 거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어릴 적 나의 로망은 바다를 자유로이 헤엄치는 인어공주, 파리를 배경으로 춤추고 노래하는 집시 에스메랄다 였으니까.
하고 싶은 일이 분명하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일까, 하지만 그런 종류의 깨달음은 제 시간에 맞추어 나를 찾아오지 않았었다. 고3 시절 점수에 맞추어 대학과 전공을 선택했고, 대학교 4학년 때는 학점과 영어점수에 맞추어 회사를 지원했다. 이토록 불확실하던 시절에 나를 거지가 되지 않도록 이끌 었던 건, 타인의 시선이다. 꿈도 목표도 없던 나를 어느 정도의 반열 까지 끌어올렸던 건 당시 속했던 무리에서 뒤처지지 않아야겠다는 자존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와 돌이켜 보면, 사실 그들의 시선에는 나의 의지가 투영되어 있었다. 아니면 반대로 나의 의지를 실현시키기 위해 타인의 시선을 추진력으로 사용했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성적에 담임선생님의 시선을 붙이고, 인정받는 대기업에 부모님의 기대를 붙여가며 나를 채찍질했는지도 모른다. 난 항상 자랑스러운 학생, 자랑스러운 딸, 자랑 스러운 스스로가 되고 싶었으니까.
여전히 나에겐 뚜렷한 목표같은 건 없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다. 가끔은 시간에 등 떠밀려 휩쓸려 온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현재까지 걸어온 길에 후회도 누군가에 대한 원망도 전혀 없다. 아마도 '남 부럽지 않게'라는 것도 결국은 내가 정한 기준이기 때문일 것이다. 열심히 살아야지, 남부럽지 않게 혹은 남 부끄럽지 않게